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1996). 토마스 뮌처의 영성과 사회변혁의 신학/윤리. 신학과 목회, 10, 8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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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 : 급진주의 종교개혁자, 열광적인 신비주의자, 혁명의 투사 (84)
1. 뮌처의 다양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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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쉬타인메츠 : 16세기 루터에서부터 공산주의자인 엥겔스에 이르기까지 뮌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연구하면서, “뮌처에 대한 평가는 그때마다의 정치적, 신학적 흐름에 의해 영향받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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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종교개혁의 제 일인자인 루터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농민 봉기를 주도한 뮌처에 대하여 거짓 예언자로 단정하고 말았다. … 종교개혁 실패에 대한 루터의 지나친 염려 때문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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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요한네스 코흐로이스는 루터야말로 농민 봉기의 장본인이라고 한다. … 단지 뮌처는 루터가 닦아 놓은 길을 달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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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뮌처보다 훨씬 더 해로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뮌처는 튀링겐에서만 폭동을 야기시켰지만 루터는 독일 전역에 폭동을 야기시켰기 때문이다”(요한네스 코흐로이스) -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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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프리드 아놀드는 <공평한 교회와 이단의 역사>에서 뮌처가 성령의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종교개혁을 루터보다 더 발전시켰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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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헤름 짐머멘, <위대한 농민 전쟁 개관사>에서 16세기 정치적 대립들이 독일 국민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일부로 제시되었다. 그는 뮌처에 대해 무제한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뮌처야말로 독일에 있어서 혁명적 전통의 대변자라고 강조하였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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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와 프레드릭 엥겔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 종교개혁자는 단연 뮌처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농민 봉기를 통한 사회 혁명의 전통을 재구성하는 일이었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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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한 교회사가 베인톤 : 종교개혁은 종교의 부활이었다. 종교개혁이 다른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종교개혁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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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는 15-16세기 독일 농민 복지를 중심으로 연구한 바 있었으나 열악한 경제상황에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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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 : 사회변혁을 향한 농민들의 봉기는 그것이 중세 남부 독일에서 사회ㆍ경제ㆍ정치적인 위기 속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을 특히 강조 (90)
2. 16세기 독일의 사회-경제-정치적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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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이후의 위기의 시대에 영주들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손해를 보상받으려 했다. 1) 소작인들의 자유 제한, 2) 농민들에게 강제로 부가세를 징수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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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회-경제-정치적인 상황을 제쳐두고서 종교개혁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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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제도와 길드 제도, 화폐경제로 상인들의 등장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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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들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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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들 (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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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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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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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뮌처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왕국을 꿈꾸고 있으며 그리고 이 땅에서 평등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사회 건설을 이룩해 나가고자 하는 종교가요 사회개혁가였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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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는 사회 개혁을 부르짖은 종교개혁자였으나 동시에 하나님의 깊은 신비의 세계를 경험한 신비주의자였다. … 자신이 경험한 신비적인 신앙을 실천해 나간 실천적인 신비주의자였다. (98)
3. 사회변혁에 역점을 둔 성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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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기자들은 어떤 성서 인용도 하지 않았으나 신앙으로 가득차 있었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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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가 과거에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인간과 더불어 말씀하신다.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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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은 보편적으로 역사하다고 한다. “설령 당신이 성서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당신의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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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가지지 않거나 그것을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활자로 기록된 성서를 통해서 믿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곧 성서의 무능력성을 입증하여 준다고 보았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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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통하지 않고서도 얻을 수 있는 믿음의 다른 길을 제시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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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는 1520년 대 독일 사회의 교회와 정치적 현실의 부패 때문에 루터의 성서 권위의 교리를 거부해왔다. 그 부패는 성직자들에 의한 성서 남용의 결과였다고 그는 생각했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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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는 ‘발람 지혜의 가르침’을 루터의 성서 이용에서 발견하고 있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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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도둑과 강도들에 대해서 마땅히 벌해야 한다는 것을 왕들과 영주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은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고 있는 왕과 왕자들 그리고 영주들인 것이다. … 뮌처는 이러한 사회-경제-정치적인 현실 속에서 루터의 성서 이해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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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는 성서의 잘못된 이용을 단순히 수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성서의 권위 대신에 성령의 권위를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성서를 무용지물한 것으로 무시하지 않는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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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지 않은 자는 비록 성서를 백권이나 삼켰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하여 깊이 있게 말할 줄 모른다”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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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의 성서 해석은 자신의 천년 왕국 사상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종말 사상이었다.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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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로마서 13장 1-2절을 ‘위의 권세’에 대한 복종의 의미로써 사용하고 있으나 뮌처는 오히려 13장 3-4절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급진적인 사회변혁 또는 사회 황거의 성서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 권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두려운 것이며 불경스러운 것이어서 타락한 자들을 통치자들의 검으로 쓸어버리는 하나님의 도구인 것이다. … 세상의 지배자가 의무를 게을리한다면 그 검을 빼앗아 갈 것이다. (104)
4. 영성과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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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의 영성 : 해방의 신학 자체가 진정한 영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구티에레즈 – 이웃과의 관계를 무시하는 신앙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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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신비주의 : 1) 개인적이며 명상적인 신비주의, 2) 실천적인 신비주의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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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가 가장 최대의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 속 한 복판에서 경험되어지는 하나님이었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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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에게 있어서 성령은 인간들의 고난을 통해서 경험되고 이해되어지는 하나님의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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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신비적인 신앙과 혁명적인 실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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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영성이란 반드시 정의의 실현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114)
5. 사회변혁의 신학/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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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에게 있어서 농민 봉기는 구조악으로 가득찬 당시의 사회를 변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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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의 신비주의 신학 곧 뮌처의 영성 신학은 깊은 내면의 신비한 세계에서부터 사회-경제적으로 모순된 현실의 외면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 그의 영성은 명상적이며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경제적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도시 빈민과 농민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실천적인 영성이었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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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는 신앙이 억압과 착취의 구조 속에서 적당하게 야합하거나 또는 세속주의의 가치관과 타협해 나가는 것은 ‘허구적 신앙’이라고 지적한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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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철두철미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고, 제자됨은 신비적이고 혁명적인 해방의 행동인 것이다.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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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됨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 속에서, 인간을 통하여, 인간과 더불어 행동하신다.”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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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는 정의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 단순히 행위가 없는 믿음만을 요구하는 “달콤한 꿀과 같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루터를 공격한다. 이러한 “값싼 은혜”는 “쓰디 쓴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제자됨을 회피한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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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는 신앙의 신비적인 경험 속에서 더욱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고 한 영성 신학자요, 당시의 ‘허구적인 신앙’에 대한 종교개혁자요 그리고 비인간적인 모순의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를 오늘 여기에서 세워 나가려고 한 사회 변혁의 신학자였다. (121)
**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 있어야 했다. 그가 토마스 뮌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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