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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서 본 ‘생명의 영성’에 관한 한 신학적 성찰” - 김이곤
『장공 김재준의 신학세계』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6), 115-143.
1. 서언(序言)
- 기독교가 ‘영성’(靈性)이라고 할 때의 그 의미는 중세의 가톨릭교회 전통이 ‘경건’(敬虔)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성숙한 의미의 기독교적 영성이란, 성(聖)과 속(俗), 정신과 물질, 영과 육, 내세와 현세,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를 이분법적으로 분리시키지 아니하고, 이와는 달리, 인간의 의식 속에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 기독교적 진리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실효성이 있는 이해 전반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하나님 앞에서와 그가 창조하신 이 세상 한 가운데서 일어나는 인간의 실존적 삶 그 자체, 즉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며 사는 인간 삶”과 그리고 “그 하나님을 통하여 변화되어 가며 사는 인간 삶” 일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115-116)
- ‘생명이 영성’이라고 말할 때의 그 의미는 ‘생명’의 개념 정의에만 국한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는 ‘생명’에 대한 구약성서의 신학적 사유 일체를 포함하되 ‘생명’에 대한 구약성서의 신학적 사유 일체를 포함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116)
2. ‘생명’의 구약성서적 개념
- 창세기 2장 7절의 “생명”의 개념...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야훼 하나님께서 ‘땅의 먼지’로 조형된 그 형체의 코에 ‘생기’(숨, 입김, ‘뉘사마’)를 불어 넣으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생명’은 ‘네페쉬’라는 어떤 ‘특수 기관’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라는 논리로서 설명된다. (116-117)
- 1) “네페쉬”라는 말이 ‘생명’을 담고 있는 기관과 같은 것... 2)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는 ‘생명’, ‘호흡’...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관계하는 경우에는 ‘욕구’ 또는 ‘갈망’이라는 의미로 사용... (117-118)
- ‘생명’... 순수 물리적인 것을 초월해 있는 그 어떤 것... 1)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 2)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창조하신 창조물에게 ‘생명’을 분여해 주셨기 때문에 이 모든 창조물이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118)
3. ‘생명’의 어의학적 개념
- ‘생명’의 물리적 성격을 구약성서의 문맥에서 규명하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창세기 2장 7절을 근거로 하여 ‘생명’의 구약적 개념을 서술해 보려 함... (118)
- ‘생명의 입김’이 흙(땅의 먼지) 속으로 들어가자 그 흙 조형물(아담 조형물)이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119)
- ‘뉘샤마’는 분명 1) 비물질적인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며, 더욱이 2) 하나님 자신이나 그의 일부는 더더욱 아니라고 하겠다... (119)
- ‘뉘사마’이든, ‘네페쉬’이든, 이 어휘들과 불가분리적인 연결 관계를 갖고 있는 ‘생명’의 개념을 그 본질 개념의 문맥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야훼 하나님과의 관계 개념의 문맥에서 접근한다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119)
1) ‘생명’은 통전적 인간 구성체(네페쉬 하야)의 근본 기초이다.
- 1) 야훼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생기’(뉘샤마)가 희랍 세계가 ‘영혼’이라고 부른 그 ‘비물질적인 존재’와는 다른 그 어떤 것이며, 2) 이 ‘뉘샤마’는, 비록 창조주와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창조주와는 전적으로 구분되는 다른 것이라는 것과, 3)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생명을 가진 존재”는 결단코 희랍철학이 말하는 육과 이원적 대비를 이루는 불멸의 그 ‘영혼’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생명은 통전적 인간 구성의 근본 기초이다” (119-120)
- 인간 존재의 근거는 야훼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 이 기자(J)가 진술하고 있는 이 본문의 첫 번째 요지이다. (120)
2) 생명은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 창세기 2장 7절의 기본 의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통전적 인간 그 자체가 전적으로 피조된 존재이므로 그 근본 기초인 생명도 또한 유한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선포하는 데 있었다고 하겠다. (120-121)
- 구약성서의 기자(J)에게 있어서도 ‘생명’의 의미와 기능은 철저히 유한한 피조물에 속한 것으로서 창조 때부터 죽음의 위협 아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의 본질이 창조 후 타락 이전까지는 불멸적인 것이라는 것은 구약성서의 신앙 세계와는 거리가 먼 인간의 잘못된 전이해에서 온 것이라고 하겠다. (121)
