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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자료실]/인물 [파]

파사이사금 [婆娑尼師今, AD. ?~112] 신라의 제5대 국왕(AD. 80~112)

by [*수호천사*] 202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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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이사금 [婆娑尼師今, AD. ?~112] 신라의 제5대 국왕(AD. 80~112)

 

【개인 정보】

  • 이름 : 박파사(朴婆娑), 박검(朴儉), 박검(朴檢)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후 112년 10월
  • 재위 : 기원후 80년 8월 ~ 기원후 112년 10월
  • 전임 :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 후임 : 지마이사금(祗摩泥師今)

 

【가계 정보】

  • 부왕 :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 모친 : 차비 김씨(次妃 金氏) 사요왕(辭要王)의 딸
  • 형 : 일성이사금(逸聖泥師今)
  • 왕후 : 사성부인 김씨 (史省夫人 金氏) – 허루 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
  • 아들 : 지마이사금(祗摩泥師今, ?~134년, 신라의 제6대 왕)
  • 손녀 : 내례부인 박씨 – 아달라 이사금의 왕비
  • 손자 : 아도 갈문왕

 

【파사이사금 연보】

 

【기원후 80년】 왕위에 오르다

  •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유리왕(儒理王)의 둘째 아들이다.[혹은 유리의 아우 나로(柰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왕비는 김씨 사성부인(史省夫人)으로, 갈문왕 허루(許婁)의 딸이다. 앞서 탈해가 돌아가셨을 때 신하들은 유리의 태자 일성(逸聖)을 왕위에 오르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하기를 “일성이 비록 맏아들이기는 하지만 위엄과 현명함이 파사에 미치지 못하다.”고 하여, 마침내 파사를 왕위에 오르도록 한 것이다. 파사는 절약하고 검소하며 물자를 아꼈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였다.

 

【기원후 81년】 시조묘에 제사하다, 죄수를 풀어주다

  • 2년(기원후 81) 봄 2월, 임금이 몸소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 3월, 임금이 주와 군을 두루 살펴보며 창고를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를 살피어 두 가지의 사형 죄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모두 풀어주었다.

 

【기원후 82년】 농사를 권하고 병장기를 수리하다

  • 3년(기원후 82) 봄 정월, 명령을 내렸다.
    “지금 나라 창고가 비었고 병기는 무디어졌다. 혹시라도 홍수나 가뭄이 생기거나 변방에 변고가 생기면 어떻게 막아내겠는가? 마땅히 관리들에게 농사와 양잠을 권장하도록 하고 병장기를 벼리어 의외의 일에 대비하도록 하라.”

 

【기원후 84년】 명선을 이찬으로, 윤량을 파진찬으로

  • 5년(기원후 84) 봄 2월, 명선(明宣)을 이찬으로, 윤량(允良)을 파진찬으로 삼았다.
  • 여름 5월, 고타(古陁) 군주가 파란색의 소를 바쳤다.
  • 남신현(南新縣)에서는 하나의 보리 이삭에 여러 가닥이 생겨났다.
  • 크게 풍년이 들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기원후 85년】 백제가 침범하다, 길원을 아찬으로 삼다

  • 6년(기원후 85) 봄 정월,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 2월, 길원(吉元)을 아찬으로 삼았다.
  • 여름 4월, 객성이 자미(紫微)성좌에 들어갔다.

 

【기원후 87년】 성과 보루 수리를 명하다

  • 8년(기원후 87) 가을 7월, 임금이 명을 내렸다.
    “내가 덕이 없는데도 나라를 맡았다. 우리나라는 서쪽으로는 백제를 이웃하고 남쪽으로 가야와 닿아있다. 나의 덕망은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그들로 하여금 두렵도록 하기에 부족하니, 성과 보루를 수리하여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이달에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을 쌓았다.

 

【기원후 90년】 열 명의 사신을 파견하다

  • 11년(기원후 90) 가을 7월, 열 명의 사신을 나누어 파견하여 주주와 군주들을 조사하고, 공무에 성실하지 않거나 밭과 들을 많이 황폐하게 한 자가 있으면 관직을 아래로 내리거나 파면하게 하였다.

 

【기원후 93년】 윤량을 이찬으로, 계기를 파진찬으로

  • 14년(기원후 93) 봄 정월, 윤량(允良)을 이찬으로 삼고, 계기(啓其)를 파진찬으로 삼았다.
  • 2월, 임금이 고소부리군(古所夫里郡)에 행차하여 나이 많은 백성을 몸소 위문하고 곡식을 주었다.
  • 겨울 10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기원후 94년】 가야를 격퇴하다, 군대를 사열하다

  • 15년(기원후 94) 봄 2월, 가야의 적군이 마두성을 에워싸자, 아찬 길원을 보내어 기병 1천을 거느리고 격퇴하게 하였다.
  • 가을 8월, 알천(閼川)에서 군대를 사열하였다.

