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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관점으로 살펴본 사사 드보라와 바락
다음 단락과의 연결점은 여선지자 드보라가 활동하던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하라마)와 벧엘(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삿 4:4-5).
자신의 영향력이 매우 광범위한 탓에 드보라는 갈릴리 지역에 살고 있던 지파들이 직면한 위기 상황에 직접 개입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하로셋 학고임 = 70인역, 아리스또 톤 에뜨논)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 병거 900대가 있어 2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삿 4:2-3).
우리는 여기서 야빈이 상부 갈릴리의 ‘마론 물가’(70인역, 수 11:5, 7)와 관련된 정복 이야기에서 하솔의 통치자로 나온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호수아 11장 본문에 의하면 하솔은 불로 태워졌고 그곳의 왕은 죽임을 당했다(수 11:10-11). 두 본문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다양한 이론들이 제기되었다. 어떤 이들은 야빈에 대한 언급을 현재의 본문에서 제거하고자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단순히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어 여호수아 11장을 사사기 4-5장보다 뒤에 배치하면 된다고 본다. 어쨌든 이 두 본문은 분쟁 이야기의 북부 지역 목록에 속한 것으로서, 전자가 상부 갈릴리에 관한 본문이라면, 후자는 하부 갈릴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솔을 “그 모든 나라의 머리”(수 11:10)로 보는 전승이 중기 청동기 시대로부터 비롯된 기억일 것 같지는 않다. 이와 아울러 이 지역에 대한 발굴 작업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하솔이 주전 12세기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지 못했음을 보여 준 바가 있다. 하솔의 중심적인 역할은 아마도 일찍이 납달리 지파가 중앙 산지와 남부 산지에 정착한 다른 지파들보다 상당히 일찍 제벨 자르막의 대산괴(大山塊) 지역에 정착(그들이 레바논의 베카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시리아 사막으로부터 왔는지는 불확실함)하던 시절에 생겨난 전승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두 세력 사이의 분쟁은 산문체의 글(삿 4장)에서뿐만 아니라 상당히 오래된 언어로 기록된 시문체의 글(삿 5장)에서도 발견된다. 산문체의 글은 그 분쟁이 어떠한 결말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진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에는 설명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지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시문체의 글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사회 정황, 곧 각 지파들 간의 대결을 초래하고 또 그들의 열정이나 무관심을 초래하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또한 분쟁과 관련된 지리 정보와 분쟁의 진행 과정에 관한 약간의 보충 설명을 보태고 있다.
첫째로, 독자들은 먼저 4장에 있는 산문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압제자는 하솔의 통치자와 그의 군사령관 시스라였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사사기 4:2-3에 비추어 시스라는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곳은 므깃도 동쪽에 있는 광활한 평야 지대요, 수세기 동안 군대 소집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임을 보여준다.
시스라를 향한 군사 행동은 맨 먼저 여선지자 드보라에 의해 시작되었다.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케데쉬 납탈리)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10,000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하르 타보르)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키숀)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느니라(삿 4:6-7).
여기서 생겨나는 지리적인 문제점들 중의 하나는 바락의 고향으로 알려진 납달리 게데스가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드보라의 전쟁이 다아낙과 므깃도 가까이에 있는 계곡 쪽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견해는 납달리 게데스를 텔 아부 쿠데이스(텔 케데쉬), 곧 다아낙으로부터 북쪽으로 2.5마일(4km) 떨어진 곳의 평지 위에 있는 조그마한 언덕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산문체의 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사기 4:11에 언급된 게데스가 다볼 산 동쪽에 있음에 틀림이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는 납달리 지파와 잇사갈 지파의 경계 지역에 있으며, 다볼 산과 요단 계곡의 경계 지역에 있기도 하다. 또한 그곳은 하부 갈릴리의 아다미-네캡(키르벳 에트-텔 에드-다미예)과 잡느엘(텔 엔-나암=텔 이남) 가까이에 있다. 따라서 고고학적이고 지리적인 측면에서 볼 경우에 납달리 게데스의 유력한 후보지는 긴네렛 바다 위의 서쪽 경사면에 있는 키르벳 케디쉬(케데쉬)이다.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엘론브차아난님’)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삿 4:9b-11).

전쟁 자체는 본문에서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시스라가 모든 벙거 곧 철 병거 900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 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이에 바락이 10,000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 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삿 4:12-16).
