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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2세기의 위대한 변증가들과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발자취를 밟아 기독교 진리를 참된 철학으로 보았다. 그는 그리스 철학을 반대하거나 취소하지 않고 그것을 충족시켰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과 같은 그리스 사상에서 훌륭한 점을 보았다. 클레멘트는 철학을 복음을 위한 도구로 보았고 능숙한 기독교 사상가들의 손에서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비기독교적인 사상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와 수용 때문에 클레멘트는 “자유적인 신학자의 원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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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클레멘트와 거의 동시대 사람)는 이교 철학과 또 기독교 사상과 이교 철학의 관계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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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는... 기독교를 그리스 철학으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그가 그리스 철학의 우주 기원론을 반대... 그리스 사상은 우주는 영원하고 우주의 창조는 데미우르고스에 의한 물질의 단순한 형태나 조형이라고 주장한 데 반하여, 클레멘트는 기독교의 신관과 세계관을 따라서 ‘무로부터의 창조’의 교리를 주장하였다. (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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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는 개방적이고 지적이며 철학적인 기독교 신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을 될 수 있는 한 많은 문화와 종합할 수 있는 길을 닦았던 선구자이다. 20세기의 ‘클레멘트’는 파울 틸리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독일의 철학적 신학자로서 “상관관계의 방법”을 이용하여 다양한 철학과 신적 계시의 조화를 이루려 했다. 반면 스위스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20세기의 “테르툴리아누스”일 것이다. 그는 전적으로 철학을 배격하지는 않았지만 테르툴리아누스처럼 그 역시 이교도 혹은 세속적인 사고방식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기독교 신앙 체계를 세우려 했다. (100)
# 클레멘트의 생애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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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기독교 교리 문답 학교를 설립했던 판테누스의 후임으로 교장이 되었다. 202년 박해와 순교의 위협을 피하여 알렉산드리아로 도망했다... 211년과 216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성직자 혹은 사제로 임직을 받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저서들은 기독교 공동체에 관한 토론은 무시했고, 대신에 개별 신자들의 영성과 사색적인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알렉산드리아 지식인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던 중기 플라톤주의에 젖어 있었다... 여러 면에서 클레멘트의 기독교 철학은 유스티누스 사상의 연장으로 보인다.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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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에 대한 훈계』, 『교사』, 『잡록』, 『구원받아야 할 부자는 누구인가?』, 『테오도투스로부터의 발췌』...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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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에 대한 훈계』는 이교도에 대한 논쟁... 그리스 철학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스 철학의 진리들은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고 히브리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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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게』... 『교사』... 하나님의 신적인 말씀, 즉 로고스에 관하여 언급... 예수 그리스도를 우주적인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의 순종의 삶은 이성에 따라 이성에 상응하여 사는 삶이라고 강조한다. (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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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로 알려진 『잡록』... 포괄적인 기독교 철학을 구성하려는 클레멘티의 기획으로 구성... 비체계적이고 절충적인 철학을 발견... “우리 책은 철학이나 다른 가르침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하는 일에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102)
# 클레멘트와 그리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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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기독교 신앙과 당대의 가장 훌륭한 학문과의 통합을 가치 있게 평가했다. 그의 좌우명은 “모든 진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하나님의 진리이다.”였다. 그는 다양한 철학과 종교 체계들에 분산되어 있는 신의 섬광들을 한데로 모아 히브리 성경(물론 알레고리적으로 해석된)과 사도적 전통의 우선적인 권위에 종속시키려 했다.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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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울이 자신의 서신들에서 철학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점... 에피쿠로스 철학(쾌락주의)이나 스토아 철학 같은 단지 어떤 특이한 사상체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 모세의 율법이 메시아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히브리 사람들을 준비시킨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처럼, 철학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 사람들을 준비토록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모세의 모방자...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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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철학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의 부도덕하고 변덕스러운 신들을 거절하고 유일하고 궁극적인 영적 실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 성경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하여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로부터의” 창조론을 주장... 클레멘트에게 플라톤주의는 이교 세계에서 기독교에 활기 있는 동맹자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플라톤주의는 죽음 이후의 삶과 모든 것에 대한 영적인 차원의 비전을 주장하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높은 영적 실재들을 향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멀리하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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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는 하나님의 계시는 이해 가능한 것으로, 그래서 논리와 변증법을 사용하여 계시를 해석하면 확실히 건전한 신앙과 도덕적인 체계들로 인도할 것으로 믿었다... 