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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한국사]

[백제 15대 국왕] 침류왕(枕流王, 384~385)

by [수호천사]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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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5대 국왕] 침류왕(枕流王, 384~385)

 

  • 재위 : 384년 4월 ~ 385년 11월)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385년 11월(음력)

 

침류왕(枕流王)은 근구수왕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진고도(眞高道)의 딸 아이부인(阿爾夫人)이다. 초고왕계의 왕통을 이었으나 재위 2년째인 38511월 붕어하여 그의 어린 아들 아신(阿莘) 대신에 그의 아우 진사(辰斯)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다른 이름은 휘() 또는 여휘(餘暉,余暉)이며 중국 사서에 진사왕의 휘가 휘()라고 하지만 본래는 침류왕의 아들 부여훈해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384년]

 

동진과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였으며, 384년 왕위에 오르자 7월에 동진에 조공하였다. 이 해 음력 9월 동진(東晋)에서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파되었다.

 

삼국시대에 활약했던 승려들의 열전을 모아 놓은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 의하면, 소수림왕 때 승려 순도(順道)가 평양성에 찾아왔고, 이어 마라난타가 들어와 수차례 백제를 드나들며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이때가 침류왕 시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고행에서 돌아올 때면 침류왕은 성 밖까지 나와 그를 반가이 맞아들였으며, 또한 그를 정중히 대하여 공양(供養)하였다. 왕은 마라난타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신을 낮추기를 꺼려하지 않았으며 불교를 널리 보급하고 숭상하였다.

 

[385년]

 

봄 음력 2월 한산(漢山)에 사찰을 창건하여 열 명의 백제 승려가 법사의 뜻을 따르게 하였다.

11월에 붕어하여 동생 진사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침류왕의 사망에 대하여]

 

젊은 나이에 승하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정쟁에 휘말려 시해당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불교 수입으로 인해 토속 신앙을 기반으로 한 보수 세력에게 반발을 사 살해당했다는 설이 있는데 신라나 왜가 불교를 받아들이고 공인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 사건과 같은 토속 신앙 세력과 있었던 갈등이 백제에도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당시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던 동진의 부탁으로 요서 지방으로 직접 출병하여 싸우다 전사했다는 설도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들 아신에게 물려줄 왕위를 동생 진사에게 빼앗겼다.”고 적혀 있다. 학계에서도 침류왕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승하했을 뿐만 아니라 침류왕 사후 왕위가 장자인 아신에게 돌아가지 않고 동생 진사에게 넘어갔다는 점에서 진사왕이나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침류왕을 시해한 후 왕위를 찬탈했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가족관계]

 

  • 부친 : 근구수왕(近仇首王)
  • 모친 : 진씨(眞氏)
  • 배우자 : 미상
  • 자녀 : 아신왕(阿莘王)ㆍ훈해(訓解)ㆍ설례(碟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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