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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피에누스 [Pupienus, AD. c.164~238] 로마 제국 제27대 황제(AD. 238)
[*수호천사*]
2025. 6. 1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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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피에누스 [Pupienus, AD. c.164~238] 로마 제국 제27대 황제(AD. 238)
【개인 정보】
- [이름]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Marcus Clodius Pupienus Maximus)
- [출생] 기원후 164년경
- [사망] 238년 7월 29일, 이탈리아 로마
- [재위] 238년 4월 22일 ~ 7월 29일
- [공동 황제] 발비누스(Balbinus, AD. c.178~238) : 로마 제국 제27대 황제(AD. 238)
- [전임] 고르디아누스 1세(Gordianus I, AD. 159~238) : 로마 제국 제26대 황제(AD. 238)
- [전임] 고르디아누스 2세(Gordianus II, AD. c.192~238) : 로마 제국 제26대 황제(AD. 238)
- [후임] 고르디아누스 3세(Gordianus III, AD. 225~244) : 로마 제국 제28대 황제(AD. 238~244)
【가족 관계】
로마의 역사책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그는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다가 페르셀리나 마르첼라라는 여인에게 입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 [배우자] 섹티아 세테길라
- [아들] 티투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풀케르 막시무스 (Titus Clodius Pupienus Pulcher Maximus) : 티베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 막시무스로 알려져 있다.
- [배우자] 티네이아 : 집정관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와 볼로시아 라오디케의 딸
- [손자] 루키우스 클로디우스 티네우스 푸피에누스 바수스
- [증손자] 마르쿠스 티네이우스 오비니우스 카스투스 풀케르
- [아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Marcus Pupienus Africanus Maximus) : 아버지와 대결했던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동료였다고 한다.
- [딸] 푸피에나 섹스티아 파울리나 케테길라 (Pupiena Sextia Paulina Cethegilla)
- [사위] 마르쿠스 울피우스 에우비오투스 레우투스 : 원로원 귀족 태생으로 누미디아 총독을 지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존 드링크워터는 푸피에누스가 볼테라 출신의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유서깊은 파트리키 가문 태생의 아피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의 딸 클로디아 풀크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부모 모두 제정 시대에 이르러 쇠락했다가 원로원에 재입성된 집안들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출생과 경력 쌓기】
- 푸피에누스는 기원후 164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출생일과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 그는 원로원 의원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군 대대장을 시작으로 로마군에서 군복무를 오래 한 뒤, 원로원 입성 후 여러 선출 관직을 역임하였다. 207년쯤에 군사령관으로 임명받아, 게르마니아의 한 지방으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사르마티아족과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기번은 그가 엄정한 법률 집행으로 가차없이 처벌해 시민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지만 지식인들에게 청렴하고 강직한 관료로 칭송받았다고 한다. 234년, 그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에 의해 집정관으로 선출되었으며, 이어 로마 시장에도 올랐다.
【원로원이 고르디아누스를 황제로 승인하다】
- 238년 3월, 원로원은 고르디아누스를 황제로 선포한 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를 막기 위해 20인 위원회를 조직하여 고르디아누스 1세와 2세가 로마에 도착하기 전까지 트라쿠스를 상대로 버티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238년 4월에 누미디아 총독 카펠리아누스가 두 황제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공격하였다. 고르디아누스 2세는 전사하였고, 고르디아누스 1세는 자살했다.
【황제로 선출되다】
[발비누스와 공동 황제, 제3의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
- 원로원은 곧바로 회의를 소집하여 의원들 중 2명을 새로 황제로 선출하여 국난을 타개하자고 하였다. 이 회의에서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가 새로운 공동 황제로 선출되었다. 이때 고르디아누스 가문을 지지하는 원로원 파벌들이 근위대와 군중을 선동하였고, 대중들은 자신들이 직접 황제를 선출해야 한다며 고르디아누스 가문의 사람을 제3의 황제로 옹립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는 고르디아누스 3세를 새로운 제3의 황제로 세웠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살해되다]
- 발비누스는 로마에 남아 치안과 내정을 담당하였고, 푸피에누스가 병사들을 이끌고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를 상대하려고 출발하였다. 그러던 중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아퀼레이아를 공격하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라인 군단은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에게 충성을 서약했고, 푸피에누스는 라인 군단을 용서하고 원래 근무지인 라인 강 유역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새로 모집한 게르만 족 군인들을 이끌고 로마로 돌아왔다.
【종말 : 발비누스와의 갈등, 근위대의 반란】
[발비누스와의 갈등]
- 한편 발비누스는 로마의 치안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 점차 로마의 근위대와 시민들은 공동 황제들에 대한 불만이 생겼다. 발비누스는 푸피에누스가 데리고 온 게르만 군인들을 이용해서 자신을 제거할까 두려워했고, 푸피에누스는 형편없이 로마를 다스린 발비누스에 실망을 하였다.
[근위대의 반란]
- 푸피에누스는 점차 근위대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눈치채고, 발비누스에게 자신이 모은 게르만족 군대를 로마 시내에 배치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발비누스는 그것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계획으로 판단하고 거부한다. 그러던 중 238년 7월 29일, 근위대의 병사들이 황궁으로 침입했다.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는 서로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다가 근위대에게 체포되어 근위대 진지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은 그들에게 ‘원로원 황제’라고 조롱하며 고문하다가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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