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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定宗, 923~949] 고려의 제3대 국왕(재위 : 945~949)

by [*수호천사*] 202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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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定宗, 923~949] 고려의 제3대 국왕(재위 : 945~949)

 

【개인 정보】

  • [] 왕요(王堯)
  • [묘호] 정종(定宗)
  • [시호] 지덕장경정숙영인간경장원문명대왕(至德章敬正肅令仁簡敬莊元文明大王)
  • [출생] 923
  • [사망] 949 3 13(음력), 고려 개경 제석원
  • [재위] 945 9 15(음력) ~ 949 3 13(음력)
 

【가족 관계】

 

[부모]

  • 부친 : 태조 왕건
  • 모친 : 신명순성왕후 유씨
 

[배우자]

  • 1 : 문공왕후 박씨(文恭王后 朴氏) / 본관 : 순천 / 생몰년 : 미상 / 부모 : 박영규(朴英規), 국대부인 견씨(國大夫人 甄氏) / 견훤의 외손녀, 태조 비 동산원부인의 동생
  • 2 : 문성왕후 박씨(文成王后 朴氏) / 본관 : 순천 / 생몰년 : 미상 / 부모 : 박영규(朴英規), 국대부인 견씨(國大夫人 甄氏) / 견훤의 외손녀, 태조 비 동산원부인의 동생
  • 후궁 : 청주남원부인 김씨(淸州南院夫人 金氏) / 본관 : 청주 / 생몰년 : 미상 / 부모 : 김긍률(金兢律), 미상 / 혜종 비 청주원부인의 동생
 

[왕자]

  • 경춘원군(慶春院君) / 생몰년 : 미상 / 모친 : 문성왕후 박씨 / 배우자 : 미상
 

[왕녀]

  • ▨▨공주(▨▨公主) / 생몰년 : 미상 / 모친 : 문성왕후 박씨 / 배우자 : 효성태자(孝成太子) - 태조의 아들

【출생하다】

 

【기원후 923년】

  • 음력 3월 13일, 태조와 신명순성왕태후 유씨(神明順成王后 劉氏)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신명순성왕후 유씨은 유긍달(劉兢達)의 딸이자 태조의 제3후비이다.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정종과 광종의 모후이다.

 

【왕위에 오르다】

 

【기원후 945년】

  • 혜종이 집권하던 시기에 왕위를 엿보았다. 945년 혜종의 측근이었던 박술희(朴述熙 혹은 朴述希)를 제거하고, 동시에 거병한 왕규의 난을 진압하였다.
  • 945년 혜종이 죽자 군신들의 추대로 위에 올랐다. 이때 그는 태조의 사촌이자 서경의 군벌이었던 왕식렴(王式廉) 등의 도움을 받았다.
  • 정종의 배후 세력인 왕식렴은 삼중대광 왕평달의 아들이며 태조의 몇 안되는 종친이다. 군부서리가 된 이래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태조 원년에 서경 (평양) 진수의 책임을 지고 혜종이 사망한 945년까지 27년간 그 임무를 담당했다.
  • 정종은 945년 즉위 후 반란 진압의 공을 치하하여 왕식렴에게 광국익찬공신(匡國翊贊功臣)에 서훈되었으며, 거기에 다시 대승(大丞)을 덧붙였다.

 

【서경 천도를 모색하다】

 

【기원후 946년】

  • 946년 초 재계하고 현릉에 성묘하였으며 즉위 기념으로 대사면령을 내려 죄인을 방면하였다. 또한 개국사까지 불사리를 봉행하는데 동참하였고, 불교 경전 간행 목적으로 사원에 불명경보와 광학보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개경 귀족들의 호응이 없자 그는 왕식렴의 주 근거지였던 서경으로의 천도를 단행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개경의 호족들과 옛 공신들의 불만을 고조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기원후 947년】

  • 947년 봄 대광 박수문을 보내어 덕창진에 성을 쌓게 하고, 서경성과 철옹ㆍ박릉ㆍ삼척ㆍ통덕 등의 성을 축성, 정비하게 하였다.
  • 947년 후진에서 유학하다 거란에 붙잡혀 그곳에서 벼슬하던 최광윤이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거란이 고려를 침입할 준비를 한다고 보고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정종은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광군(光軍)사를 조직하고 군사 30만을 양성하기도 했다.

 

【왕위를 동생에게 넘겨주다】

 

【기원후 948년】

  • 948년 9월, 동부 여진에서 말 700필과 토산물을 바치자, 직접 공물을 검열하던 중 갑자기 닥친 우레와 천둥 소리에 놀라 경기가 든 이후 계속 병석에 있다가 949년 1월 왕식렴의 부음 소식을 접한다. 바로 호기위 태사 삼중대광 개국공에 추서하였다.
  • 949년 3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정종은 동생 왕제 소를 불러 양위하고 죽었다. 능은 개성의 안릉(安陵)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의 죽음 소식에 노역에 시달리던 서경의 일꾼들이 기뻐 날뛰었다고 한다.
  • 그의 죽음으로 서경으로의 천도계획은 그의 동생 광종에 의해 즉각 백지화된다. 자신의 사후 동생 소의 찬탈을 염려하여 동생 소에게 왕위를 넘기고 아들 경춘원군의 목숨을 유지케 하였다. 하지만 광종은 이후에 발생한 왕족 숙청 때에 경춘원군을 이복형 혜종의 아들인 흥화궁군과 함께 처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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