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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힉소스족에 대한 헬라적인 (그리고 성서적인) 시각

by [*수호천사*] 2025.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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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소스족에 대한 헬라적인 (그리고 성서적인) 시각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 역사가인 마네토는 15왕조와 제16왕조 및 제17왕조 등을 힉소스라고 불리는 외국 통치자들에게 귀속시킴과 아울러, 그들을 -목자들”(바실레이스 포이메네스)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구절들은 아프리카누스(Africanus)와 유세비우스가 남긴 단편들에도 남아 있다. 이 두 자료는 신켈루스(Syncellus)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가장 길고도 가장 흥미로운 구절은 요세푸스의 아피온은 논박함(Contra Apionem)에서 발견된다. 요세푸스가 남긴 자료와 기독교 저술가들이 남긴 자료들 사이의 불일치는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한 현대 학자들의 오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먼저 요세푸스의 자료를 보도록 하자.
 
나는 이집트의 문서들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들을 엣 형태 그대로 네 앞에 놓아둘 수가 없구나. 마네토는 그리스 문화로 가득한 이집트 토박이이다. 그는 자기 나라의 역사를 그리스어로 기록하였으며, 그 자신이 우리에게 말한 바와 같이, 신성한 토판들로부터 그것을 번역하였다. 그는 헤로도투스가 무지로 인하여 이집트 역사의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 오류를 범했다고 말한다. 이집트의 역사라는 자신의 책에서 저자 마네토는 우리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 바가 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을 증인으로 소환한 것과도 같이 말이다.
투티마이우스(Tutimaeus). 그가 다스리던 때에 내가 알지 못하던 어떤 이유로 하여 우리는 어떤 신의 일격을 맞았다그리고 뜻하지 않게 동쪽 지역으로부터 종족을 알 수 없는 침략자들이 우리 땅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면서 행군하였다그들은 주력 부대를 동원하여 힘들이지 않고서 우리 땅을 점령하였다우리 땅의 통치자들을 제압한 그들은 우리의 도시들을 무자비하게 불태웠으며신전들을 파괴하였고모든 본토민들을 적대감을 가지고서 잔인하게 대하였다그들은 본토민들의 일부를 대량으로 학살하였고나머지 본토민들의 일부를 대량으로 학살하였고나머지 사람들의 아내들과 자녀들은 노예로 부렸다마지막으로 그들은 그들 중의 한 사람인 살리티스를 왕으로 임명하였다그는 자신의 소재지를 멤피스로 정하였으며상부 이집트와 하부 이집트로부터 조세를 징수하였다그는 항상 가장 유리한 지점에 수비대를 남겨두었다무엇보다도 그는 점차 강성해진 앗수르인들이 언젠가는 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기 나라를 공격할 것임을 예견하고서동쪽 지역을 요새화하였다.
세트로이테 지역에서 그는 나일 강의 부하스티테 지류 동쪽의 매우 좋은 자리에 도시를 건설하였으며고대 종교 전승을 따라 그곳을 아와리스(Auaris)라 불렀다그는 그곳을 재건하였으며거대한 성벽들로 요새화하였고, 24만 명이나 되는 중무장군 수비대를 그곳에 두어 국경선을 지키게 했다그는 여름철에 이곳을 찾아왔을 것이다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급여를 지불하는 한편으로조심스럽게 그들에게 군사 전략을 가르치고 그들을 통하여 타국 부족들을 공포에 빠뜨리기 위해서 말히다살리티스는 19년을 다스린 후에 죽었고브논이라는 두 번째 왕이 그를 계승하여 44년을 다스렸다그의 뒤로는 아파크난이 36 7개월 동안 다스렸고이어서 아포피스는 61년 동안그리고 이안나스는 50 1개월 동안 다스렸다마지막으로는 아시스가 49 2개월을 다스렸다그들의 첫 번째 통치자들인 여섯 명의 왕들은 이집트 혈통을 없애려고 상당히 노력하였다그들은 전체적으로 힉소스족 -목자들”(바실레이스 포이메네스)로 불렸다왜냐하면 은 거룩한 언어에서 을 뜻하고, ‘소스는 일반 언어에서 목자” 또는 목자들을 뜻하기 때문이다이 두 낱말이 합하여 복합명사인 힉소스가 생겨났다어떤 이들은 그들이 아랍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그런가 하면 어떤 다른 자료는 이라는 표현이 왕들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그 자료는 도리어 이 복합명사가 포로-목자들을 뜻한다고 본다사실 이집트어에서  은 기음(氣音)을 내어 발음할 경우 명백히 포로들을 뜻한다내가 볼 때에는 이러한 설명이 더 설득력 있고 고대 역사와 더 부합되는 것으로 보인다.
마네토에 의하면내가 위에서 나열한 왕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이른바 목자들로서 511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그 후로 테베 지역의 왕들과 이집트의 나머지 지역들이 목자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고그들 사이에 격렬하고도 오랜 전쟁이 발생했다고 그는 말한다이어서 그는 그 목자들이 미스프락무토시스[멘케페레=투트모시스(III)]라는 이름을 가진 왕에게 패하여 이집트의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쫓겨났으며, 1 아루라이’ 반경의 한 지역(=아와리스)에 유폐되었다고 말한다마네토에 따르면목자들은 자기들의 모든 소유와 노략물을 지키기 위하여 이 지역 전체를 높고 강력한 성벽으로 둘러쌌다미스프락쿠토시스의 아들인 투트모시스는 (마네토는 계속 말한다그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48만 명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요새를 봉쇄하였다마침내 그는 포위 공격을 중단하고서 그들 모두가 이집트를 떠나 방해받지 않은 채로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이러한 조약 조건에 의거하여 목자들은 그들의 모든 소유와 24만 명을 상회하는 사람들을 이끌고서 이집트를 떠나 사막을 거쳐 시리아로 건너갔다당시에 아시아 지역의 맹주였던 앗수르의 세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은 지금은 유대라고 불리는 당에 그 모든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도시를 건설하였고그 이름을 예루살렘이라 칭하였다.
이집트의 역사라는 또 다른 책에서 마네토는 이른바 목자들로 불리는 이 민족이 이집트의 거룩한 책들에서 포로들로 묘사되어 있다고 말한다이러한 그의 진술은 옳다우리의 아주 오랜 조상들에게 있어서 양을 먹이는 일은 전통적인 생활관습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유목민의 삶을 살았던 까닭에 목자들로 불렸다다른 한편으로 이집트의 자료들에서 그들은 이치에 닿지 않게 포로들로 규정된 것은 아니었다왜냐하면 우리의 조상 요셉은 이집트 왕에게 자신이 포로였다고 말했으며나중에는 왕의 동의를 얻어 자신의 형제들을 이집트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Apion 1:73-92; Waddell 1940:76-91, Fr. 42
 
