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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38권] 제1부 제1장. 3ㆍ1운동과 기독교
[*수호천사*]
2021. 4. 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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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38권] 제1부 제1장. 3ㆍ1운동과 기독교
제1절. 1910년대 기독교인의 단체
1. 기독교 수용과 일제 탄압
- 한국에서 기독교가 처음 수용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인들은 반서양ㆍ반기독교적 성향이 강하였다. 이는 기독교가 이질적인 서양종교라는 것과 천주교에 대한 반감 때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경험하면서 점차 변화... 당시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대부분 이유는 민족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5)
- 대한제국 학부차관 표손일은 당시 기독교에 대해 “정치상의 불평, 사회상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하여 이 종교에 들어가는 자가 많고, 참으로 교리의 심원함에 순복하고 심령의 구원을 얻기 위한 신념을 가진 것 같은 자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 전도자가 이를 포교하는 것도 교도가 이에 귀의하는 것도 모두 정치상 사회상의 불평 불만에 기인한 것이라면 기독교의 전파는 점점 민심의 불온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나아가서 장래의 시정상 일종의 병의 근원을 낳기에 이를 것이다”라고 파악하였다. (6)
- 1910년 일제 105인 사건을 날조하여 기독교인들 탄압... 1915년에는 ‘포교규칙’과 ‘개정 사립학교규칙’을 제정하는 등 종교에 대한 탄압의 법적 근거를 마련... 포교규칙에 의하면 포교사는 조선총독부에 자격요건을 갖추어 신고를 해야 했다. 또한 교회ㆍ설교소ㆍ강의소 등을 설립하고 폐지할 때는 허가를 반드시 받도록 하였다... 감시ㆍ방해ㆍ출판물 검열... (6)
- ‘개정 사립학교규칙’에서는 사립학교 설립, 설립자ㆍ학교장ㆍ교원 등의 변경이 있을 때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아야했고, 폐지할 때도 신고하도록 하였다... 교과용 도서의 검열... 일본어 사용 권장... (6-7)
2. 기독교단체 조직과 사회참여
- 1912년부터 교세는 계속 정체... 조선총독부의 탄압에 의해 양적으로는 정체되었지만, 조직상으로는 일제강점 이전보다 더 체계적으로 강화... (7-8)
- 장로교회는 1912년 창립총회... 44명의 선교사 52명의 한국인 목사, 125명의 장로 (8)
- 감리교회는 1901년이후부터 목사 배출, 1905년 신학교 설립 등으로 교역자 양성... (8)
- 해외 교회조직은 사실상 해외독립운동의 ‘연락처’나 다름없었다. 또한 교회는 국내외 소식을 전하는 ‘중계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9)
- 장로교회 『신학지남』, 감리교회 『신학세계』, 1915년에는 장로교ㆍ감리교 연합기관지 『기독신보』 창간... (9)
- 3ㆍ1운동 당시 기독교인의 적극적인 참여ㆍ주도 요인... 일제의 탄압, 국내외 교회조직의 활성화, 교파간의 교류, 이를 매개하는 기관지 발행... (9)
- 3ㆍ1운동의 배경... 1910년대 세계정세의 변화, 일제의 무단통치와 사회적ㆍ민족적 모순의 심화, 반일민족운동의 전개... (9)
제2절. 3ㆍ1운동 주도와 참여
1. 준비단계에서 기독교 역할
-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윌슨 대통령은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하면서 ‘민족자결주의 주장’... 중국 상해의 신한청년단, 미주지역의 대한인국민회, 일본 동경의 조선유학생학우회 등은 독립운동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10)
- 1918년 신한청년단 여운형은 평북 선천에서 열리는 장로교 총회에 참석하여 이승훈 장로를 만났다. 그 다음 YMCA의 명예총무 이상재를 만나 국제동향을 전하고 독립운동 방략을 의논하였다. (10)
- 1919년 1월말에서 2월초... 신한청년단 선우백이 양전백, 길선주, 이승훈을 만남... (10)
- 평양... 김선두, 강규찬, 도인권, 이덕환, 윤원삼, 김동원 등은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조달, 인원동원 등을 논의... 평양지역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단독으로 독립을 선언할 것 결정... (11)
- 서울... YMCA연합회와 세브란스병원을 중심으로 준비... 종로 YMCA 박희도가 김원벽을 만나 상의... 세브란스병원에서 이갑성... (11)
- 1919년 2월 8일 천도교측에서 연합 제의가 들어옴... 최남선이 이승훈을 만나 의견을 타진... 신석구는 “첫째 교역자로서 정치운동에 참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할까, 둘째 천도교를 교리상으로 보아 상용키 난한데 그들과 합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가?”라고 고심... 길선주와 박희도는 연합을 반대... 정춘수는 기독교 목사 신분으로 감정적으로 처리하면 안된다고 주장... 이승훈은 “민족자결은 천제의 혜택으로 되는 것”이며, 3ㆍ1운동은 “천제가 행복을 내려주시는 시기의 조우”라며 천도교측과 연합을 적극적으로 찬성... (11-12)
