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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靖宗, 1018~1046] 고려의 제10대 국왕(1034~1046)
[*수호천사*]
2025. 6. 2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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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靖宗, 1018~1046] 고려의 제10대 국왕(1034~1046)
【개인 정보】
- [휘] 왕형(王亨)
- [자] 신조(申照) 또는 신소(申炤)
- [별호] 평양군(平壤君)
- [묘호] 정종(靖宗)
- [시호] 홍효안의강헌영렬문경용혜대왕(弘孝安毅康獻英烈文敬容惠大王)
- [능호] 주릉(周陵)
- [출생] 1018년 7월 17일(음력)
- [사망] 1046년 5월 18일(음력)
- [재위] 1034년 9월 17일(음력) ~ 1046년 5월 18일(음력)
- [전임] 덕종(德宗, 1016~1034) : 고려의 제9대 국왕(1031~1034)
- [후임] 문종(文宗, 1020~1083) : 고려의 제11대 국왕(1046~1083)
【가족 관계】
[부모]
- 부 : 현종(顯宗) / 생몰 : 992~1031년 / 안종(安宗) 왕욱(王郁), 헌정왕후 황보씨(獻貞王后 皇甫氏) / 제8대 국왕
- 모 : 원성왕후 김씨(元成王后 金氏) 원성왕태후(元成王太后) / 생몰 : ?~1028년 / 부모 : 김은부(金殷傅), 안산군대부인 이씨(安山郡大夫人 李氏 - 이허겸의 딸. 이자연의 고모)
- 현종과 원성태후(元成太后) 김씨(金氏)의 둘째 아들
- 덕종의 친동생
- 문종, 정간왕의 이복 형
[배우자]
- 제1비 : 용신왕후 한씨(容信王后 韓氏) / 본관 : 단주 / 생몰 : ?~1036년 / 부모 : 한조(韓祚), 미상 / 문종 2년(1048년) 추존
- 제2비 : 용의왕후 한씨(容懿王后 韓氏) / 본관 : 단주 / 생몰 : 미상 / 부모 : 한조(韓祚), 미상
- 제3비 : 용목왕후 이씨(容穆王后 李氏) / 본관 : 부여 / 생몰 : 미상 / 부모 : 이품언(李禀焉), 미상 / 덕종비 이씨와 자매
- 제4비 : 용절덕비 김씨(容節德妃 金氏) / 본관 : 경주 / 생몰 : ?~1102년 / 부모 : 김원충(金元冲), 미상 / 문종 비 인복덕비와 자매
- 후궁 : 연창궁주 노씨(延昌宮主 盧氏) / 본관 : 미상 / 생몰 : ?~1048년 / 부모 : 미상
[왕자]
- ▨▨군(▨▨君) 형(詗) / 생몰 : 1035~? / 생모 : 용신왕후 한씨 / 배우자 : 미상
- 애상군(哀殤君) 방(昉) / 생몰 : 미상 / 생모 : 용의왕후 한씨 / 배우자 : 미상
- 낙랑후(樂浪侯) 경(璥) / 생몰 : 미상 / 생모 : 용의왕후 한씨 / 배우자 : 미상
- 개성후(開城侯) 개(暟) / 생몰 : ?~1062년 / 생모 : 용의왕후 한씨 / 배우자 : 미상
[왕녀]
- 도애공주(悼哀公主) / 생몰 : ?~1057년 / 생모 : 용목왕후 이씨 / 배우자 : 미상
【출생 이후 즉위 이전까지】
【기원후 1018년】 출생하다
- 7월 17일(음력), 현종과 원성태후(元成太后) 김씨(金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덕종의 친동생이며 문종, 정간왕의 이복 형이다.
【기원후 1022년】 평양군에 봉해졌다
- 1022년(현종 13년) 내사령 평양군(內史令 平壤君)에 봉해졌다.
【기원후 1027년】 내사령에 임명되었다
- 1027년 개부의동삼사검교태사 겸 내사령(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 兼 內史令)에 임명되었다.