우리는 이것을 신켈루스가 인용한 아프리카누스의 글과 반드시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15왕조는 목자들(‘포이메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페니키아에서 온 여섯 명의 외국인 왕들(‘바실레이스’)이 있었다. 그들은 멤피스를 장악하였다. 세트로이테 지역에서 그들은 한 성읍을 건설하였고, 그곳을 전진 기지로 삼아 그들은 이집트를 굴복시켰다. 이 왕들 중의 첫 번째인 사이테스는 19년 동안 통치하였다. 사이테 지역은 이왕의 이름을 따라 불려진 곳이다. 두 번째 왕인 브논은 44년 동안 통치하였고, 세 번째 왕인 파크난은 61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리고 네 번째 왕인 스탄은 50년 동안 통치하였고, 다섯 번째 왕인 아르킬레스는 49년 동안 통치하였으며, 여섯 번째 왕인 아포피스는 61년 동안 통치하였다. 이들은 도합 284년 동안 통치하였다. Syncellus, 113; Waddell 1940:90-91, Fr. 43, Fr. 45, Fr. 47
16왕조는 다른 목자들(‘포이메네스’)이 통치하였는데전부 32명의 왕들이 518년동안 통치하였다Syncellus, 114; Waddell 1940:92-93, Fr. 45, Fr. 47
17왕조도 다른 목자들(‘포이메논’)이 통치하였는데그 왕들의 숫자는 43명이었다이들 43명은 테베와 디오폴리스의 왕들이었다목자들과 테베의 왕들이 통치한 총 연수는 151년이었다Syncellus, 114; Waddell 1940:94-95, Fr. 47
 
유세비우스 목자들이라는 용어를 제17왕조의 왕들에게만 적용한다.
 
사이테 지역은 이 왕의 이름을 따라 불려진 곳이다. 이 왕들은 세트로이테 지역에서 한 성읍을 건설하였고, 그곳을 전진 기지로 삼아 이집트를 굴복시켰다. 두 번째 왕인 브논은 40년 동안 통치하였고, 세 번째 왕인 아포피스는 14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아르킬레스가 30년 동안 통치하였다. 이들은 도합 103년 동안 통치하였다. 요셉이 이집트 왕으로 임명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Syncellus, 114; Waddell 1940:94-95, F. 48
 