- 2월 22일... 박희도, 이승훈, 오화영, 이갑성, 함태영, 안세환, 신흥식, 현순이 모여 논쟁... 오화영은 종교와 관계없이 국민의 자격으로 할 것이라 주장하여 천도교와 연합이 결정... (12)
- 이승훈은 세브란스병원에서 함태영, 이갑성, 선천과 평양에서는 장로교측의 김병조, 양전백, 유여대, 길선주, 이명룡, 감리교의 신흥식 등과 만나 동의를 얻은 후 천도교측과 다시 교섭... 2월 24일 기독교측 대표인 이승훈과 함태영은 손병희를 만나 기독교계의 입장을 밝히고 구체적인 독립운동 방법을 결정했다. (12)
- 기독교측은 2월 27일 안세환을 교섭사로 임명하여 일본으로 파견... 안세환은 일본 경무총감을 만나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설명한 후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개성 남부교회 전도사 김지환은 미국대통령과 파리평화회의의 대표들에게 탄원서를 전달하기 위해 상해에 있는 현순 목사를 방무하였다. 이갑성과 김창준은 『독립선언서』의 배포와 전달을 맡았다. (12-13)
2. 민족대표로서 참여
- 길선주, 이필주, 김창환, 양전백,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박희도, 박동완, 신흥식, 신석구,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김병조 등 16인이 민족대표... 서명은 안했지만 중요 역할을 한 인물은 함태영, 현상윤, 김지환, 김원벽, 정로식, 김도태, 김세환, 안세환... (13)
장로교계 목사 : 길선주(평양 장대현교회), 양전백(선천 천북교회), 유여대(의주 동교회)
장로교계 장로 : 이명룡(철산 덕흥교회), 이승훈( 이승훈(정주교회), 함태영(세브란스 구내교회)
장로교계 집사 : 이갑성(세브란스병원 구내교회)
장로교계 신도 : 현상윤(중앙학교 교사), 김원벽(연희전문 학생), 정로식(중앙기독교청년회 회원), 김도태(명신중 교사), 안세환(평양기독교 서원회 총무)
남감리교 목사 : 신석구(개성 북부교회), 오화영(서울 종로교회), 정춘수(원산 남부동교회)
남감리교 전도사 : 김지환(개성)
북감리교 목사 : 이필주(서울 정동교회), 신흥식(평양 남산현교회), 최성모(해주 남본정교회)
북감리교 전도사 : 김창준(서울 중앙교회), 박동완(정동교회), 박희도(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 김세환(수원 삼일여학교 교사) - 목사 김병조는 서명 직후 해외로 망명하여 체포되지 않았다. (14)
-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모였다. 탑골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시위 핸진에 나섰다. 이날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 12개의 주요도시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대부분 교회 혹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가 중심이 되었다... (14-15)
- 기독교의 전국적인 조직망... 장로교(총회-노회-시찰회), 감리교(연회-지방회-구역회)... 지역사회 내에서는 목회자 한 사람이 여러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15)
- 일제의 탄압 : 화성 제암리교회... 평남 강서 사천의 학살사건, 정주 학살방화사건, 서울 기독교십자가 학살사건, 의주 교회당 방화파괴사건, 천안 병천학살사건... (15-16)
- 1919년 5월부터 상해임시정부와 만주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 등 운동의 양상이 달라졌다... 기독교인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모든 고통과 고난을 감내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다. (16)
제3절. 의열투쟁과 해외독립운동 지원
1. 기독교인의 의열투쟁
- 3ㆍ1운동 직후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 1) 의열활동... 2) 상해임시정부와 만주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는 단체조직과 결성... (17)
- 의열활동... 강유규, 박치은, 김상옥... (17)
- 강우규... 1859년 평남 덕천군 출생... 장로교 전도사... 함남 흥원에서 육영사업을 통한 국권회복운동 전개... 1910년 만주로 망명하여 요하현 신흥동에 정착하여 민족운동의 근거지 마련... 노인동맹단에 가입, 요하현 지부 책임자가 되었다. 총독을 처단하기고 결심... 6월 11일 요하현을 출발하여 14일 원산에 도착... 6월 15일 원산 최자남의 집에 머물면서 광석동 장로교회를 왕래하며 거사기회 엿봄... 8월 28일 서울에 도착한 그는 안국동에 머물다가 남대문역 5정목으로 숙소를 옮김... 9월 2일 오후 4시경 총독이 도착하자 명주수건에 싼 폭탄을 던져 한국인이 식민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항거... 9월 17일 체포...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교수대에서 세상을 떠남... (17-18)
- 강유구의 유서... “30여 년 동안을 북조선 남만주로 도라다니시면서 당신의 의술을 잘 하시닛가 지성것 버러서 쓰신 곳은 학교와 교회인데, 당신이 설립하신 학교가 여섯 군데이요 야소교회가 세 군데이지요. 어젓게는 조선청년의 향할 곳은 긔독교이니, 먼저 긔독교를 밋어 심령을 맑게 한 후에 공부를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고 하섯음니다.” 『동아일보』 1920년 5월 28일... (18)
