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자료실]/[서양사]3

나치보다 유대주의와 공산주의를 더 두려워한 교황 비오 12세 나치보다 유대주의와 공산주의를 더 두려워한 교황 비오 12세 제260대 교황인 비오 12세는 1939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바로 그 해 9월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그는 거의 20년을 교황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의 평가가 다양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교황 비오 12세는 한국의 역사에서 그는 두 가지 차원에서 관심을 끈다. 첫 번째는 조상에 대한 제사가 우상숭배라는 가톨릭의 입장을 뒤집은 것이며, 두 번째는 대한민국이 UN에 가입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바로가기] 조상에 대한 제사가 우상숭배라고 선언한 교황 클레멘스 11세 그런데 비오 12세는 유럽에서만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교황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평가와 논란이.. 2025. 7. 11.
1700년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11세(Clement XI, 1700~1721년) 1700년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11세(Clement XI, 1700~1721년) [1700년,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11세] 【교황 인노첸시오 12세의 사망과 콘클라베】 1700년 교황 선거 회의(콘클라베)는 교황 인노첸시오 12세(Innocent XII)의 사망에 따라 소집되었으며,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t XI)로 추기경(Cardinal) 조반니 알바니(Giovanni Albani)를 선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선거 회의에서는 교황 선출에 있어 젤란티(Zelanti) 파벌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회의는 한 달 동안 결렬 상태였는데, 자식이 없었던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Charles II of Spain)의 죽음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회의 참석자들은 카를로스.. 2025. 7. 11.
교황 클레멘스 11세(1700~1721년)가 임명한 추기경들 교황 클레멘스 11세(1700~1721년)가 임명한 추기경들 【1703년 12월 17일】 프란체스코 피냐텔리(Francesco Pignatelli) 나폴리 대주교(archbishop of Naples)1704년 2월 11일 : 성 마르첼리노와 성 피에트로 교회(Chiesa di SS. Marcellino e Pietro)의 추기경 사제1719년 4월 26일 : 사비나(Sabina)의 추기경 주교1724년 6월 12일 : 프라스카티(Frascati)의 추기경 주교1725년 11월 19일 : 포르토와 성 루피나(Porto e S. Rufina)의 추기경 주교1734년 12월 5일 : 사망 【1706년 5월 17일】 프란체스코 마르텔리(Francesco Martelli) 명목상의 예루살렘 대주교1706년 6월.. 2025.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