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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마립간 [智證⿇⽴⼲, AD. 437~514] 신라의 제22대 국왕(AD. 500~514)
【개인 정보】
- 이름 : 김지대로(金智大路) 지대로(智大路), 지도로(智度盧), 지철로(智哲老)
- 출생 : 기원후 437년
사망 : 기원후 514년 7월 - 재위 :
마립간 : 기원후 500년 11월 ~ 기원후 503년 10월
왕 : 기원후 503년 10월 ~ 기원후 514년 7월 - 전임 : 소지마립간
후임 : 법흥왕(法興王)
【가계 정보】
- 조부 : 복호 갈문왕(卜好 葛文王)
- 외조부 : 신라 제19대 국왕 눌지마립간(訥祗 麻立干, ?~458, 재위 : 417~458)
외조모 : 아로부인 김씨(阿孝夫人 金氏) – 실성마립간의 딸 - 아버지 : 습보 갈문왕(習寶 葛文王)
어머니 : 조생부인 김씨(鳥生夫人 金氏) - 이부동생 : 선혜부인
- 왕비 : 연제부인 박씨(延帝夫人 朴氏)
장남 : 법흥왕(法興王, ?~540, 재위 : 514~540)
차남 : 입종 갈문왕(立宗 葛文王)
삼남 진종(珍宗)
장녀 : 어사추
– 손자 : 신라 제24대 국왕 진흥왕(眞興王, 534~576, 재위 : 540~576)
【지증마립간 연보】
【서기 500년】
-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이다. 내물왕(奈勿王)의 증손이며 습보(習寶) 갈문왕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訥祗王)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임금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 임금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의 나이는 64세였다.
- 사관이 논평한다.
신라왕으로서 거서간이라 칭한 이가 한 사람, 차차웅이라 칭한 이가 한 사람, 이사금이라 칭한 이가 열여섯 사람, 마립간이라 칭한 이가 네 사람이다. 신라 말의 이름난 유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에서는 모두를 왕이라 칭하고 거서간 등으로 칭하지 않았다. 혹시 그 말이 천박하여 칭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여겨서일까? 『좌전(左傳)』과 『한서(漢書)』는 중국의 역사책인데도 오히려 초(楚)나라 말인 ‘곡오도(穀於菟)’, 흉노(匈奴) 말인 ‘탱리고도(撑犁孤塗)’ 등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신라의 일들을 기록함에 그 방언을 그대로 쓰는 것이 또한 마땅하다 본다.
【서기 502년】
- 3년(서기 502) 봄 2월, 명령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하게 된 것이다.
- 임금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 지냈다.
- 3월,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몰아서 밭갈이를 하였다.
【서기 503년】
- 4년(서기 503) 겨울 10월,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을 덮는다’는 뜻이므로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또 옛부터 나라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으로 칭하였고 존엄한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여러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리옵니다.”
임금이 이 말에 따랐다.
【서기 504년】
- 5년(서기 504) 여름 4월, 상복(喪服)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 가을 9월, 일꾼을 징발하여 파리(波里), 미실(彌實), 진덕(珍德), 골화(骨火) 등 열두 개 성을 쌓았다.
【서기 505년】
- 6년(서기 505) 봄 2월, 임금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ㆍ군(郡)ㆍ현(縣)을 정하였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다.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 겨울 11월, 처음으로 담당관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게 하였다. 또한 선박 이용의 제도를 정하였다.
【서기 506년】
- 7년(서기 506),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의 곡식을 풀어 구제하였다.
【서기 509년】
- 10년(서기 509) 봄 정월, 서울 동쪽에 시장을 설치하였다.
- 3월, 함정을 만들어 맹수의 피해를 없앴다.
- 가을 7월, 서리가 내려 콩이 죽었다.
【서기 510년】
- 11년(서기 510) 여름 5월,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졌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 겨울 10월, 우레가 쳤다.
【서기 512년】
- 13년(서기 512) 여름 6월, 우산국(于山國)이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溟州)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은 사방 백 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다.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가 되어 말하기를 “우산국 사람은 어리석고도 사나워서 힘으로 다루기는 어려우니 계책으로 복종시켜야 한다.”라고 하고, 바로 나무로 사자를 가득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렀다.
이사부는 거짓으로 말하였다.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밟아 죽이겠다.”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즉시 항복하였다.
【서기 514년】
- 15년(서기 514) 봄 정월, 아시촌(阿尸村)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 가을 7월, 6부와 남쪽 지방 사람들을 옮겨 그곳을 채웠다.
-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는데, 신라에서 시호를 쓰는 법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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