- 김상옥... 1890년 서울 동대문안 어의동에서 포수 김귀현의 둘째아들로 출생... 3ㆍ1운동에 참여한 후 동대문 장로교회 윗집에 살고 있던 영국인 여성 피어슨의 집에서 혁신단을 조직... 『혁신공보』 발간... 김좌진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정서원이 김동순을 만남... 1920년 미국의원단이 내한할 때 한민족이 독립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자는 계획... 재등실 총독을 암살계획... 일경의 예비검속에 걸림... 상해로 망명... 이시영, 김구 조소앙 등과 재의거 계획을 논의한 후 의열단에 가입... 1922년 11월 중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 김상옥에게 권총과 실탄, 격문 등을 건네줌... 1923년 1월 초 김상옥은 폭탄도 받지 못하고 서울에서 대기... 경찰부의 추적을 받아 삼판통과 효제동에서 두 차례 걸친 경찰과 총격전으로 자결ㆍ순국... (19-20)
2. 국외독립운동단체와 연계 및 지원
- 임시정부의 연통부 조직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 연통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지역은 서북지역... 서북지역에서 연통제 조직ㆍ운영이 원할했던 이유는 기독교 사상에 의해 근대민족의식 등이 다른 지역보다 더 의식화되었기 때문... (20-21)
- 나남사건... 함북독판부는 1919년 6월 기독학교 교사 김인서, 박원혁 등이 최준규를 감독으로 내세워 조직... 12월 박대욱과 박정발이 나남경찰서에 체포됨으로써 조직이 발각... 부감독 김인서를 비롯한 47명 전원이 실형을 선고받음... 이외에 의주군감의 목사 송문정이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음... (21)
- 기독교인이 주도해서 조직한 단체는 대한독립애국단,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여성항일운동단체, 대한적십자회... (21)
- 대한독립애국단... 단장 신현구, 박연서, 김상덕, 조종대.. 조선인관리퇴직동맹... 일제의 식민기관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을 모두 퇴직시켜 조선총독부의 행정기능을 마비시키자는 것... 1920년 1월에 발각되어 해산... (21-22)
-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해에서 밀파된 조용주, 연병호 등과 안재홍, 이병철 등의 연합으로 1915년 5월에 조직... 『외교시보』 발간... 중부 이남 지역인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지에서 연통부의 역할도 담당... (22)
- 여성항일운동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서울), 대한애국부인회(평양), 대한국민회부인향촌회(평남 순천), 대한독립여자청년회(강서), 결백단(평양), 대한독립부인청년단(평남 대동), 여자복음회(평남 개천), 독립여자부(서울)... (22)
- 서울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1919년 10월 19일 김마리아 주도로 결성... 1919년 3월 조직된 혈성부인회와 4월 조직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가 통합ㆍ발전하여 결성된 조직... 혈성부인회는 장로교 계통의 여학교인 정신여학교 교사 장선희, 재령 명신여학교 교사 오현주, 군산 멤볼딘여학교 교사 오현관, 세브란스 병원 간호원 이정숙, 정신여학교 졸업반 이성완이 주도해서 만듬... 3ㆍ1운동으로 수감된 민족운동가들의 사식 및 기타 필수품 차입과 그 가족들의 생활 구제... (22-23)
- 1919년 4월 조직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 김원경, 최숙자, 김희열, 김희옥 등이 임득산, 임창준의 협조를 얻어 결성한 단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결성... (23)
-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혈성부인회의 통합...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총재에 오현관, 부총재 김희열, 재무부장 오현관, 재무주임 오현주, 회장 오현주, 부회장 최숙자, 평의원 이정숙, 서기 김희옥, 외교원 장선희, 회원대표 김원경, 고문 이병철... 지방순회로 지부 조직... 회장 오현주의 활동 부진으로 세력이 약화... 조직의 강화를 위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본부로 재조직.. (23-24)
- 대한민국애국부인회본부... 대부분 장로교 중심의 기독교 여성들... 재무부를 축소하고 적십자부와 결사부를 신설... 약 80명의 회원... (24)
- 평양... 1919년 11월 감리교의 애국부인회와 장로교의 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 상해임시정부에서 파견된 김정목과 김순일의 권고로 통합을 결정... ‘대한애국부인회본부’와 마찬가지로 적십자부를 두어 대일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즉각적으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 (25)
- 항일여성운동단체를 조직하고 주도한 세력들은 대부분 기독교 여성들... 기독교 신앙... 김마리아는 옥중생활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어려움을 버텨나갔다... 이들의 민족의식은 여성문제 의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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