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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 제3왕조(기원전 2112년 – 기원전 2001년)
【우르 제3왕조의 통치】
100년 이상(기원전 약 2112-2001년) 지배했던 새로운 왕조는 정치와 행정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효율적이고 완벽한 관료제도로 철저히 중앙집권화된 정부와 전투력이 강한 군대가 갖추어졌으며 그 정점에 거의 절대적인 통치자가 있었다. 그의 관할 아래에는 변두리에 쭉 위치한 지방의 군사도독과 도시군주라는 옛 칭호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엔시’라고 불린 행정구역의 지배자들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발굴지는 우르, 기르수, 움마, 그리고 슐기의 재위 39년에 가축사육 중심지로 건설된, 오늘날의 드레헴인 푸즈리시 다간이다.
우르남마와 특히 슐기는 노동, 재판, 병력, 역법, 도량형을 통일하는 데 진력했다. 비록 제국은 거대하고 민족 구성원은 단일하지 않았으며 또 오래된 도시 중심지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며 독립을 기도했지만, 이 목표지향적인 정치는 성과를 올렸다... “수메르와 아카드”는 서로 융합하여 공존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수메르와 아카드(셈계)의 특징들을 따로따로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우르남마의 건축사업】
정복과 관개개설, 페르시아 만의 항구와 내부의 행정 확대를 통해 우르남마(기원전 약 2112-2095년)는 제국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많은 도시에서, 특히 우르에서 활발한 건축사업(신전)을 벌였는데 이곳에서 탑신전(지구라트)은 3층 구조물로 된 고전적 형태를 갖추었다. 이 형태는 “바벨탑”에 대해 우리가 갖는 상(象)을 계속해서 형성해왔다. 이 왕 역시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법전”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슐기와 우르의 전성기】
우루남마는 아마도 구티인과의 전투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것이다. 이미 일찍 왕위계승자로 정해진 아들 슐기가 그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기원전 2094-2047년). 그는 절대적 군주로서 제국적인 자세로 왕국을 통치했다. 후에 그도 신격화되었으며, 그를 위해 사제와 축일이 갖추어진 신전과 기도실이 세워졌다. 이 나라의 영향권은 지중해에서 엘람까지 미쳤는데, 슐기는 이 나라를 자신이 시행한 일종의 팍스 수메리카(pax sumerica) 방식에 걸맞게 다스렸다... 슐기는 그의 치세 상반기를 제국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바쳤다. 그의 통치 후기에는 다양한 전투가 있었는데 특히 동쪽으로의 원정이 유명하다. 기원전 2064년경 엘람과의 화해가 이루어졌는데, 슐기는 자신의 딸 중 하나를 엘람으로 시집보냄으로써 정략결혼을 통해 화해를 공고히 했다. 티그리스 동부와 자그로스 산맥 기슭의 후리인 도시들과 민족들과의 전쟁에는 계속해서 군대를 투입해야 했는데, 이 당시 오늘날의 키르쿠르 지방에 위치한 시무룸과 우르빌룸(에르빌), 룰루부를 복속하는 것이 정황상 특히나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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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 제3왕조와 그 영향권 |
【슐기, 아모리인을 대비한 방어선을 세우다】
슐기의 통치하에 북서쪽에서 아모리인들이 괄목할만한 새로운 위협세력으로 성장했는데, 이보다 200년 전에 이미 샤르칼리샤리는 이들과 대결해야 했다. 그 위협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는 슐기의 발의로 280km의 긴 “벽” 또는 방어선이 건설되기 시작했다는데서 잘 드러난다. 요새로 방어되는 전선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나 있는데, 그 위치는 아마도 디얄라 강이 제벨 함린 산맥을 뚫고 유프라테스 강이 하바니야 호수에 접근하는 지점 사이일 것이다. 우리가 이런 어마어마한 방어 노력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은 슐기와 그의 후계자가 현지 고위관리들과 주고받은 편지 사본 덕분이다.
【아마르신과 슈신의 통치】
슐기가 죽은 후 (또는 살해된 후?) 제국은 그의 후계자인 아마르신(전에는 부르신으로 읽음)과 슈신 아래 그 힘이 북서쪽으로 “삼나무 산맥”과 에블라까지 이를 정도로 완전히 안정되었다. 동부, 즉 우르미아 호와 쿠지스탄 사이에 위치한 이란의 서쪽 지역에서 자브샬리, 시마슈키, 엘람과 안샨이 우르의 통치권을 인정했다. 더 많은 통치자가 원정 후에 우르의 봉신이 되었는데, 이때 때때로 정략결혼과 주둔군 배치를 통해 우르와의 결속이 추가로 강화되었다. 북쪽에서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슈신은 해당 지역의 주민을 “전리품”으로 강제이송해서 “니푸르 경계에 있는 엔릴과 닌릴”을 위한 장소에 살게 했다. 이러한 과정은 대량 이주의 가장 오래된 예로서, 이때 포로들은 신전에 노예로 양도되었다. 같은 관행이 훨씬 후대의 이집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비신의 통치 아래 붕괴의 시작, 이신의 총독 이슈비에라의 등장】
슐기의 세 번째 후계자인 이비신의 통치 아래 붕괴가 시작되었다. 이미 재위 제3년(기원전 약 2025년)부터 그는 변방 지역과 그에 이어 제국의 핵심부에 속하는 많은 지방이 어떻게 자신의 권한에서 벗어나는지 지켜보아야 했다. 이 와해는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해 야기되었는데, 특히 엘람이 가한 압력과 아모리인의 내륙 침입, 수확량이 감소하고 지방에서 납세가 중단된 데 따른 경제적 침체로 인한 것이었다. 이 상황은 몇몇 총독이 점점 더 독립을 추구함에 따라 훨씬 더 악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신의 총독으로 있던 마리 출신의 이슈비에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비신이 경제 및 군사 문제와 씨름하고 또 제국을 더 이상 결속시키지 못함으로써 그의 명성에 손상을 입은 것이 이슈비에라에게는 유리했다. 그래서 이슈비에라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기대를 실행에 옮기는 데 성공했다. 특히 그는 명성 높은 신전도시 니푸르의 사제단에게 받은 지지를 이용해서, 최고신 엔릴이 자애로운 신탁에서 자신에게 수메르의 왕정을 승낙했다고 사칭했다.
【우르, 엘람의 공격으로 무너지다】
우르는 여하튼 기원전 2025-2020년 사이 기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으며 계속해서 15년간 큰 도시국가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모리인의 위협이 줄어들고 이슈비에라가 중부 바빌로니아에서 왕으로 웅거한 후, 이 도시는 결국 엘람인의 공격에 무너졌다. 엘람 군대의 지도자는 시마슈키의 왕 킨다투였는데, 그는 엘람에서 권력을 넘겨받았다. 일찍이 엘람인에 맞서 싸웠던 이슈비에라는 개입할 수도 없었고 개입하려 하지도 않았다. 우르를 정복한 이후 이비신과 그의 도시의 신인 달의 신 난나의 신상은 엘람으로 강제이송되었다.
【이신-라르사 시대, 제2중간기에 돌입하다】
왕정은 이슈비에라가 통치하는 도시 이신으로 넘어갔다. 이슈비에라가 엘람인을 우르에서 쫓아내었을 때, 이전에 그가 니푸르의 후원을 받아 주장했던 왕권 요구는 기꺼이 숭요되었다. 이신의 주도권으로 인해 종종 ‘이신-라르사 시대’ 혹은 ‘제2중간기’라고 칭하는 이행기가 시작되었다.
클라아스 R. 빈호프 【고대 오리엔트 역사】 7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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