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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2013). 1910년대 후반 기독교 담론의 형성과 ‘기독청년’의 탄생. 한국기독교와 역사(38, 177-203.
I. 머리말
- 1919년 2월 8일,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는 동경 유학생 사회의 구성원 거의 전부가 모여 조선의 독립을 선포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른바 2ㆍ8독립선언 사건... (177)
- 1910년대 후반... 조선에서 건너간 약 500여 명의 청년들이 유학하고 있었다... 동경 조선유학생학우회,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 동경 조선여자친목회... 「학지광」, 「기독청년」, 「여자계」... (177)
- ‘청년 지식인’을 자처한 그들의 관심사는 조선을 개혁할 새로운 사상을 찾는데 있었고, ‘기독교’는 그에 적합한 사상(종교)로 호출되었다. 2ㆍ8독립선언에 이르는 사상적 토대가 1910년대 후반의 기독교 담론에 있었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177-178)
- 1910년대 중반... 「학지광」... 1917년 조선 동경기독교청년회의 기관지로 창간된 「기독청년」에서 구체화... ‘기독청년’이라는 새로운 청년 주체... (178)
- 이광수, 전영택, 김영만, 정노식... 기독교가 민족 개혁의 통일 사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178)
- ‘기독청년’... 기독교 청년회의 일반 목적인 청년의 지덕체 발달이라는 구호가 기독교 사회화 요구와 화학작용하며 ‘기독청년’을 구성하는 핵시미 요인이 된다... 소위 ‘부랑청년’과 대비되는 1910년대 후반의 명확한 청년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78)
II. 1910년대 후반 기독교 담론의 형성과 유통 양상
1. 「학지광」 기독담론의 분화
- 「학지광」은 1914년 4월 동경 조선유학생학우회(이하 학우회)에 의해 창간된 종합잡지... 학우회는 1912년에 회원 상호간의 지ㆍ덕ㆍ체 발달 및 학술연구와 의사소통을 도모할 목적으로 조직... (179)
- 「학지광」에서 공론의 지위를 획득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기독교’... 단순한 종교를 넘어 민족을 개량할 유용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기독교는 우리가 귀의해야할 종교이며 고갈한 경제력을 부활시키고 부패한 교육을 개량할 ‘고상한 종교’이다. (179-180)
- 1917년에 이르러 기독교가 오히려 경제 발전을 막고 있다거나 농업ㆍ공업ㆍ상업을 배우는 일이 더 급함을 주장하는 등의 다소 비판적인 글이 등장하기 시작... 특히 서춘의 “우리의 渴과 基督을 讀함”(「학지광」 13호, 1917년 7월)... (180)
- 1917년을 기점으로 「학지광」의 기독교 관련 글의 논조가 다소 변화하는 동시에 양적 변화를 크게 보인다... 1910년대 「학지광」소재 기독교 관련 글 목록표... (181)
- 동경 유학생 사회에서 기독교 담론이 표면화됨에 따라 종합지인 「학지광」만으로는 이를 모두 수용하기가 곤란해졌고, 기독교 담론이 전유될 수 있는 매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82)
- 1917년 11월...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의 기관지로 「기독청년」이 창간... 「학지광」을 중심으로 일어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기독교 잡지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와 맞물려 기독교 청년회의 역량이 준비되어 있었고 마침 백남훈 같은 사명감을 가진 실무진이 있었기에 가능... 「기독청년」은 「학지광」이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 담론의 영역을 대부분 가져오게 된다. (183)
- 「기독청년」은 「학지광」에서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던 기독교 담론을 자신들의 기관지로 가져와 구체화시키며 한층 더 생산적인 논의를 전개... 월 1회 발간 방침... (183)
2. 기독담론의 전유 매체 「기독청년」
- 「기독청년」... 1917년 11월 17일에 창간... 1919년 12월까지 15호가 발행됨... 당시 기독교 청년회에서 간사를 맡고 있던 백남훈이 편집 및 발행인이었고 매호 마다 700부 정도가 발행되어 국내외에 배급... 백남훈ㆍ전영택ㆍ김준연... 김영만ㆍ정노식ㆍ홍난파...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ㆍ부정적 시선을 모두 여과없이 담아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치ㆍ시사의 평론은 받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었지만, 덕분에 일본 당국의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184)
- 「기독청년」이 유통되던 1910년대 후반 기독담론의 화두는 ‘사회화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유교와 불교와는 구분되는 신종교로서 가장 적합한 종교로 여겨졌지만 이광수ㆍ김영만ㆍ정노식 등 비판적 필자들은 교회와 교역자의 각성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강력히 주장... 조선의 기독교가 미신화되었음을 지적하며 과학과 실업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 (185)
- 이광수는 기독교 교역자들이 ‘세상의 지식’인 과학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들의 무식함을 지면에 표현할 수 없다는 날선 비판... 전영택은 ‘실업의 근본이 되는 지식’인 과학을 권해야 한다고 주장... (186)
- 이광수의 기독교 비판... 조선의 기독교는 1) 계급적이며, 2) 교회지상주의이며, 3) 교역자가 무식하며, 4) 미신적이다. (186)
- 이광수는 한 민족의 사상은 역사의 골격이자 생명이라는 인식을 드러냈고, 전영택은 그에 적극 동조하며 한 민족이 망하고 흥하는 근본 원인을 종교(사상)에서 찾았다. 이광수 역시 사상과 종교를 동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187)