 

【기원후 96년】 폭풍이 불다, 가야가 습격하다

  • 17년(기원후 96) 가을 7월, 남쪽에서 폭풍이 불어와 금성 남쪽의 커다란 나무가 뽑혔다.
  • 9월, 가야 사람들이 남쪽 변경을 습격하였다. 가성(加城) 성주 장세(長世)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으나, 적에게 살해당하였다. 임금이 노하여 용맹한 병사 5천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많은 포로를 붙잡았다.

 

【기원후 97년】 가야와 교류하다

  • 18년(기원후 97) 봄 정월, 병사를 일으켜 가야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가야 임금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으므로 중지하였다.

 

【기원후 98년】 가뭄이 들다

  • 19년(기원후 98) 여름 4월,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기원후 100년】 우박이 떨어지다, 지진이 일어나다

  • 21년(기원후 100) 가을 7월, 우박이 떨어져 날아가던 새가 죽었다.
  • 겨울 10월,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 민가가 쓰러지고 죽은 이가 생겼다.

 

【기원후 101년】 월성을 쌓다

  • 22년(기원후 101) 봄 2월, 성을 쌓고 월성(月城)이라 이름 지었다.
  • 가을 7월, 임금이 월성으로 옮겨 살았다.

 

【기원후 102년】 음집벌국과 실직곡국 국경문제,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이 피다

  • 23년(기원후 102) 가을 8월, 음집벌국(音汁伐國)과 실직곡국(悉直谷國)이 국경 문제로 다투다가 임금에게 찾아와서 이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임금이 어려워하다가 금관국(金官國) 수로왕(首露王)이 나이가 많고 아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하여, 그를 불러와 물었다. 수로가 의견을 내어 다투던 땅을 음집벌국에 귀속하게 하였다. 이에 임금은 6부에 수로왕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도록 명하였다. 5부는 모두 이찬으로 연회의 주인을 삼았는데, 오직 한기부(漢祇部)만은 직위가 낮은 자를 연회의 주인으로 삼았다. 수로가 노하여 그의 종 탐하리(耽下里)를 시켜 한기부의 우두머리 보제(保齊)를 죽이게 하고 돌아갔다. 종은 도망하여 음집벌국 우두머리인 타추간(陁鄒干)의 집에 의탁하였다. 임금이 사람을 보내 그 종을 찾았으나 타추는 돌려 보내지 않았다. 임금이 노하여 병사를 일으켜 음집벌국을 공격하니, 그 우두머리가 무리와 함께 스스로 항복하였다. 실직(悉直) 압독(押督) 두 나라 임금도 와서 항복하였다.
  • 겨울 10월,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이 피었다.

 

【기원후 104년】 운석이 떨어지다, 실직의 배반을 토벌하다

  • 25년(기원후 104) 봄 정월, 운석이 비오듯 떨어졌으나, 땅에 이르지는 않았다.
  • 가을 7월, 실직이 배반하자 병사를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고, 남은 무리를 남쪽 변경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기원후 105년】 백제와 교류하다, 눈이 내리다

  • 26년(기원후 105) 봄 정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해를 요청하였다.
  • 2월, 서울에 눈이 석 자나 내렸다.

 

【기원후 106년】 압동 행차, 가야 정벌을 명하다

  • 27년(기원후 106) 봄 정월, 임금이 압독에 행차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 3월, 압독으로부터 돌아왔다.
  • 가을 8월, 마두성주(馬頭城主)에게 명령하여 가야를 정벌하라 하였다.

 

【기원후 108년】 홍수가 나다, 비지국ㆍ다벌국ㆍ초팔국을 병합하다

  • 29년(기원후 108) 여름 5월,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10도에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구제토록 하였다.
  • 병사를 보내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정벌하여 병합하였다.

 

【기원후 109년】 메뚜기떼 공격

  • 30년(기원후 109) 가을 7월, 메뚜기떼가 곡식을 해쳤다. 임금이 산천에 두루 제사를 지내어 기원하자 메뚜기떼가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

 

【기원후 111년】 성문이 무너지다, 가뭄이 들다

  • 32년(기원후 111) 여름 4월, 성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 5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기원후 112년】 사망하다

  • 33년(기원후 112) 겨울 10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사릉원(蛇陵園)에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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