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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논문 정리]

“마틴 루터와 토마스 뮌처 – 신학적 배경과 한계” – 나학진(1986)

by [수호천사]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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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학진, 신학사상 54집, 1986 가을

 

1. 서론

 

  • 급진론자들의 다양성 (501-502)

  • 뮌처가 유아세례를 반대했다고 재세례파로 간주해야 하는가? 라투렛트와 칼 홀과 뵈머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트뢸취의 해석은 다르다(뮌처는 재세례파가 아니었음을 지적하고, 신비주의에 속하는 성령론자로 간주한다). (503)

  • 뮌처 : 유아세례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인 의식과 함께 신정론적인 신국의 건설을 시도하는 면에서 혁명형의 재세례파와 같은 태도를 나타냈으며, 동시에 타보르파나 요아킴에 연결되는 신비성의 성령론적인 성격도 찾아볼 수 있다. (503)

  • 뮌처의 특색은 혁명적인 성령론자였음에 있을 것이다. (503)

  • 올바른 신학으로부터 올바른 행동에 이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기의 행동을 옳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신학적으로 정당화시키는 두 가지 경우의 共存을 생각할 수 있는데, 뮌처는 후자의 경향이 강한 인상을 준다고 볼 수 있다. (504)

  •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를 변혁하는 성령의 힘을 믿었다. (504)

  • 루터의 사상을 나치스의 히틀러의 근원으로 쉽게 설명하려는 오류는 피해야 할 것이다. 뮌처가 시도한 유토피아를 곧 민주주의로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공산주의의 모형이었다고 해석함은 깊은 차원에서 볼 때에 그 타당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504)

 

2. 재세례파와 성령론자

 

  • 포렐은 재세례파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고 있다. 1) 구약성서 지향적인 혁명론자(평화론자와는 달리, 가나안 민족들과의 전쟁을 소명받았던 구약성서를 강조하면서 때로는 성서와는 관계없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시를 주장하기도 한다 - 뮌처). 2) 신약성서 지향적인 재세례파(국가권력에 대한 쯔빙글리의 태도를 불만스럽게 생각하였는데 평화론적인 입장의 대표적인 경우를 메노 시몬스에게서 보게 된다고 한다). 3) 성령적인 재세례파(유아세례에 반대하지만 성년세례에 대해 그렇게 강한 긍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성령의 내적인 말씀을 강조하며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인 입장에 반대한다. - 프랑크, 슈벵크펠트). 4) 합리론적 재세례파(세르베투스, 래리우스, 소키니우스 : 유아세례를 배척할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신론을 반대한다. 영혼을 이성으로 이해하면서, 인류의 도덕적인 향상에 공헌하는 성서의 진리를 강조). (505-506)

  • 뮌처를 혁명적인 성령론자로 지명한 이유 (506)

  • 혁명적인 성령론자들은 성령의 추진력을 강조한다. 성령에 의한 내적인 세례를 강조한다. (507)

  • 유아세례에 반대하는 이유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거듭남의 경험이나 의식이 없는 세례에는 뜻이 없다고 생각함은 사실이다. 그리스도에 의한 대속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원죄에 의해서 생긴 모든 결과는 소멸되었다고 판단한다. 선악에 대한 분별의 의식이 생긴 연휴에 행한 죄에 대해서만 벌을 내릴 수 있다. (507-508)

  • 재세례파들은 선행에 의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참다운 구원은 선행으로 이어짐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는 산상설교의 요구에 부함되는 생활을 추구하면서 고도의 윤리성을 강조한다. (508)

  • 멜키오르 호프만 : 자기가 투옥되어 죽고 나면 후에 예수와 함께 재림하게 되는데, 그때에 예수가 스트라스부르크에 새예루살렘을 세우고 악한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의 재림이 실현되지 않자, 스트라스부르크가 아니라 뮌스터에 새예루살렘이 건설된 장소임을 매티스는 주장하기도 하였다. (509)

  • 이상적인 예루살렘을 힘으로써 추구하려는 태도가 종말에 살고 있다는 의식과 함께 천년왕국의 생각에 연결되기도 하였지만, 끔찍한 사건이 뮌스터에서 실제로 발생하고야 말았다. (509)

 

3. 뮌처와 루터, 그리고 농민반란

 

  • 뮌처가 투쟁의 대상으로 삼은 경건치 못한 사람이란 가톨릭 교회와 루터주의자들을 우선 겨냥한 것이었다. (510)

  • 뮌처는 성령과의 연결에서 인간의 평등성을 제시하고 있다. (511)

  • 뮌처가 보기에 루터의 칭의론에는 계급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511)

  • 뮌처는 선행적인 행함이 중요하였다. 은총과 율법을 분리시킨 루터에서는 선행적인 행동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512)

  • 루터의 두 왕국론 (512-513)

  • 로마서 13장을 해석함에 있어서 뮌처의 출발점은 1-2절이 아니라 3-4절이었다. (513)

  • 다니엘서 2장과 7장의 종말론적인 해석 (514-515)

  • 요한복음 2장의 성전 숙청 (516)

  • 인간의 상황을 개선함이 아니라 보존하는 데 국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 루터와는 달리, 변혁을 위한 적극적인 의무가 국가에 부여된 것으로 뮌처는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민중을 억누르게 되자 혁명의 반기를 들게 된 것이다. (516)

  • 어떻게 보면 과격한 혁명론자 때문에 더더욱 루터가 국가쪽으로 기울어졌는지도 모른다. (518)

  • 뮌처는 그의 종말론적 사상과 함께 신정국가의 수립을 꿈꾸었던 것이다. (518)

  • 루터는 농민들의 요구가 복음과는 관계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기적인 것으로 보았다. (519)

 

4. 결론

 

  • 루터가 인간 의지에 예속된 상태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구원에 이르는 데 있어서의 인간 자유의 예속성을 지적한 것이지, 도덕적인 자유의 행사를 루터가 완전히 부인했다고 판단함을 잘못이라는 말이다. (519-520)

  • 루터가 복음과 율법을 분리시켰다고 뮌처는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루터는 이 둘이 연결되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하지를 않았다. 이 두 관계는 두 왕국설과 연결이 된다. (520)

  • 복음과 율법의 관계는 선행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칭의가 이룩된 이후의 선행의 중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520)

  • 현존의 법정에 호소하여 해결하라는 루터의 제안은 공정심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법으로는 해결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과격하게 행동한 것이다. 어쩌면 루터가 현실 상황을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사상이 나치즘으로 이어졌다는 등의 속단을 내리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520-521)

  • 예수를 모형으로 생각해 볼 때에 혁명의 정당화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521)

  • (뮌처의) 다니엘서에 토대된 종말의 이해는 들어맞지 않았다. 해석상에 있어서 당시의 상황에 알맞게 임의로 설명되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521)

  • 뮌처의 생각을 공산주의나 민주주의의 모형으로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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