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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학 방법론 2] - [3] ‘상징’으로서의 계시 : 폴 틸리히 1.
1. 틸리히의 그리스도교의 상징적 이해
1) 틸리히는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 폴 틸리히는 1886년 독일에서 태어나 드레스덴, 라이프찌히,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에서 철학, 종교철학, 신학을 전공하고 1933년 히틀러가 집권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담당하였다. (102)
- 그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는 문화적, 정신적으로 두 세계에서 살았다... 그의 생애의 한 부분은 19세기에 속하고, 한 부분은 20세기에 속한다. 그의 반평생은 구라파 대륙의 보수주의에서 살았고, 반평생은 미국 신대륙의 자유주의적 세계의 새로운 푸론티어에서 살았다. (102)
- 그의 사상적 온상은 낭만주의와 자연신비주의였다. 그의 낭만주의가 깨진 것은 그가 종군목사로 있을 때(1914-1918)인 1915년 불란서에서 겪은 전쟁의 경험에서였다. 이때 “인간은 인식적으로 그의 존재의 본질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 본질과 실존의 통일에 대한 신념”, 즉 그의 독일 고전적 관념론이 깨어졌다. 그의 대학 시절에 영향을 준 것은 칸트, 피히테, 쉴라이에르마하, 헤겔, 그리고 특히 쉘링 등이었다. 그의 신학적 실존의 영향은 누구보다도 키에르케고르의 발견과 그의 변증법적 심리학의 충격이었고, 그 다음은 쉘링의 제2기의 실증철학과의 만남이었다. (103)
- 그가 소위 신정통주의 신학 사조와 만난 것은 1925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칠 때였으며, 무엇보다도 여기서 그는 하이데거와 접촉을 갖게 되어 그에게서 20세기 형의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서 대답을 배웠다기보다는 새로운 사고법을 배웠다고 한다. (103)
- 그의 독일에서의 공헌은 자유주의 네메시스의 반항으로서 이것은 그의 종교사회주의, 카리오스, 믿음 위에 선 실재론 등의 사상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세계적 신학자로서 사상의 성숙을 이루게 된 것은 1933년 이후 미국에 와서였다. 독일은 그를 낳아 키웠고, 미국은 그것의 열매를 딴 셈이 되었다. (103)
- 틸리히는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그는 평생동안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의 의미를 소외 속에 있는 20세기 인간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가 호소한 것은 키에르케고르처럼 신앙을 되찾는 자, 진리를 찾는 자, 진리를 갈급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첫 번으로 그가 해야 했던 것은 상황의 진단이었다. 그가 한 일은 다만 상황을 발견한 것만이 아니라 상황을 질문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는 현대인의 운명과 상태의 결정적인 요소를 ‘깊이의 차원의 상실’에서 보았다. 깊이의 차원의 상실이란 인간의 삶의 의의, 즉 ‘우리는 어디로부터 오고,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잃었다는 말이다. 깊이의 차원이 상실되었을 때,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주지 못하고 또 질문조차 똑바로 하지 못한다... 깊이의 차원은 다름아닌 종교적 차원이다. 만일 종교를 궁극적인 관심의 실존적 상태라고 한다면 오늘의 인간은 바로 이것을 잃었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교의 상징들을 ‘상징’으로 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려 함으로써 신학자들은 깊이의 차원의 산 경험을 지평선적인 면의 물체, 또는 사건으로 만들고 자연적, 생물학적 역사적 공격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보며, 빌리 그레함의 부흥운동 방법이나 신학적 근본주의의 문자주의는 오늘 이렇게 요구하는 종교적 질문에 필요한 대답을 줄 수가 없다고 보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속적 또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로써 우리의 질문을 덮어싸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상징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상징을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특수한 환경에 타당한 대답’과 ‘그리스도교의 상징들의 상징적 해석’이란 두 가지는 틸리히가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하려고 했었던 것이며, 그의 신학의 동기와 원리, 자세와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103-104)
2) 상관의 원리
- 그는 자기의 신학적 위치를 한편으로는 소위 변증법적 신학(대륙에서) 또는 신정통주의(미국에서)라고 하는 신학과, 또 한편 자유주의 또는 휴머니스트(특히 미국에서)라고 하는 신학적 입장과 구별한다. (104)
- 자서전... “신자유주의” 신학... 그는 신학의 과제를 ‘중개’에서 본다. 그것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진리와 영원한 표준과 개인, 그룹의 변화하는 경험들, 그들의 실재를 보는 문제들과 카테고리들 사이의 ‘중개’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만일 신학의 ‘중개’라는 과제가 부정되면 신학 자체가 부정된다. 신학에 있어서 중개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변증법’이다. 그것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과 말함으로써 진리를 찾는 길이다. 그는 신학의 과제를 상황에 대한 응답과 대답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학은 상황에서 출발한다. (104)