- 창세기 3장 19절... 아담의 범죄에 대한 징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빵을먹을 수 있는 사실”이외에는 다른 어떤 암시도 없음... 인간 타락 이전에 이미 ‘노동’은 인간에게 부과되었던 과제... 여기서의 형벌은 ‘노동’, 또는 ‘죽음’이 아니라 이미 저주받은 땅(아다마, 창 3:17)과 그 땅에서 나온 인간(아담)과의 관계가 왜곡된 상황과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121-122)
- 인간의 생명이 본래부터(타락 이전의 창조 때부터) ‘영생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내적 증거... ‘생명나무’에게로의 접근을 금지하는 기사(창 3:22, 24)에서 나타남... 타락 이후 불칼로 차단... 인간 생명이란 그 속에 ‘영원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 (123)
- 인간(땅의 먼지)이 받은 “숨”(뉘샤마)은 하나님의 숨(뉘샤맛 엘로힘)이 아니라 “생명의 숨”(뉘샤맛 하임)... 야훼 하나님께서 그 “생명의 숨”을 친히 불어 넣어 주셨다는 점에 있었을 뿐... “생명의 숨” 그 자체가 신적 본질을 부여 받았다고 보고 또 인간 생명의 본질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영원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성서의 문맥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겠다. (123-124)
3) 생명은 주시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유기적 관계 속에 있다.
- 창세기 2장 7절... 야훼 하나님의 두 가지 동작(흙을 빚는 행위, 숨을 불어 넣는 행위)과 두 가지의 질료(땅의 먼지, 생기)... (124)
- 야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지은 자와 지음 받은 자의 관계라는 절대적 기초관계를 형성한다. 이 경계선은 결코 침범되어서는 안 된다... (124)
- 인간학의 경우, 이 관계는, 즉 “지은 자와 지음받은 자의 관계”는 ‘생명’을 매개로 하여 더욱 심화한다... ‘생명’은 야훼 하나님에게 절대 의존적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네페쉬’의 생명과 가지는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 가지는 관계이다. (125)
- “네페쉬 하야”(살아있는 존재)인 인간은 늘 창조주 야훼 하나님을 향하여 갈망하는 관계에 있는 존재... (125)
- ‘생명’은 매우 신비한 실체로서 야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것이라는 창세기 2장 7절의 고전적인 인간학적 구절이 말하고 있는 그 신학적 문맥 안에서, 그리고 그 ‘생명’을 주시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관계의 문맥에서 “생명의 영성적 현실”을 찾아보는 것이 우리의 주제에 바르게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125-126)
4. 구약성서에 나타난 ‘생명의 영성’
1) 생명의 주는 야훼 하나님이시다
- 창세기 2장 7절이 천지의 창조에 관해서 말할 때,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그 창조된 세계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생명 창조 행위를 ‘가장 먼저 언급하였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창세기 2장 7절은 ‘생명’의 신학적 의미와 그 영성에 관한 가장 결정적인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126)
- ‘생명’의 ‘주인’은 야훼 하나님이시다는 진술... 동시에 우리는 이 진술들을 통하여 야훼 하나님의 그 본질은 ‘생명 창조성’에서 비로소 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된다. (127)
- ‘야훼’라는 이름은 “있게 하는 자” = “창조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는 이름으로 추론한다... 생명은 전적으로 창조자 야훼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고 더욱이 야훼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가 생명의 창조성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7)
- 신명기 32장 39절... 사무엘하 2장 6-8절... 열왕기하 5장 7절... 역사의 유일하 구원주이신 야훼는 동시에 그 백성의 창조자이시라는 신앙의 증언... 이러한 신명기의 사상은 신명기적 역사서들 안에 계속적으로 전승... (127-128)
- 생사여탈권을 갖고 계시는 야훼 하나님의 절대 능력과 창조적 주권에 관한 서술... 특히 생명과 죽음의 관장 능력을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강조한다는 점... (128)
- 열왕기하 5장 7절... 생명의 주인은 야훼 하나님뿐이시라는 것을 증언... (129)
- 신명기적 관점... 1) 야훼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 2) 야훼 하나님의 본질은 그의 ‘생명여탈권’에 기초하고 있다...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국을 심판하시기로 맹세하실 때 사용한 이 맹세가 전적으로 그의 ‘영존성’을 걸고 한 맹세라는 점... (129)
- 생명을 담보한 맹세는 ‘의무 이행’을 가장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기능을 한다... 여호수아 3장 10절... 이사야 49장 18절... 예레미야 16장 15절... 야훼의 생명을 걸고 맹세한 것은 그 어떤 경우보다 더 확실하게 이루어진다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129-130)
- 제2이사야와 예레미야... 야훼의 유일한 역사적 주권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야훼의 살아계심’과 연결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131)
2) ‘생명’의 보호자는 야훼 하나님이시다
