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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왕 [辰斯王, AD. ?~392] 백제의 제16대 국왕(AD. 385~392)
【개인 정보】
- 이름 : 부여진사(扶餘辰斯)
- 출생 : 미상
사망 : 기원후 392년 11월
재위 : 기원후 385년 11월 ~ 기원후 392년 11월 - 전임 : 침류왕
후임 : 아신왕
【가계 정보】
- 부왕 : 근구수왕(近仇首王, ?~384) – 백제의 제14대 국왕(375~384)
모후 : 아이부인(阿爾夫人) - 형 : 침류왕(枕流王, ?~385) – 백제의 제15대 국왕(384~385)
- 국왕 : 진사왕(辰斯王, ?~392) – 백제의 제16대 국왕(385~392)
- 아들 : 진손왕(辰孫王, 356~?) – 일본으로 건너감
【진사왕 연보】
【기원후 385년】
- 11월,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아이부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침류왕이 죽었을 때 태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했다고 하며 일본서기에는 진사가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원후 386년】
- 당시 백제는 근초고왕 재위 말년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공격으로 긴장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는 즉위 직후인 386년에 15세 이상의 주민을 동원하여 관방(關防)을 쌓게 했다.
- 가을 음력 7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해쳤다.
【기원후 389년】
- 389년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였다.
【기원후 390년】
- 390년에는 달솔 진가모를 시켜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함락하게 해 200명을 포로로 잡았다.
- 가을 음력 7월에 살별이 북하(北河)에 나타났다.
【기원후 391년】
- 궁실을 중수하고 연못과 산을 쌓는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력을 낭비하였으며, 이로 인해 말갈과 고구려의 침입을 받았다. 391년 7월 광개토대왕이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북쪽 변경의 석현성(石峴城)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진사왕은 광개토대왕이 군사작전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맞서 싸우지 못했다. 10월에는 험준한 요새지인 관미성도 함락당했다.
【기원후 392년】
- 여름 음력 5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 진사왕은 그해 11월, 구원(狗原)에 사냥을 나갔다가 행궁(行宮)에서 죽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진사왕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어 정치세력간의 갈등으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침류왕의 아들인 아신은 숙부인 진사왕이 부왕의 죽음에 관련된 것으로 보고 반기를 들었다. 한편 일본서기에 의하면 왜왕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아, 왜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百濟의 辰斯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貴國(日本)의 天皇에게 예의를 잃었으므로, 기각숙례(紀角宿禰), 우전시대숙례(羽田矢代宿禰), 석천숙례(石川宿禰), 목면숙례(木菟宿禰)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책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百濟國에서는 辰斯王을 죽여 사죄하였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기각숙례 등이 아화(阿花, 아신왕의 별칭)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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