드보라가 공격 명령을 내리자 이스라엘 전사들은 힘과 속력을 다하여 산비탈을 따라 밑으로 내려간다. 가나안 사람들의 전차 부대와 보병 부대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며,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 채로 하로셋 학고임에 있는 자기들의 주둔지로 퇴각하고 만다. 대체 무엇이 그들의 행렬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도망가게 한 것일까? 그 해답을 우리는 시문체의 글에서 찾아볼수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에돔(‘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땅이 진동하고하늘이 물을 내리고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삿 5:4-5)
출애굽 전승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에돔은 아라바의 서쪽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내 산과의 평행 구절에 의하여 뒷받침된다. 야웨의 오심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폭우가 쏟아질 때의 기손 강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스라의 전차들에게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평야 지대가 거대한 흙탕물로 뒤덮이고 말았다. 시스라의 전차들이 수렁에 빠지자 병사들은 전차에서 내려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스라엘 보병 부대는 여세를 몰아 도망하는 가나안 병사들을 오늘날의 텔 아다쉽에서 시작되는 제방길을 따라서 지금의 므깃도 교차점에 이르기까지 추격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다면 시문체의 글에 있는 다음의 중요한 구절이 쉽게 이해가 된다.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가나안 왕들이 싸웠으나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삿 5:19-21a).
맛소라 본문의 절 구분법에 의하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라는 구절은 가나안 왕들의 싸우는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위의 본문 배열에서는 ‘에트나흐’ 부호(일종의 휴지[休止] 부호를 가리키는 바,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다아낙 밑에 이 휴지 부호가 있음)가 무시된 채로 노략물 수집이 지리적인 배경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본문 구성은 그 지역에서의 오래된 병력 주둔 전승과 일치한다. “므깃도 물가의 다나악”은 산문체의 하로셋 학고임에 상응하는 시문체의 동의어이다. 이 시는 결론 부분에서 노략물 분배 계획에 대하여 언급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패전으로 인하여 실제로는 노략물 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한다(삿 5:30).
헤벨과 야엘이 지키던 성소에서 은신처를 찾고자 했던 시스라의 죽음은 전제 군주의 죽음이 일반적인 성소의 규칙들과 친절한 손님 접대의 원칙보다 앞서는 것임을 인식한 한 영웅적인 여인의 고전적인 이야기에 잘 반영되어 있다(삿 4:17-22).

하솔 왕 야빈의 점차적인 패배에 관해 묘사하는 이 이야기의 최종 결론(삿 4:23-24)은 이 전쟁 전승이 “마론 물가의 전쟁”(수 1l:1-15)과 전혀 무관한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시문체의 글에서 그 전쟁에 참여하거나 불참한 지파들을 칭찬하고 책망하는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문체의 이야기는 단지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만을 전쟁에 참여한 지파로 지목하지만, 시문체의 글(삿 5:14-15a)은 에브라임과 베냐민 및 마길(므낫세 지파의 완전 정복 이전의 사랑들) 등을 추가한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지파들로는 르우벤과 길르앗(아직은 갓 지파에 포섭되지 않음), 단, 아셀 등이 언급된다. 처음의 두 지파, 특히 르우벤 지파는 전쟁 참여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양떼 곁을 떠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단과 아셀은 페니키아의 해양국가와 연결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조롱을 받는다. 아셀 지파의 경우, 사사기 1:31-32에 의하면 그들은 해안 지대에 자리잡고 있던 사회 체제 안에서 그들 자신의 활동 영역을 발견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단 지파에 대한 언급은 많은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단 지파가 본래는 욥바에 정착한 바다 민족들의 다누나 사람들이었다는 이론이 있다. 이곳의 본문은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우어 단 람마 아구르 오니욧; 삿 5:17)라고 말한다. 이처럼 수수께끼 같은 표현은 한때 라이스에 거주하던 단 지파의 정착지와 관련시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곳을 정탐하러 갔을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치도님’)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아담’)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삿 18:7).
70인역은 마지막의 ‘아담’을 ‘아람’으로 읽는다. “그 리고 그들은 아람(시리아)과 상종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70인역은 단 지파가 떼를 지어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을 담고 있는 후대의 본문에서는 그렇게 읽지 않는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이렇다.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시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삿 18:27b-28).
그리하여 단 지파는 이처럼 고립된 사람들을 공격하였고 그들의 성읍을 차지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그곳을 재건하였다. 이제 시돈 사람들(페니키아 사람들)과 더불어 친근한 관계를 갖게 된 이들은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면서도 찬미의 대상이 되는 풍성한 농산물(삿 18:10)을 해안 지대의 시돈 사람들에게 팔 수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그곳에는 헐몬 산의 기슭에 있는 바니아스와 두로를 연결하는 산길이 있었다(진정한 “바다의 길”).
단 지파는 단이라 불리는 자기들의 새로운 성읍을 건설할 때 자기들의 토산품을 시돈에 팔기 위하여 시돈으로 가는 길을 사용했음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그들의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그곳에서 발견한, 그리고 자기들의 토산품을 공급하던 해양 국가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이익을 안겨 주는 페니키아와의 교역 관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바락을 도우러 오지 않았다. 이 점에서 본다면 그들이 드보라의 노래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메로스(삿 5:23)는 정착지를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곳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곳은 표면상 이스라엘과 동맹 관계에 있던 가나안 사람들의 한 성읍이 거나 그들과 관련된 성읍이었을 수도 있다.
【성경역사, 지리학, 고고학 아틀라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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