- ‘생명’은, 비록 그 본질이 신비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훼 하나님께서 ‘네페쉬’ 속에 두시고 보호하시는 동안만(!) 피조물 안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생명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이 근거이기 때문에 야훼 하나님은 그 생명을 쉽게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보존해 주시려 하신다. (131)
- 가인의 ‘생명’을 지켜 보호해 주시는 야훼... 표의 본래적 의미는 여기서는 제2차적 요소라고 하겠고, 단지 가인의 생명을 그의 보복자의 위협에서부터 지켜 보호해 주시는 야훼 하나님의 생명 보호 행위를 증언하는 것이 이 설화의 기자가 생각하였던 중심 의도였다고 하겠다. (134)
- 야훼 하나님의 ‘생명 보존의 의지’는 추방당하는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시는 행위를 통하여서는 더욱 극화되고 있다. (136)
- “고대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주제의 책을 쓴 폰 라트의 전쟁설화에 대한 제의사적/해석학적 통찰... 1) 전쟁은 야훼 하나님의 전유물이므로 인간이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성서의 반전 이념 강조... 2) 거룩한 전쟁설화의 도처에 나타나는 성서 해석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이른바 “가나안인이면 누구이든 완전 진멸하라”라는 야훼의 요구는, 제의 신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면, 실제로는, 이 요구란 결단코 가나안인들의 생명들을 무참히 도륙하라는 반윤리적 요구가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물질주의와 섹스 추구를 중심 이념으로 삼는 ‘가나안주의’를 철저히 척결하라는 요구에 불과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반(反)가나안적(=반바알적) 야훼주의 이념에 대한 강조... 3) 인간의 구원(인간의 해방)은 칼과 활과 창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없는 절대 의지의 신앙을 통하여서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라는 의지 신앙의 강조 등등을 배웠다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학문적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136-137)
- ‘야훼의 전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의 전쟁을 종식시키려는(하나님의 것으로 돌려서 인간에게서는 전재을 모두 몰수하려는) 반전운동의 ‘한 출발점이요, 그러한 반전운동의 이념적 기초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 야훼는, 그러므로, 결코 생명 보존 지향성을 가볍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하게 또는 역설적으로 지향해 가시는 분이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37)
3) ‘생명을 살리시는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다
- 구속사적 시각에서 보면, 구약의 하나님 야훼는 전적으로 “고난에 처한 인간 생명을 살리시는 분”으로서의 그 이미지를 확고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37)
- 요셉설화... 요셉이 천명한 신앙고백서(창 45:5-8)... 제2의 신앙고백서(창 50:19-20)... “생명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요셉의 형들이 획책하였던 악한 행위도 또한 포함시키셔서 일하고 계셨다는 사실” (137-140)
- 인간은 생명 파괴를 도모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선(善)으로 바꾸시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시려 하신다는 것... (140)
5. 결어(結語)
- 생명의 영성은, 생명을 주시고, 보호하시고, 건지시는 야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 즉 그를 모방하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인간은 오직 생명의 하나님이신 그 분만을 희망하며 살도록 운명지어졌다는 가르침에 단지 복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생명의 영성’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140)
-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서 받은 ‘생명’을 지니고 있는 기관인 ‘네페쉬’는 이 생명을 보살피고 지킬 필요성을 갖고 있어서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가기 위해 필요한 양식을 갈구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네페쉬’는 육의 양식과 영적 양식(하나님의 말씀)을 끌어와 공급함으로 생명을 보지(保持)하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영성은 이중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1) 몸의 건강을 지키는 일과 2)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일을 함께 동시적으로 지속성 있게 계속하는 것 그것이다. (141)
- 예언자들이 하였던 일들도 또한 야훼 하나님의 ‘생명 살리기 운동’에 복종하고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일들이었다... 생명의 영성은 1)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동시에 2) 생명 보호와 생명 살리는 일을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일에 우리도 참여하는 것 그것이라 하겠다.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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