이상으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의 관찰 결과를 다음과 같이 차례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요세푸스의 아피온을 논박함에 있는 설명과 관련하여 : 이 유대인 역사가는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논객에 맞서는 논리로 마네토를 인용하고 있다. 그는 자기 민족의 고대성과 이집트 체류에 대한 전통의 진정성을 입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헬레니즘-로마 세계에서는 유대인들이나 비유대인들 모두가 오경의 70인역본을 쉽게 사용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요세푸스는 종족을 알 수 없는 침략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유일한 사람이다. 아프리카누스와 유세비우스는 페니키아를 외국인 왕들의 근거지로 지목한다. 세 개의 자료는 공히 목자들”(포이메네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용례는 세 자료들이 공히 쉽게 입수할 수 있었던 마네토의 책들에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겨나는 문제는 힉소스라는 용어에 대한 해석이 헬라화된 이집트 역사가-제사장이기도 한-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어원론을 추가한 어떤 편집자나 전달자의 작품인가 하는 점이다. 이집트어로 된 마네토의 원작들 중의 하나 또는 그 모든 작품들이 제15왕조 통치자들과 관련하여 ḥq3w ḫ3sw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에 틀림없다. “통치자”(ḥq3)라는 용어는 목자 활동과 아무런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제왕의 홀()을 가리키는 통상의 한정사는 ḥqt로 발음되었다. 따라서 이 부호(sign)의 음가(音價) 통치자”(ḥq3)를 가리키는 낱말 부호(다른 한정사들을 동반하는)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용어는 선한 통치자가 자기 백성의 목자라는 옛 개념(고대 근동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 ḥq3w ḫ3swt를 헬라어 힉소스로 번역한 마네토의 노력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민간 어원론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 마네토 자신이 그러한 번역을 창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가 고대 이집트어에 정통한 학자가 아닌 한에 있어서는 말이다. 요세푸스는 거룩한 언어의  을 뜻하고 소스는 일반 언어에서 목자 목자들을 뜻하며, 이 둘이 합하여 복합명사인 힉소스가 생겨났다고 보는 이러한 민간 어원론을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 물론 이라는 구성 요소는 통치자”(ḥq3)라는 낱말에서 비롯된 것이요, ‘소스라는 구성 요소는 콥트어인 목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두 번재 낱말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유목민들이라는 용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어의 mniw(가축지기, 목자)라는 낱말을 대체하였다. 요세푸스의 다른 민간 어원론은 어떤 다른 자료-“사실 이집트어에서  은 기음(氣音)을 내어 발음할 경우 명백히 포로들을 뜻한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언어학자 포로”(ḥ3q)라는 낱말이 약탈하다”(민용문자의 ḥq)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았다. 요세푸스는 자신이 왜 후자의 해석을 선호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마네토의 역사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그의 견해를 뒷받침한다! 그는 태연자약하게 힉소스를 요셉의 형제들이 자기들을 목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요셉이 자신을 포로라고 말했다는 사실과 관련시킨다. 그리하여 요세푸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 그들은 전체적으로 힉소스적,  -목자들’(바실레이스 포이메네스)로 불렸다.” 이 유대인 역사가에게 있어서 이것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한 민간 어원론의 원저자가 ()유대인 운동에 관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프리카누스와 유세비우스가 인용하고 있는 마네토의 또 다른 단편들은 목자라는 용어를 힉소스족 전체에 적용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왕들에 관해서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 단편들은 요세푸스가 그런 것처럼 그들을 종족을 알 수 없는 침략자들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우리가 다루는 왕조들의 통치자들이 페니키아로부터 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단편들은 이집트 전통이 이른바 목자 통치자들의 서부 셈족 기원설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완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유세비우스는 한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요셉이 이집트 왕으로 임명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이러한 설명은 마네토 자신의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요셉과 그의 백성을 이집트 역사에서 찾아보려는 기독교 또는 유대주석가에게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날 우리는 이집트 사람들이 제15왕조의 통치자들을 외국 땅들의 통치자들, 즉 저주 문서에 나열된 서부 셈족(아무르/가나안) 출신의 통치자들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이집트어 비문 원본들-저주 문서와 투린 파피루스를 포함하는-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사실 제15왕조의 초기 통치자들 일부는 그러한 호칭을 가지고서 나타난다. 역사적이고 언어학적인 진실의 실체는 이렇다 : ḥq3w ḫ3swt은 참으로 외국 땅들(도시 국가들)의 통치자들을 의미한다. 후기 저주 문서에서 이 용어는 하솔이나 아스글론과 같은 곳들의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곳들이 만개한 중기 청동기 시대의 문화를 가지고 있던 진정한 도시 중심지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시누헤 이야기에서 이 용어는 대단히 고급스런 사회 구조와 농업 생존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통치자에게 적용되고 있다. ḫq3 ḥst라는 용어는 결코 부족 지도자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목자들을 의미하지 않으며, “힉소스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민족과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이 요셉이 어떻게든 제15왕조와 관련이 있을 것이요 모세 치하의 후속 세대는 제18왕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일반적인 믿음은 헬레니즘-로마 시대 이후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민간 전승에 기초하고 있다. 마네토의 원작이나 주전 2천년기의 이집트 비문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성경역사, 지리학, 고고학 아틀라스 7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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