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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무신왕 [大武神王, AD. 4~44] 고구려 제3대 국왕(AD. 18~44)

[*수호천사*] 2025. 6. 2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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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무신왕 [大武神王, AD. 4~44] 고구려 제3대 국왕(AD. 18~44)


【개인 정보】

  • 이름 : 무휼(無恤), 주류(朱留), 미류(味留), 막래(莫來)
  • 별호 : 북국신왕(北國神王)
  • 시호 : 대무신왕(大武神王),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 대주류왕(大朱留王)
  • 출생 : 기원후 4년
  • 사망 : 기원후 44년 10월(음력)
  • 재위 : 기원후 18년 10월(음력) ~ 기원후 44년 10월(음력)
  • 전임 : 유리명왕
  • 후임 : 민중왕

【가계 정보】

  • 부친 : 유리명왕
    모친 : 왕후 송씨 ☞ 송양의 딸 송씨가 유리왕 3년인 기원전 17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다른 송씨일 가능성이 있다.
  • 형 : 도절(都切, ? ~ AD. 1) : 첫 번째 태자
    형 : 해명(解明, BC. 12 ~ AD. 9) : 두 번째 태자
    동생 : 여진(如津, ? ~ AD. 18)
    동생 : 해색주(解色朱, ? ~ AD. 48) : 제4대 국왕 민중왕(閔中王)
    동생 : 재사(再思, ?~?) : 제6대 국왕 태조대왕의 아버지
    – 조카 : 태조대왕(太祖大王, 47~165 재위 : 53~146)
    누이 : 미상(?~?) : 우씨의 부인
  • 왕비 : 원비
    – 아들 : 모본왕(慕本王, ?~53, 재위 : 48~53)
    – 손자 : 고익(高翊)
  • 왕비 : 해씨 부인(解氏) – 갈사부여 갈사왕의 손녀
    – 처남 : 도두왕(都頭王)
    – 아들 : 호동(好童, ?~32) – 낙랑공주와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비의 모함으로 자살한다.
    – 맏며느리 : 낙랑공주(樂浪公主, ?~32)

【대무신왕 연보】

 

【기원후 9년】 부여왕 대소가 고구려를 침략하겠다고 위협하다

  • 부여왕 대소가 고구려를 침략하겠다고 위협하자 당시 왕자였던 무휼은 부여 사신에게 부여의 내부 사정부터 잘 다스리라 충고하였다.

【기원후 13년】 부여가 침공하자 매복작전으로 부여군을 격파하다

  • 음력 11월에 부여가 침공하자 무휼은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매복작전을 펼쳐 부여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기원후 14년】 태자로 책봉되다

  • 태자로 책봉되어 국정을 맡아보았다.

【기원후 18년】 왕위에 오르다

  • 음력 10월에 유리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기원후 20년】 부여의 대소왕이 몸은 둘인데 머리는 하나인 붉은 까마귀를 보내다

  • 음력 10월, 부여의 대소왕은 대무신왕에게 몸은 둘인데 머리는 하나인 붉은 까마귀를 보내며 사신을 통해 “까마귀는 검은 법인데 이제 빛이 변하여 붉게 되었고, 또한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이니, 이는 두 나라가 병합될 징조이다.”라고 전하며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에 대무신왕은 “검은색은 북방의 색인데, 이제 변하여 남방의 색이 되었다. 또한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으로 그대가 이것을 얻었으나 가지지 못하고 내게 보냈으니 양국의 존망은 알 길이 없도다.”라며 까마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여 대소왕에게 전하였다. 대소왕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놀라며 후회하였다.

【기원후 21년】 부여 정벌을 감행하다

  • 음력 12월, 부여 정벌을 감행하였다.

【기원후 22년】 부여 대소왕이 죽다 /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고구려에 귀순하다

  • 음력 2월, 고구려 장수 괴유가 대소왕을 죽였으나 부여군에게 포위 당한 끝에 후퇴하였다. 대소왕을 잃은 부여는 분열되어 대소의 동생은 압록곡 부근에 갈사부여를 세웠다.
  • 음력 7월,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부여 백성 1만 여 명을 데리고 고구려에 귀순하였다.

【기원후 26년】 개마국을 복속시키다 / 구다국이 항복하다

  • 음력 10월, 개마국을 공격하여 복속시켰다.
  • 음력 12월, 구다국이 항복하였다. 또한 을두지(乙豆智), 송옥구(松屋句) 등을 등용하여 내치를 다졌다.

【기원후 28년】 한나라 요동 태수가 고구려를 침략하다

  • 음력 7월, 한나라의 요동 태수가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에 고구려군은 을두지의 진언을 따라 위나암성에서 수십 일 동안 농성하였다. 한나라군이 포위를 풀지 않자 을두지가 계책을 내기를 위나암성이 암석의 땅으로 물이 없을 것이라 여기고 물이 고갈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니 연못에서 잉어를 잡아 적장에게 보내도록 하였다. 그러자 적장은 성 안에 물이 있으니 단시일에 점령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퇴각하였다.

【기원후 32년】 낙랑국을 정복하다 / 왕자 호동이 자살하다 / 해우를 태자로 삼다

  • 낙랑국을 공격하여 정복하였다. 낙랑 정벌에 앞서 왕자 호동이 옥저에 사냥을 나갔다가 낙랑왕 최리(崔理)와 만나 사위가 되었다. 호동은 귀국한 후 최리의 딸에게 은밀히 서신을 보내 낙랑의 고각(鼓角)을 부수도록 하였고 이후 낙랑국을 기습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일설에는 대무신왕이 낙랑을 멸하기 위해 호동을 최리의 딸과 정략혼인시키고, 그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 북과 뿔피리를 파괴하게 하였다고도 한다.
  • 음력 11월에 왕자 호동이 대무신왕의 첫째 왕후의 모략에 빠져 어머니를 간통했다는 누명을 받았으며,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하였다.
  • 음력 12월에는 해우(解憂)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이해에 후한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여 광무제로부터 왕호를 인정받았다.

【기원후 44년】 사망하다

  • 음력 10월, 대무신왕은 향년 40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동시대 주변 국가】

  • 백제 : 온조왕 (기원전 18년~서기 29년) / 다루왕 (29년~77년)
  • 가야 : 김수로왕 (42년?~199년)
  • 신라 : 남해 차차웅 (4년~24년) / 유리 이사금 (24년~57년)
  •  : 스이닌 천황 (기원전 29년~70년)
  •  : 왕망 (8년~23년)
  • 후한 : 한 광무제 (25년~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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