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굉일,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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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접근방법... 1) 안수길의 「북간도」에서 보여주는 바, 한말 흉년과 기근으로 인하여 압록강, 두만강의 국경지방에 거주하던 변민들이 월강하여 간도를 개척한 민중생활의 비참한 정황을 민족사의 흐름 속에서 조명한 것... 2) 기독교 민족운동가 이동휘, 김약연 등과 연결된 북간도의 인식... 3) 공산화된 오늘의 동북지역에서는 수차에 걸친 간도 공산당 사건으로 알려진 내용에서처럼 일제하 민족독립운동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열이 철저하게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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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5조약을 전후한 시기부터 합방을 거쳐 3ㆍ1운동까지의 1910년대 북간도지역 민족운동의 맥락은 교육운동과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항일운동으로 추진되었으며, 3ㆍ1운동을 계기로 무장항쟁의 독립운동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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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국외 북간도에서 발전적으로 전개된 애국계몽운동은 사회결사의 민족운동으로 발전되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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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의 독립운동의 연구는 먼저 그것을 뒷받침해 준 북간도 이주 한인사회의 민중운동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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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의 독립운동은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 4현의 수십만에 달하는 이주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러일전쟁 이후 북간도에서 민족운동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인들의 이주촌락이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어 그것이 국외독립운동기지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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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에 있어서는 이주한인사회의 종교운동을 독립운동, 교육운동, 사회결사운동 등과 서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이곳의 민족주의자들은 교육자인 동시에 종교인이며, 또 이주한인사회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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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용정촌 독립선언식을 시발로 간도 각처에서 3ㆍ1운동이 전개되기까지 북간도 이주 한인들이 사상, 문화, 종교, 교육 등을 지도하여 온 민정 조직체는 북간도 국민회였는데, 국민회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합방을 전후한 시기부터 북간도 각처에서 이주한인사회를 개척하여 새 민족공동체를 세우고 간민자치회, 간민교육회, 간민회 등을 이끌어 자치와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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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북간도에 전파된 기독교는 서양문명을 전파하는 근대주의와 민족해방을 위한 항일 민족주의를 지향함으로써 북간도 이주한인사회 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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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을 세운 송창근 목사는 북간도 기독교 독립운동가 이동휘의 비서였으며, 명동중학과 광성중학에서 수학하였고, 한신대학의 거목이셨던 김재준 목사 또한 명동학교의 이념을 계승한 북간도 용정 은진중학의 성경교사였다.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후에 역사신앙을 바탕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이끌어간 목회자와 신학자로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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