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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료실

고고학적 관점으로 살펴본 사사 입다(사사기 10:6-12:7)

by [*수호천사*] 202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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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관점으로 살펴본 사사 입다(사사기 10:6-12:7)

 
야일 이후로 여전히 요단 동편 지역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전설적인 인물인 입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의 삶은 레반트 지역뿐만 아니라 동부 지중해 지역 전체에 걸쳐서 발견되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주제들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 덕택에 고귀한 가문에 속한 사람이면서도 어머니가 창기였던 탓에 집에서 내쫓긴 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형제들에 의하여 집에서 쫓겨나자 그는 내쫓긴 용사들을 불러 모아 에드레이(데라)의 남동쪽에 있는 에트-타이베로 알려진 (토브)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한다. 그곳은 투트모세 3세의 목록(No.22)과 아마르나 서신(EA 205)에서도 발견된다.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입다와 그에게 속한 의용군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아피루 집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입다 이야기의 서두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에 대한 책망 및 그들과 야웨 사이의 대화가 길게 소개되어 있다( 10:6-16).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들의 일곱 신들에 이끌려 자기들의 국가신인 야웨로부터 멀어졌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연속적으로 주변의 일곱 나라들에게 압제를 당하였고, 마침내는 야웨께 도움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을 괴롭힌 새로운 압제자들은 요단 동편에 거주하는 암몬 사람들이었다. 블레셋 사람들도 언급되는 바, 그들은 다음에 이어질 삼손 이야기를 예비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그 해에 그들이 요단강 저쪽(브에베르 하야르뗀) 길르앗(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레츠 하에모리)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 10:7-9)
 
입다 이야기와 삼손 이야기에 반영되어 있는 지중해 동부지역 특징들이 블레셋의 영향력이 미치던 때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우연이 아니다. 입다의 이야기는 훌륭한 가문에 속해 있으면서도 내쫓긴 자(길르앗의 후손)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승리로 이끌지만, 성급하고도 경솔한 맹세의 결과로서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비극을 경험한다. 그는 또한 지파들 간의 분쟁에 휘말려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자들을 죽이기도 했다.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미츠파)에 진을 치고,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10:17-18).
 
 미스바가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제벨 젤라드와 키르벳 젤라드 가까이에 있는 얍복 강 남쪽에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곳은 아마도 라못-미스베( 13:26)와 동일시 될 수 있을 것이다. 길르앗의 지도자들은 암몬 자손을 대상으로하는 싸움을 시작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르앗 백성으로 불린다는 것은 얍복 강 북쪽을 므낫세 지파에게 배정하고 얍복강 남쪽을 갓 지파에게 배정한 지파 재조직 이전 시기를 전제하고 있다.
 
전쟁 이야기는 입다와 암몬 자손 사이의 긴 대화에 의하여 그 흐름이 끊긴다. 그런데 그 대화는 이스라엘의 요단 동펀 지역 점령을 가능케 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의 연속에 관한 이스라엘 백성의 표준적인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11:12-28).
 
일단 시작된 전쟁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이루어 진다. 그 전쟁은 암몬 영토의 서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음이 분명하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아로엘(아로에르)에서부터 민닛(민닛)에 이르기까지 20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아벨 크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11:32-33).
 
이 아로엘은 아르논에 있는 아로엘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곳의 아로엘은 여호수아 13:25에서 갓 지파에 속한 지역으로 언급된다.
 
그들의 지역은 야셀(야으제르)과 길르앗 모든 성읍과 암몬 자손의 땅 절반 곧 랍바(랍바) 앞의 아로옐(아로에르)까지와( 13:25).
 
따라서 이곳의 아로엘은 랍바(오늘날의 암만) “앞에있는 곳으로서, 이스라엘의 갓 지파 영토와 암몬 국가 사이의 경계선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아벨-그라밈은 아마도 필라델피아(랍밧-베네-암몬, 오늘날의 암만)로부터 여섯 개의 이정표를 가야 나오는 성읍, 곧 유세비우스의 지명록(32:14-16)에 나오는 아빌라를 가리킬 것이다. 그곳이 정확하게 어디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 나우르, 키르벳 에스-수크, 콤 야주즈, 사합 등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이들 중 사합은 아빌과 지자 및 카스탈 사이에 벌어진 주후 634년의 전쟁에 관한 이슬람 초기 전승으로부터 추론된 곳이다. 사합은 성벽이 둘린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성읍으로, 철기 시대에는 광범위한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그리고 민닛은 유세비우스에 의하여 에스부스(헤스본)로부터 필라델피아(암만)로 가는 길에 네 개의 이정표를 지난 곳에 있는 마닛과 동일시된 바가 있다. 그러나 움 엘-바사틴이 더 유력한 후보지인 것으로 보인다.
 

 
에브라임 지파와의 분쟁은 요단 계곡에 있는 한 성읍인 사본에서 발생하였다 :
 
골짜기에 있는 벧 하람(벧 하람)과 벧니므라(벧 니므라)와 숙곳(숙콧)과 사본(차폰)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나라의 남은 땅 요단과 그 강가에서부터 요단 동쪽 긴네렛 바다의 끝까지라( 13:27a).
 
사본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 군데의 주요 후보지가 있다. 그 하나는 텔 메자르이고 다른 하나는 텔 에스-사이디예이다. 에브라임 지파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정도로 늦게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그들은 노략물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하여 시기심을 느꼈다. 쉽볼렛/십볼렛 사건( 12:6)은 지파들 사이에 지역 방언에서 비롯된 차이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사멕의 사용은 단지 시각적인 효과를 노린 수단일 뿐이다. 왜냐하면 모음 부호를 표기하지 않은 옛 서체에서는 이나 을 표기하는 자음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본문은 입다가 길르앗에 있는 성읍들”(브아레 길르앗,  12:7)에 장사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70인역은 그가 그의 성읍 길르앗”(엔테 폴레이 아우투 갈라드)에 장사되었다고 말한다. 70인역은 또한 사본(사피나)에 대한 본문상의 증거도 가지고 있다.
 
성경역사, 지리학, 고고학 아틀라스 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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