- 이광수는 민족을 지배할 사상(종교) 통일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그것을 기독교로 한정하지는 않았다. (187)
- 이동식은 “기독교회의 현대적 사명”을 통해 교역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지적 자격, 능력적 자격, 영적 자격 세 가지로 요약하며 근대적 종교는 과거와는 달리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면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 (187-188)
- 김영만은 1918년에 들어 청년 간에 사상 통일이 초미의 문제라고 역설하게 된 것을 지적... (188)
- 1910년대 후반 「기독청년」을 통해 유통된 기독담론은 교역자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것과, 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주로 채워졌다. (189)
- 1910년대 후반 기독교 사회화 움직임이 가시화된 사정은 민족적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동경 유학생들의 열망에 있었다. 2ㆍ8독립선언과 3ㆍ1독립운동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조선뿐 아니라 동경 유학생 사회 전체가 갑오개혁과 같은 대대적인 사회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던 시기이다. (189)
III. 기독청년의 탄생
1. ‘기독’ 청년의 탄생과 지덕체의 유통 양상
- 이광수는 대혁명의 주체로서 반도청년 제군을 언급한 뒤, 다시 느낌표 세 개를 덧붙이며 ‘기독청년’이라는 청년 주체를 호명한다... ‘기독’이라는 종교적 단어가 청년과 함께 어울려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1910년대 중ㆍ후반에 이르러서이다. (190-191)
- ‘기독청년’은 지육과 덕육을 겸비한 청년으로 요약된다. (191)
- ‘기독청년’은 지덕체의 완전한 발달을 이룬 청년 이상향을 지칭하는 것이며, 기독교 사회화를 이룰 주체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192)
- 1910년대 후반, 민족 개혁과 기독교 사회화 요구 속에서 기독교 청년회의 목적인 지덕체와 화학작용하며 탄생한 새로운 주체가 바로 ‘기독청년’이다. (193)
- 전영택... ‘기독청년’의 정의... 영적 기초 위에 지식과 경제의 실력을 충실히 할 인물이며, 조선 기독교의 목적을 달성해 전도ㆍ교육ㆍ사회의 모든 활동을 할 주체... (194)
- 이종린... ‘기독청년’은 ‘제2세 교역자’로 지칭... (194)
- 1910년대 후반 「가독청년」의 기독교 담론은 민족 개혁을 위한 통일 사상과 그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내는 데 수렴되었다. 2ㆍ8독립선언의 사상적 토대와 네트워크는 이미 이러한 방식으로 마련되고 있었던 것이다. (195)
2. 기독 ‘청년’과 세대론
- 1910년대 후반은 기독교 청년회의 회원들을 비롯한 동경 유학생 사회의 구성원들이 절실히 인물을 요구하던 시기... 그들 스스로 자기 세대를 호출해 냈다는 점... (195)
- 「기독청년」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기독교 교역자들은 기독교 청년회의 회원들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아버지 세대 교역자와 목사까지를 아울러 나타났다... 부모 세대들이 집중적으로 비판 받았던 것이다... 윗세대의 사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유교는 이광수와 전영택에 의해 살과 피를 썩게 한 원흉이며 우리를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한 원수로까지 표현된다. (196)
- 이종린은 부모 세대를 1세대로 자신들을 2세대로 구분하고, 기독교 사회화를 주장하는 2세대들이 정작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모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역시 없다고 비판... 기독교 사회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었으나, 부모 세대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과는 별개로 그들을 적절한 롤모델로 여기지는 않았다. (197)
-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 실무진의 변화... 김정식에서 백남훈으로... 백남훈은 학우회의 회장을 지낸 바 있는 동경유학생 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청년회는 유학생의 것이라는 학우회의 경고와 백남훈의 간사 선출은 기독교 청년회 역시 부모 세대 교역자가 아닌 2세대 교역자, 즉 ‘기독처연’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 (197-198)
IV. 맺음말
- 1910년대 후반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의 기관지인 「기독청년」을 중심으로 벌어진 기독교 담론에서 ‘기독청년’은 민족 개혁과 기독교 사회화를 이룰 주체이자 청년 이상향으로 탄생했다. (198)
-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과학(신학문)을 수양한 신체 건강한 청년... (199)
- 1910년대 후반의 동경 유학생은 스스로의 개혁 의지에 걸맞는 청년 이상향을 생산해 냈지만 그것이 담론 수준에서만 머물렀다면 민족 개혁과 기독교 사회화라는 과제 역시 공허할 수밖에 없다. (199)
- 김영만, 1920년대에 정노식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더는 것은 이 시기 기독교 담론이 부딪힌 한계이기도 하다. (199)
-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경 유학생 사회에서는 기독교 담론이 축소되고 그 자리를 사회주의 사상이 대체해 나가기 시작한다. (199)
- 동경 조서기독교청년회의 1910년대 기독교 담론을 통해 2ㆍ8독립선언에 이르는 사상사적 토대를 탐색할 수 있다면, 1920년대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길항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접근 가능할 것이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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