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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왕 [景哀王, AD. ?~927] 신라 제55대 국왕(AD. 924~927)

by [*수호천사*]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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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왕 [景哀王, AD. ?~927] 신라 제55대 국왕(AD. 924~927)


【개인 정보】

  • 이름 : 위응(魏膺)
  • 출생 : 미상 – 경애왕의 출생연도는 미상이지만, 학계에서는 경애왕이 재위시 연령은 20대 후반으로 봐서 890년대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망 : 기원후 927년 11월(음력)
    재위 : 기원후 924년 8월(음력) ~ 기원후 927년 11월(음력)
  • 전임 : 경명왕
    후임 : 경순왕

【가계 정보】

  • 부왕 : 신덕왕(神德王, ?~917, 재위 : 912~917)
    모후 : 의성왕후 김씨(義成王后 金氏)
  • 형 : 경명왕(景明王, ?~924, 재위 : 917~924)
  • 동생 : 박효렴(朴孝廉)
  • 왕비 : 미상
    장남 : 금성대군 박교순(錦城大君 朴交舜) : 울산(蔚山) 박씨의 시조인 고려(高麗) 시대의 장군(將軍) 박윤웅(朴允雄)의 직계 조상
    차남 : 계림대군 박순현(鷄林大君 朴舜玄)

【경애왕 연보】

 

【기원후 924년】 경애왕 원년

  • 경애왕(景哀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위응(魏膺)이며, 경명왕의 친동생이다.
  • 9월, 고려 태조에게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 겨울 10월, 임금이 직접 신궁(神宮)에서 제사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기원후 925년】 경애왕 2년

  • 겨울 10월, 고울부(高鬱府) 장군 능문(能文)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하였으나, 태조가 그를 위로하고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그 성이 신라의 도읍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 11월, 후백제 군주 견훤이 그의 조카 진호(眞虎)를 고려에 볼모로 보냈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고려 태조에게 이르기를 “견훤은 변덕스럽고 거짓말을 많이 하므로 그와 화친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니 태조도 그렇다고 여겼다.

【기원후 926년】 경애왕 3년

  • 여름 4월, 진호가 갑자기 죽었다. 견훤은 고려 사람들이 고의로 죽였다고 생각하고 분노하여 병사를 일으켜 웅진(熊津)까지 진군하였다. 태조가 모든 성에 명령하여 방비를 굳게 하고 나가지 않도록 하였다.
    임금이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견훤은 약속을 어기고 병사를 일으켰으므로 하늘이 반드시 돕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대왕이 북 한번 치는 위풍만 보여도 견훤은 반드시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고려 태조가 사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견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죄악이 넘쳐서 자멸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기원후 927년】 경애왕 4년

  • 봄 정월, 고려 태조가 몸소 백제를 정벌하자 임금이 병사를 내어 도왔다.
  • 2월, 병부시랑 장분(張芬) 등을 후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후당에서는 장분에게 검교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의 직위를 주고, 부사 병부낭중 박술홍(朴術洪)에게는 겸어사중승(兼御史中丞)을, 판관 창부원외랑 이충식(李忠式)에게는 겸시어사(兼侍御史) 직위를 주었다.
  • 3월, 황룡사 탑이 요동쳐서 북쪽으로 기울었다.
  • 고려 태조가 친히 근암성(近巖城)을 격파하였다.
  • 후당 명종(明宗)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王逢規)를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으로 삼았다.
  • 여름 4월, 지강주사 왕봉규가 임언(林彦)을 사신으로 후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명종이 중흥전(中興殿)으로 불러 대면하고 선물을 하사하였다.
  • 강주(康州) 소관의 돌산(突山) 등 네 고을이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였다.
  •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에서 우리 군대를 공격하니, 임금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태조가 장군에게 명령하여 굳센 병사 1만을 내어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은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겨울 11월에 서울을 습격하였다.이때 임금은 왕비, 후궁 및 친척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적병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임금은 왕비와 함께 후궁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친척과 공경대부 및 여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었다. 적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귀한 자, 천한 자 할 것 없이 모두 놀라 진땀을 흘리며 엎드려 벌벌 기면서 노비가 되겠다고 빌었으나 화를 면하지 못하였다.견훤은 또 그의 병사들을 풀어 공사(公私)의 재물을 모두 약탈하였고, 궁궐에 들어앉아 측근들에게 임금을 찾도록 하였다. 임금이 왕비와 첩 몇 사람과 후궁에 있다가 군영으로 잡혀오니, 견훤은 임금을 핍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강간하고, 그의 부하들에게 비와 첩들을 강간하게 하였다. 이어서 임금의 친척 동생에게 임시로 나라 일을 맡게 하였다. 그가 바로 경순왕(敬順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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