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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아누스 2세 [Gordianus II, AD. c.192~238] 로마 제국 제26대 황제(AD. 238)
[*수호천사*]
2025. 6. 2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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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아누스 2세 [Gordianus II, AD. c.192~238] 로마 제국 제26대 황제(AD. 238)
【개인 정보】
- [이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셈프로니아누스 로마누스(Marcus Antonius Gordianus Sempronianus Romanus)
- [영문] 고르디안 2세(Gordian II)
- [출생] 기원후 192년경
- [사망] 기원후 238년 4월 12일, 카르타고
- [재위 기간] 기원후 238년 3월 22일 ~ 4월 12일
- [공동 황제] 고르디아누스 1세(Gordianus I, AD. 159~238)
- [전임] 막시미누스 트라쿠스(Maximinus Tracus, AD. c.173~238) : 로마 제국 제25대 황제(AD. 235~238)
- [후임] 발비누스(Balbinus, AD. c.178~238) : 로마 제국 제27대 황제(AD. 238)
- [후임] 푸피에누스(Pupienus, AD. c.164~238) : 로마 제국 제27대 황제(AD. 238)
【가족 관계】
- [아버지] 고르디아누스 1세(Gordianus I, AD. 159~238) : 로마 제국 제26대 황제(AD. 238)
- [배우자] 파비아 오레스틸라(possibly Fabia Orestilla)
- [본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Marcus Antonius Gordianus, AC. c.192~238) : 로마 제국 제26대 공동황제 고르디아누스 2세(AD. 238)
- [누이] 마에키아 파우스티나(Maecia Faustina)
[배우자] 유니우스 리키니우스 발부스(Junius Licinius Balbus)- [아들] 고르디아누스 3세(Gordianus III, 225~244)
【고르디아누스 2세의 생애】
【출생 및 가문】
- 그는 고르디아누스 1세(Gordianus I)와 파비아 오레스틸라(Fabia Orestilla)의 아들로 태어났다.
- 파비아 오레스틸라는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Historia Augusta)』에 따르면 기원후 165년경에 태어났으며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후손인 풀부스 안토니누스(Fulvus Antoninus)라고 소개된다. (하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이 정보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한편 일부 사료에는 그리스의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의 외손녀라고도 한다.
- 고르디아누스 2세의 여동생은 마이키아 파우스티나(Maecia Faustina)로 고르디아누스 3세의 어머니다.
【엄청난 부, 난잡한 사생활】
- 고르디아누스 2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부자였다고 알려졌다. 6만 2천 여권을 소장한 도서관을 소유하기도 했고, 로마 시민들을 위한 각종 교양 보급 역할에도 꽤 영향력이 큰 원로원 의원으로 대외적 이미지는 꽤 좋았다고 전해진다.
- 4세기 초 익명의 작가가 저술한 <카이사르들에 관한 초록(Epitome de Caesaribus)>에 따르면, 갈리에누스 암살에 가담한 뒤 제위에 오른 클라우디우스 2세가 고르디아누스 2세의 사생아 또는 서자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별로 믿을 만한 기록이 아니다.
- 한편으로 고르디아누스 1세와 고르디아누스 2세의 성공은 엘라가발루스 시대에 도드라졌기 때문에 엘라가발루스가 총애한 히에로클레스의 옛 주인이자 남자애인, 스승으로 히에로클레스의 어머니를 정부로 두었다는 고르디우스가 고르디아누스 2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는 점성술에 빠져 지냈다는 소문도 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에드워드 기번은 그가 22명의 첩을 두었다고 기록하였다.
【고르디아누스 2세, 아버지와 함께 공동 황제가 되다】
- 그는 엘라가발루스 치세 동안 재무관으로 봉직했고, 세베루스 알렉산드로스 황제 때에는 법무관 및 보좌 집정관으로 근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37년 또는 238년에는 아버지 고르디아누스 1세가 총독으로 재직하던 아프리카 속주에서 행정과 군사를 보좌했다고 한다.
- 아버지인 고르디아누스 1세가 속주민들에게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원로원은 238년 6월 26일, 고르디아누스 1세와 함께 그의 아들인 고르디아누스 2세를 공동 황제로 결정하였다. 고르디아누스 1세가 고령임을 감안한다면 제국의 미래는 고르디아누스 2세의 것이 되는 셈이었다.
- 한편 고르디아누스 1세와 고르디아누스 2세는 평화적으로 원로원에게 호소하지 않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여 근위대와 평민들의 인심을 샀다는 주장도 있다. 아울러 막시미누스의 근위대장인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비탈리아누스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를 몰래 파견했다. 정작 비탈리아누스가 암살되었을 때 근위대와 가족들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막시미누스가 부하들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총독이나 원로원 이름을 도용해 암살했기 때문이다.
【누미디아 총독 카펠리아누스가 고르디아누스에 반대하다】
- 이때 고르디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된 아프리카 속주 서쪽에 ‘누미디아 속주’의 총독 카펠리아누스가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명분은 군대가 옹립한 황제를 원로원이 뒤집었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실제로 그 이전에 고르디아누스가 카펠리아누스를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었을 것이다.
- 카펠리아누스가 지휘하는 제3아우구스타 군단을 맞아 고르디아누스의 아들이 용감하게 싸웠지만 1천 명의 수비병으로 6천 명의 군단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비병은 흩어졌고 고르디아누스 2세는 전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르디아누스 1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로원, 고르디아누스의 손자를 차기 황제로 옹립하다】
- 고르디아누스 부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원로원은 당황했다. 그들은 푸비에누스와 발비누스 두 사람을 공동 황제로 옹립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수도를 향해 진격해오는 막시미누스를 맞아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수도 로마에 살고 있던 고르디아누스의 손자에게 차기 황제의 칭호인 ‘카이사르’를 주었다. 그가 고르디아누스 3세이다.
- 이후 로마를 향해 진격해 오던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아퀼레이아 도시를 공격하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살해되었다. 그러나 제국은 아직 안정되지 않았고, 소위 ‘육황제의 해’로 언급되는 내전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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