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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득룡 [韓得龍, 1861~?]
장로교 목사
【1861년】
- 평북 의주군 고령삭면에서 한택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초시를 지냈으나 부모의 만류로 관계 진출은 포기하고 부모와 함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1900년】
- 김석조ㆍ김노하ㆍ조득청ㆍ한죽령ㆍ한송령ㆍ유윤측 등과 함께 의주 창사교회(倉舍敎會) 창립 멤버가 되었다.
【1903년】
- 최정옥ㆍ최의선 등과 함께 향리인 천마리(天摩里)에 초가 4간 예배당을 마련하여 천마교회를 설립하였다.
- 이후 선천군 신부면 갈현(葛峴)리로 이주하였고 조사가 되어 삭주 대관(大舘)교회ㆍ신창(新倉)교회ㆍ신안(新安)교회 등지에서 목회하면서 선교사 베어드(W. M. Baird, 배위량), 리(G. Lee, 이길함) 등과 함께 한만국경 지역을 순회하며 교회를 돌보았다.
【1910년】
- 6월,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3회).
- 제4회 독노회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았다.
【1911년】
- 9월 제5회 독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 목사가 된 후 첫 임지는 함경대리회 구역인 함남 이원ㆍ단천ㆍ삼수ㆍ갑산ㆍ성진남편의 교회였는데 선교사 로스(A. R. Ross, 로아력)와 동사목사가 되어 지방을 순회하며 교회를 돌보았다.
【1912년】
- 9월에 부산 영선현(瀛仙峴)교회(현 초량교회)의 청빙을 받아 한국인 목사로는 초대 목사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영도 및 자갈치교회(현 항서교회, 예장 통합)도 겸임하였다.
- 영도교회(1896년 설립, 현 제일영도교회, 예장 고신)에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 이춘서 장로를 초대 장로로 장립하였다.
【1913년】
- 김해읍교회로 전임하였고 신동 및 방동교회도 겸임하였다.
【1916년】
- 경남노회에서 평북노회로 옮겨 벽동읍교회를 담임하였다.
【1918년】
- 목회일선에서 물러나 휴직하였다.
【1921년】
- 그는 뛰어난 설교가로서 여러 전도집회를 인도하였는데 특히 1921년 7월에는 선천의 신성학교 전도대의 강사로 평북 각지를 순회하며 전도하였다.
【1927년】
- 선천 미동병원 후원으로 김원주와 함께 평북 구성ㆍ태천에 파송되어 전도하였으며 각 지역의 사경회 강사로 활약하였다.
- 그는 사치스런 양복보다는 평양 수목에 검은색 혹은 회색 물감을 들여 입으면서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
【1930】
- 평북노회 목사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그의 공적(公的) 활동은 끝났으나 계속 향리의 갈현교회를 도우며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다가 1930년대 향리에서 별세하였다.
【기타】
- 유족으로는 외아들 병두가 있었으나 일찍 사망하였다.
- 세 딸 중 차녀는 홍종섭 목사의 부인, 3녀(信聖)은 선천명신학교 교장인 장애경 장로의 부인이 되었다.
- 한영제(1925~2008) 장로의 큰할아버지가 한득룡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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