- 그에게 있어서 신학의 근본적인 악은 상황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객관화하는 정통주의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은 케리그마의 신학이 아니고 상황의 신학이라 부르게 된다. 상황이란 존재의 창조적인 해석, 한 시대에 있어서의 인간의 창조적인 자기 해석의 전체를 의미한다. 즉 존재 자체의 질문이다. 신학은 이와 같은 ‘상황의 소리’, 존재 자체에 대답을 주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시도와 노력은 ‘질문’이며 요구이고 대답이 아니다. 신학 또는 교회의 존재 이유는 도그마를 위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즉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문제인 그 존재를 위해서 있다. (104)
- “상황에 대한 참여”, 이것을 신학의 역사에서 변증신학이라 한다... 변증신학은 대답하는 신학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황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고 상황의 범주에서 복음을 증거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상황과의 지적 대화’를 의미한다. 상황과의 대화, 질문에 대한 대답의 원리를 ‘상관의 원리’라 하여 상황에서 암시된 질문(철학)을 메시지에서 암시된 대답(신학)과 상관시키려고 한다. (105)
- 틸리히의 신학체계는 전반적으로 변증법적인 관점에서 동적, 변증법적 ‘상관의 원리’ 위에 세워져 있다. 그것은 이성과 계시, 존재와 신, 실존과 그리스도,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의 구조를 이룬다. (105)
3) 현상학적 구조
- 그는 신학의 기초 개념들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을 한다. 그것은 잠정적으로 그 의미들이 말하는 실제의 문제를 무시하고, 어떤 개념의 타당성이 긍정이나 부정이 되기에 앞서 그 의미를 먼저 밝히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는 계시의 실재를 논하기에 앞서서 계시의 의미를 찾고, 신의 실재를 논하기 전에 신의 의미를 찾는다. (105)
- 계시 개념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주어진 용어들 가운데 애매한 몇 가지의 의미를 새로이 철학적으로 재해석한다. 예를 들면, 계시의 신비, 황홀, 기적 등의 해석은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계시는 계시의 실재를 말하기 전에 현상학적 방법에 의해서 계시적 상황에서 받아질 수 있는 지식을 얻는다고 한다. (105)
4) 신의 상징적 이해
(1) 존재의 유비
- 그는 신에 관해서도 현상학적 설명에서 신의 실재에 들어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신(god)은 인간의 유한에 포함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신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존재에 대한 이름이다... “‘신들’(gods)은 능력과 의미에 있어서 정상적인 경험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인간의 신의 존재들과의 관계는 저상적인 관계를 넘는다.” ... 틸리히에 의하면 “신은 존재 자체다”는 것은 비상징적 서술로서 신에 관한 다른 주장들은 신학적으로 다만 이 근거 위에서만 주장될 수 있다. 신에 대한 어떠한 주장도 상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존재의 유비’이다. 그것은 유한으로부터 무한에 이르려는 자연신학의 소유가 아니라, 다만 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정당성을 주는 것뿐이다. 신은 존재 자체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되는 사실 위에 그 기초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상징들은 양면을 갖고 있다. 그것들은 상징하는 무한자와 그리고 유한자를 향해 있다. 그것은 무한자를 유한으로 끌어내리고 유한자를 무한으로 끌어올린다. 그것은 인간에게 신적인 것을 열어주고 신적인 것에 인간을 열어 준다. 가령,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상징화되었다면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인간관계로 끌어내려져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인간관계는 신과 인간의 관계의 모형으로 성화되었다. 만일 ‘아버지’가 신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면, 부성이 그 신율(神律)의 깊이에서 보여진다. (106)
(2)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 틸리히에 의하면 신의 존재는 존재 자체로서 다른 존재들 가운데 한 존재의 실존으로서 이해될 수 없다. 만일 신이 한 존재라면 그는 유한의 카테고리 가운데 속한다. 비록 신을 “가장 완전하고 가장 능력있는” 존재의 의미에서 ‘최고의 존재’라고 불리운다 해도 이 상황은 변함이 없다. 만일 신이 존재 자체가 아니라면 그는 마치 제우스가 희랍종교에 있어서 운명에 종속하는 것과 같이 운명에 속한다. 그러나 신은 자신의 운명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있다. 그는 ‘자존’을 갖고 있다... 신은 한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본질과 실존을 넘는 존재 자체이므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은 그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신론적이라고 틸리히는 주장한다. (106)
(3)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상징