클레멘트에게 철학은 기독교인들 사이에 있는 이단들을 치료하는 데 봉사한다. (103)
# “진정한 영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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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을 “진정한 영지주의자” 또는 “완전한 영지주의자”로 생각한다... 육체적인 욕구와 쾌락을 추구하는 저속한 삶을 멀리하고 지성적인 삶을 사는 지혜의 사람... 신성화(神性化)의 관념...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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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에게 완전에 대한 어떤 성취란 육체적인 저속한 생활을 버리고 묵상과 연구를 통하여 차원 높은 지성인의 생활을 추구하면서 인간성을 하나님께 양도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 과정의 교사는 예수 그리스도... 신적 지혜의 화신이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자신으로 봄... 클레멘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로고스이다.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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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물질을 일반적으로 “낮은 본질”로 본 반면 영혼은 “더 높고 더 좋은 본질”로 뚜렷이 차별화하였다. 그는 영혼을 인간의 이성적 부분으로 묘사하였다. 이것은 영지주의와 다른 점이다. 왜냐하면 클레멘트는 물질과 육체가 악하다고 하는 관념을 분명히 부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성경적인 견해보다는 인간과 창조에 관한 플라톤적인 견해에 더 가깝다...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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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의 신관과 인간의 인격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견해는 그의 그리스 지향적인 경향을 잘 드러내준다... 클레멘트의 하나님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신과 같았다. (105-106)
# 테르툴리아누스의 생애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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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과는 아무 관계가 없거나 거의 관련이 없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다양한 이단들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그는 우리의 그리스 철학은 모든 이단들의 원인으로 어디든지 잠복해 있으면서 악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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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경에 태어남... 주 활동 무대는 카르타고... 약 190년경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법률적인 지식과 솜씨를 통해 정통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데 헌신했다... 207년경 정통 가톨릭교회를 떠나 212년경 사망...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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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의 변절... 대교회의 도덕적이고 신학적인 타락에 불만을 품고 카르타고에 있는 몬타누스주의자들의 “새 예언”교회에 가담...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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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는 보수주의적-심지어 근본주의-기독교 신학자의 원형인 반면에 클레멘트는 자유주의적 기독교 신학자의 원형... 두 사람은 모든 진리는 그 진리가 어디서 발견되든지 하나님의 진리라고 하는 데 동의했다... 클레멘트는 전통적인 성경적인 사상과 그리스 사상의 범위를 초월하여 형성될 수 있는 진리의 종합을 추구하는 데 훨씬 낙관론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분명히 모순된 진리 주장도 인간은 수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테르툴리아누스는 그와 같은 진리의 종합을 추구하는 일은 우상숭배나 위험한 혼합주의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고 보면서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에 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철학 공부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이단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고했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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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세아스 반박문』... 프락세아스는 삼위일체론을 조직적으로 상세히 설명하려 한 최초의 기독교 신학자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세 위격에 관한 존재론적 삼위성의 개념으로부터 분명히 벗어났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세 개의 다른 양상(樣相, aspects) 혹은 한 인격이신 하나님의 세 가지 역할들로 환원시켰다. 프락세아스의 견해는 나중에 양태론으로 알려졌다... 사벨리우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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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세아스는 로마에서 악마를 위해 두 가지 봉사를 했다. 즉 그는 예언을 추방하고 이단을 끌어들였다. 성령을 떠나게 하고 아버지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프락세아스는 분명히 반(反) 몬타누스주의자였다. 따라서 테르툴리아누스는 그가 예언운동을 소멸시킨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프락세아스가 이단으로 고소받은 것은 그가 양태론자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양태론이 진리라면 성령은 하나님의 별개의 위격이 아니고 바로 성부와 성자의 다른 이름이거나 아니면 현시일 뿐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뿐만아니라 아버지 자신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09)
# 테르툴리아누스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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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의 이단을 반대하여 삼위일체론을 상세하게 전개하였다... 