【즉위 이후 말년까지】
【기원후 1034년】 왕위에 오르다, 팔관회를 개최하다
- 1034년(덕종 3) 9월 동복형인 덕종의 유명(遺命)으로 왕위에 올랐다.
- 10월 서경(西京)에 이어 11월에는 개경에서 팔관회(八關會)를 개최하여 자신이 직접 신봉루(神鳳樓)에 거둥하여 참가하였으며, 송나라 등 외국 상인들도 예식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을 상례로 만들었다.
- 황주량, 최제안, 최충, 유지성 등을 각각 예부, 이부, 형부, 공부상서로 기용하여 조정을 개편하였다.
- 즉위년 11월 팔관회를 열었을 때 송나라의 상인들과 동ㆍ서여진(東西女眞) 및 탐라국에서 토산물을 바쳤는데, 이후 이들 동, 서 여진의 사신 및 탐라국 사절단에게도 팔관회를 관람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기원후 1035년】 창성에 성을 쌓다
- 1035년 서북로(西北路) 함경남도 송령(松嶺, 함흥 부근)에 장성을 쌓아 변방의 수비를 강화했고, 지금의 평안북도 창성(昌城)에 성을 쌓아 창주(昌州)라 하고 백성을 이주하여 살게 했다.
【기원후 1036년】 동서대비원을 수리하다
- 1036년 제위군(諸衛軍)에게 토지를 더 지급하여 변경의 방비를 맡게 하였다.
- 1036년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을 수리하여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의복과 옷을 지어주게 하였다.
- 팔관회를 개최하였다.
【기원후 1037년】 거란과 화친을 맺다
- 그러나 거란의 계속된 위협으로 1037년 압록강 일대에서 거란의 침입을 받자, 강화 회담을 체결하여 한동안 단절되었던 조공을 다시 바치기로 하여 거란과 화친을 맺었다.
【기원후 1038년】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다
- 1038년부터는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기원후 1039년】 요나라 황제로부터 책봉, 노비종모법 부활
- 1039년 거란의 요나라 황제로부터 책봉교서를 받았다.
- 1039년 광종 때 폐지된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을 다시 부활하여 노비 여성에게서 태어나는 자녀는 노비가 되도록 했다.
- 팔관회를 개최하였다.
【기원후 1041년】 팔관회 개최
- 팔관회를 개최하였다. 이것은 유교 정치를 지향하던 성종(成宗)이 간소화시켰던 팔관회를 부활하고자 했던 현종과 덕종의 뜻을 이어받아 새롭게 정비해 나갔던 과정으로 이해된다.
【기원후 1044년】 천리장성 완공
- 비밀리에 백성들을 징발하여 정변진(靜邊鎭)ㆍ숙주(肅州)ㆍ영원(寧遠)ㆍ평로(平虜)ㆍ장주(長州)ㆍ정주(定州)ㆍ원흥진(元興鎭) 등에 계속 성을 수축하게 하였는데, 1044년 천리장성을 완공케 했다.
【기원후 1045년】 악공과 잡류 자손의 과거 금지
- 1045년 임진강에 부교(浮橋)를 놓았다.
- 1045년(정종 11)에는 악공(樂工)과 잡류(雜類)들의 자손들이 과거에 나가는 것을 금지하였다.
- 1045년에는 비서성(秘書省)으로 하여금 『예기정의(禮記正義)』ㆍ『모시정의(毛詩正義)』 등을 간행해 문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기원후 1046년】 장자상속법, 문종에게 왕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남
- 1046년 장자상속법(長子相續法)을 제정했다.
- 정종은 병이 위독해지자 이복 동생 휘(徽, 문종)를 불러 임시로 국정을 맡게 하였다.
- 1046년(정종 12) 5월에 세상을 떠났다.
- 능은 개경부 북효의 주릉(周陵)이나,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있지 않았으나, 2016년 6월 2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개성시 해선리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서 1릉과 2릉 총 2개의 왕릉을 발견해 그중 1릉이 숙릉으로 2릉이 주릉으로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2릉(주릉)의 크기는 남북 3.56mㆍ동서 3.38mㆍ높이 2.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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