- 틸리히에 의하면 삶은 가능한 존재가 실체적 존재가 되는 과정이다. 만일 우리가 신을 문자적으로 “살아계신 신”으로 부른다면, 우리는 그가 존재로서의 존재의 순수한 동일성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신 안에는 가능성과 실제성의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이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 또는 비상징적 의미에서는 신을 살아계신 자로서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살아계신 신에 대해서는 ‘상징적’인 말로 말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틸리히는 신인동성동형론적 상징들은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말하는 데 적당한 방식으로 이런 방식에섬나 신은 인간을 위한 산 하나님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7)
(4) ‘인격으로서의 신’이란 상징
- ‘인격적’ 신은 틸리히에 의하면 신이 한 인격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인격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그것은 신이 모든 인격적인 것의 근거이며 그 자신 안에 인격의 존재론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한 인격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인격 이하는 아니다. 틸리히에의하면 유신론은 하나님을 세계와 인간을 넘어서 있는 하늘의 완전한 인격(최고의 인격)으로 만들었다. 틸리히는 무신론이 이와 같은 최고의 인격에 반항한 것은 정당하였다고 본다. 신은 그 근거와 목적으로서 모든 삶에 참여한다.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참여한다. 그는 그것과 교제한다. 그는 그 운명에 참여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이러한 말들은 ‘상징적’이다. 즉 신의 참여는 공간적, 시간적 현재가 아니라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행동적, 종교적 교제는 인격적 신의 ‘사징’에 의존하고 우주적 참여에는 신의 편재의 이름 아래 신의 현재의 수동적 경험을 표현한다.
(5) ‘신은 영이다’라는 상징
- 영은 존재론적 요소들의 통일이며 삶의 목적이다. 존재 자체는 삶으로써 실체화되어 영(Sprit)으로써 성취된다. 산 하나님은 자신 안에서 성취된 신, 그러므로 영이다. 신은 영이다. 이것이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의 삶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직접 제약되지 않는 상징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인간의 영의 의미가 이해도지 않고서는 신의 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영은 인간의 영을 신의 삶에 ‘상징적’으로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107)
- 영으로서의 삶은 몸과 마음의 이원성, 또는 몸과 마음과 정신의 삼원성을 초월한다. 영은 부분이 아니며 또한 특수한 직능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구조의 모든 요소가 다 거기에 참여하는 포괄적인 직능이다. ‘신은 영이다’라는 말은 영으로서의 삶은 신의 삶의 포괄적인 ‘상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영은 또한 힘에 방향을 주는 의미이다. 영으로서의 신은 힘과 의미의 궁극적 통일이다. ‘신은 영이다’, ‘신은 죽었다’는 두 주장을 동일시한 니체에 반하여 틸리히는 “신은 영이기 때문에 살아계신 신이다”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한다. (108)
5) 케리그마의 상징적 해석
- 틸리히는 성서의 기록에서 역사적, 전설적, 신화적 요소들을 구별한다. 이 구별은 성서의 재료들을 보는 세 가지 양식을 준다. 역사적 보도의 양식, 전설적 형식을 통한 이야기들의 우주적 성격을 강조하는 양식, 나사렛 예수의 우주적 의미를 표현하는 상징과 신화의 양식이 그것이다. (108)
- 상징의 문제는 신약성서의 ‘비신화화’에 관한 논의에서 전면에 나오는 문제를 일으킨다고 틸리히는 본다. 틸리히에 의하면 비신화화는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1) 비신화화하는 상징들과 신화들의 문자주의적 곡해에 대한 투쟁을 의미... 2) 그것은 또한 종교적 표현으로서의 신화의 재거와 과학과 도덕의 배신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의미에서 비신화화는 강하게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에서 그 언어를 빼놓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8)
- 그리스도론적 상징들은 나사렛 예수라 부르는 역사적 사실이 그들을 그리스도로 보는 사람들에 의하여 받아진 양상이다. 이 상징들은 상징들로서 이해되고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론적 도그마를 취급함에 있어서 틸리히는 비신화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문자화, 즉 ‘상징화’를 한다. 그리스도론적 상징들을 상징들로서 주장하고 해석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그의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우주적 의미가 표현되는 이들 상징들과 신화들에 접근하는 그의 태도이다. (108)
- (1) 처녀탄생(상징)의 이야기는, 틸리히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만든 신적 영이 이미 그를 그의 그릇으로 창조하셨다는 확신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존재의 나타남은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신에게만 의존한다. 즉 역사적 운명이 이미 그의 탄생 이전에 새로운 존재의 지참자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적 이야기는 신화라고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사고에 있어서 도케틱한 방향을 가리킨다고 틸리히는 본다. (108-109)