동방의 기독교인들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성취했던 결과들을 거의 모른체 스스로 삼위일체론을 전개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과는 테르툴리아누스와 거의 같은 방향이었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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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론』은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을 향한 글이며 여기서 그는 마치 변호사처럼 기독교 박해자들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변호하고 기독교의 무죄를 입증하려 노력하였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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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는 왜 기독교인들은 카이사르나 소위 말하는 다른 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동시에 하나님은 한 분이며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는 당시 흔히 사용된 하나님의 로고스 개념으로 향하였다... “하나님의 이 빛은 고대 시대에 언제나 예언된 바대로 어느 특정한 처녀에게 비추어졌고 그녀의 자궁 속에서 육이 되었고 그의 출생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되었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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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철학에 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부정적인 태도가 주로 등장한 곳은 『이단논박』에서이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실로 무슨 관계가 있는가?” ...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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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에게 성숙한 기독교인은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 그리고 교회의 신앙 규범(사도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벗어난 정신적 사색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이다.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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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는 또한 최초의 기독교 청교도라는 비난을 받았다. 왜냐하면 도덕과 순종, 적절한 의상과 외모 등에 관한 행동의 엄격성을 강조하는 많은 글들을 썼기 때문이다. (112)
# 테르툴리아누스의 삼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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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교리들은 프락세아스와 불꽃 튀는 논쟁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프락세아스 “성부수난설”... 이것은 교회 역사를 통해 전해져 내려온 프락세아스와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적인 입장을 지칭하는 신학적인 용어가 되었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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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세아스는 하나님 안에 오직 유일한 하나의 인격적 본성이 있을 뿐이며 이 단일 본성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표명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훗날 양태론자들은 기독교 삼위일체론에 관한 자신들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 극장에서 쓰던 이미지나 언어를 사용하곤 하였다. 즉 어떤 한 배우가 다른 가면들을 쓰고 한 작품에서 세 가지 역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극에서 그와 같은 가면에 대한 말은 종종 “인격”(persona)에 사용된 말과 같다. 그러므로 양태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세 위격 안에 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을 고백할 때, 그들은 유대교와 그리스의 일신교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 위격들”은 한 분 하나님이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쓰고 계신 가면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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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는 정열을 다 바쳐 그리고 지적인 명쾌함을 통해 하나님의 삼위성은 외관상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 같은 양태론자들의 견해를 거부하고 반박했던 첫 번째 신학자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유기적인 유일신론”이라는 보다 복합적인 견해를 발전시켰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단일성”은 생물학상의 유기적 조직체들이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되고 서로 동등한 관계를 가진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다양성을 무시 혹은 배제하지 않는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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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한 본질과 삼위”이다. 테르툴리아누스에게 “본질”이란 존재하는 것을 무엇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존재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위격”이란 독특성을 제공하는 행동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기초를 이루는 사상은 “분할이 없는 구별”이다.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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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설명할 때에도 본질과 인격이라는 삼위일체론에서 쓰던 동일한 기본 개념들을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본성과 인간의 본성, 곧 양성을 겸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두 인격이나 두 신분이 아닌 오로지 한 인격이시다. 주목해 볼 점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나 본질들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수난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면서도 동시에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서는 그는 두 개의 독특한 본성 혹은 본질들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둘 중의 오직 하나-인성-만이 수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들은 “구별되게 행동했고” 또 두 본성은 예수 안에서 “결합”되었지만 그 둘은 혼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그리스도의 두 개의 독특한 본성을 주장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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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의 구원관은 “참된 영지주의자”가 되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에 비해 테르툴리아누스의 구원관은 세례에 집중되었다... 테르툴리누스의 구원관은 사도 교부들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들의 도덕적 엄격주의의 영향을 북아프리카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라틴 기독교권으로 확장시켰다. 클레멘트의 구원관은 변증가들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고 그들의 지성주의를 동방 그리스 기독교권으로 확장시켰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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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 오리게네스 /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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