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자료실]/[한국교회사]

[한국교회사] 43세에 장로교 총회장이 된 홍종필 목사

[*수호천사*] 2024. 7. 27. 20:26
728x90

43세에 장로교 총회장이 된 홍종필 목사

 

# 군산 개복동교회, 김필수 목사와의 인연

 

홍종필(洪鍾弼, 1887~1935) 목사는 1887년 강원도 평해(지금은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형인 홍종익과 함께 군산 개복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1912년 홍종필은 세례를 받게 되는데, 그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김필수 목사였다.

 

홍종필이 개복동교회 장로로 장립되던 해(1915) 김필수 목사는 제4회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홍종필로서는 세례를 받은 후 김필수 목사가 총회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근처에서 보면서 신앙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 노회, 총회, 그리고 교파연합운동에도 참여하다

 

홍종필은 장로가 된 다음해인 1916년에 전북노회 서기로 피선되면서 교회에서 노회로 영역을 확장시켰다.

 

1917년에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22년에 개복동교회 조사가 되어 교회를 돌보기 시작했다.

 

1923년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후에 그는 정식으로 개복동교회 목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해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총회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데 12회 총회 부서기에 피선되었다.

 

1924년에 전북노회장이 된 그는 1926년만 제외하고는 총회 임원(부서기, 서기, 회록서기)으로 선임되어 활약을 하게 된다. 아울러 에큐메니칼의 일환으로 출범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제1회(1924년)와 제2회(1925년) 부서기에 피선되면서 교파연합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 43세에 장로교의 수장이 되다!

 

1930년 9월 12일, 제19회 총회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홍종필이 총회장에 당선되었는데, 이때 홍종필의 나이는 43세였다. 아마도 1923년부터 꾸준히 총회에서 역할을 맡아온 것에 대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0대부터 노회와 총회,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했던 그의 경력은 40대 초반에 장로교 총회장이 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교단에서 활동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1920년대의 장로교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뚜렷한 장유유서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상황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교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실력(리더쉽)을 키우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날 많은 교단들은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실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 4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다

 

홍종필 목사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총회장을 역임하였는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48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북노회는 다음과 같은 글로 그를 기리고 있다.

 

先生은 천성이 沈眞하시고 言少遠念하사 진리를 敬愛함으로 一般信者根本이 되시였다”(전북노회 제30회 회록)

 

[홍종필 목사 연보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