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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 [康宗, AD. 1152~1213] 고려의 제22대 국왕(1211~1213)
[*수호천사*]
2025. 6. 2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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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 [康宗, AD. 1152~1213] 고려의 제22대 국왕(1211~1213)
강종(康宗, AD. 1152~1213)은 고려의 제22대 국왕(1211~1213)으로 이름은 왕오(王韺)이다. 무신집권기, 그 중에서도 최충헌(崔忠獻)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때였기에 별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출생부터 즉위까지】
【기원후 1152년】 출생하다
- 4월 5일(음력), 인종과 공예태후의 셋째 아들인 왕자 익양공(명종)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 어머니는 광정왕후(의정왕후) 김씨이며, 문종의 손자인 강릉공 왕온의 셋째 딸인데 모계 성씨인 김씨를 사용하였다.
【기원후 1170년】 무신정변으로 부친(명종)이 왕위에 오르다
- 1170년(의종 24년), 무신정변으로 의종이 폐위되고 아버지 익양공이 추대되자 따라서 입궁하였다.
【기원후 1171년】 관례를 올리다
- 1171년(명종 1년) 성인으로서 관례를 올렸다.
【기원후 1173년】 왕태자에 책봉되다
- 1173년(명종 3년) 왕태자에 책봉되었다.
【기원후 1174년】 태자비 사평왕후 이씨
- 1174년(명종 4) 3월에는 이의방의 딸을 태자비로 맞이하였으니, 사평왕후(思平王后) 이씨(李氏)였다. 이들의 사이에서는 수녕궁주(壽寧宮主)가 태어났다.
- 태자의 장인이 된 이의방은 겨울에 정중부의 아들 정균(鄭筠)에 의해 살해되었다. 결국 사평왕후도 반역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말았다.
【기원후 1175년】 태자비 원덕태후 유씨
- 1175년(명종 5) 9월에 왕숙은 새로 신안백(信安伯) 왕성(王珹)의 딸을 새 태자비로 맞이하였으니, 이는 원덕태후(元德太后) 유씨(柳氏)이다. 이 둘의 사이에서 훗날 차기 국왕 고종(高宗)이 태어난다.
【기원후 1196년】 이의민이 제거되다
- 1196년(명종 26) 4월에는 포악하기로 악명 높았던 이의민(李義旼)이 최충헌(崔忠獻) 형제에 의해 제거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개경 한복판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계속되는 여러 세력 간의 칼부림 속에 왕의 측근들과 금군(禁軍)ㆍ환관(宦官)들도 많이 목숨을 잃었다.
【기원후 1197년】 부친 명종이 폐위되고, 강화도로 유배되다
- 1197년(명종 27) 9월에 명종을 폐위시키고 평량공(平涼公) 왕민(王旼)을 새 왕으로 즉위시키니, 그가 20대 국왕 신종(神宗)이다.
- 폐위된 명종은 창락궁(昌樂宮)에 유폐되고, 태자 왕숙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기원후 1202년】 부친 명종이 사망하다
- 1202년(신종 5) 11월, 창락궁에 유폐되어 있던 명종이 병으로 사망하였다. 유배지에 있던 왕숙은 부친의 장례에 참석할 수 없었다.
【기원후 1210년】 강화도에서 소환되어 돌아오다
1210년(희종 6) 12월에 국왕 희종이 그를 강화도에서 소환하였다. 13년만의 귀환이었으며, 이미 그의 나이 59세였다.
【즉위부터 말년까지】
【기원후 1211년】 희종이 폐위되어 강종으로 즉위하다
- 1211년(희종 7) 1월에 희종은 왕숙을 수사공ㆍ상주국ㆍ한남공(守司空ㆍ上柱國ㆍ漢南公)으로 책봉하고, 왕정(王貞)으로 이름을 고쳐주었다.
- 왕정(王貞)이 돌아온 그 해 12월, 희종은 궁궐에서 측근들과 모의하여 최충헌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뜻밖의 기습으로 최충헌은 크게 당황하였지만, 결국 최충헌의 부하들에 의해 희종의 친위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분노한 최충헌은 왕을 폐위하여 강화도로 내쫓았다가 다시 자연도(紫鷰島)로 옮기고, 태자와 종실ㆍ여러 신하들을 대거 유배하였다. 그리고 왕정을 즉위시키고 이름을 왕오(王祦)라 고쳤다.
- 금(金)에 즉위 사실을 알리고 책봉을 받은 일과 최충헌에게 공신호를 내리고 부(府)의 이름을 흥녕부(興寧府)에서 진강부(晉康府)로 고쳤다.
【기원후 1212년】 왕진을 왕태자로 책봉하다
- 1월에 안악현(安岳縣)에 있던 아들 왕진을 개경으로 불러들였다.
- 5월에 어머니에게 광정태후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 7월에 아들 왕진을 왕태자로 책봉하였다.
- 10월에 부인 유씨를 연덕궁주(延德宮主)로 책봉하였다.
【기원후 1213년】 부왕 명종의 능을 배알하고 세상을 떠나다
- 1213년(강종 2) 4월, 부왕 명종의 능인 지릉(智陵)에 배알하였다.
- 아버지의 능에 다녀온 넉 달 뒤, 강종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나흘 뒤에 유조(遺詔)를 남기고 그날 저녁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조를 받들어 아들 왕진(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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