- (2) 부활의 의미.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서로 의존된 상징으로서, 틸리히는 양자를 다 같이 실재이며 상징으로 본다. 신약성서는 십자가의 이야기에서 지시되어 있는 객관적 사건을 우주적인 상징의 의의로 높인다. 예수의 십자가는 시간과 공간 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십자가로서의 상징이며 신화의 부분이다. 그것은 옛 세계의 능력 아래서 죄인과 종의 죽음을 죽는 새 세계의 지참자의 신화이다. (109)
- 틸리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이 마음 가운데 예수의 메시야의 권위가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 결합된 것을 믿었을 때, 그때에 신비 종교와 후기 유대교의 사상에 익숙했던 부활의 사상을 그리스도로서의 메시야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상징이 사건이 된 제자들의 주장은 또한 메시야가 된 예수에 대한 그들의 신앙에서 온 것이었다. 부활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 대한 신앙의 산물이다. 즉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인 그는 결국 옛 세계의 능력에 속해 있을 수가 없었다는 확신이 부활의 경험을 나사렛 예수의 그리스도 성격의 결정적인 텍스트를 만들어냈다. 참된 경험이 제자들로 하여금 알려진 부활의 상징을 예수에게 적용하여 그를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라 고백할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은 이 경험된 사건을 ‘그리스도의 부활’이라 불렀다. (109)
- 틸리히에 의하면 부활의 사건은 역사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그의 존재의 능력이 새로운 존재로서 제자들 위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황홀한 경험에서 나사렛 예수의 구체적인 그림은 분리할 수 없이 새로운 존재의 실재와 결합하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존재가 현재하는 곳 어디든지 현재한다. 죽음이 그를 과거로 묻어둘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현재는 다시 산 몸의 성격이나 개인의 영혼의 재현의 성격을 갖지 않고 정신적 현재의 성격을 갖는다. 그는 영이다. 이와 같이 나사렛 예수의 구체적 삶은 그 무상성을 넘어서 영으로서, 신의 영원한 현재로 만든다. 이 사건이 처음에 그가 죽을 때에 갈릴리로 피하였던 제자들에게, 바울에게, 그리고 모든 시대에 여기서 지금 그의 산 현재를 경험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났다. 이것이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문자주의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은 새로운 존재와 나사렛 예수의 통일의 황홀한 확증이다. 틸리히는 이것을 ‘회복론’이라 한다. 그것은 부활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회복, 즉 예수와 신 사이의 인격적 통일 안에 뿌리를 가지고 있는 회복이며 이 동일이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을 준 회복이다. 틸리히는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선재와 후재를 이해한다. 이것은 수평선적으로가 아니라 수직선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선재와 후재는 하늘의 장소에서 내려오고 올라가는 신적 존재의 초월적 이야기 안에 있는 계단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의 지참자가 실존에 종속하고 실존을 승리하는 데 있는 영원한 차원을 지시하는 정신적 비유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109-110)
6) 맺는 말
- 1) “그리스도교 상징들의 해석”은 오늘날 종교의 차원을 잃은 현대인에게 그리스도가 주지 못하는 것이고 이것을 주어야 하는 그리스도교의 대답의 양식이라고 틸리히는 생각한다. (110)
- 2) 틸리히의 현상학적 접근, 다시 말해서 복음에서 의미에로가 아니고 일반적인 것에서 그 실재로, 가능성에서 실재로, 철학적 관찰에서 신학으로 움직이는 이 방법은 복음적 신학의 방법은 아니고 전형적인 자유주의 신학, 변증적 신학의 모습이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네메시스를 무조건적 부정하지 않고 19세기 신학의 방법을 변증법적으로 수정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여러 가지 신학적 용어의 애매성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실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점에서 틸리히의 현상학적 접근은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10)
- 3)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상징들에 대한 비문자적 해석은 수긍이 가는 점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의 인간학적 접근이 그 일방성을 가지고 강조된다면 신에 대한 모든 신학적 서술은 상대적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에 대한 모든 신학적 서술이 존재의 존재론적 구조의 상징으로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신에 관한 모든 서술은 인간이 신에게 붙인 것이 되고, 인간이 신에 대해서 창조한 것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 신학적 진술들에서 크세노파네스가 비꼬았던 ‘신인동형론’ 또는 ‘신학은 인간학이다’는 포이에르바하의 도전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 만일 신학이 틸리히의 길로 계속 들어간다면 크세노파네스나 포이에르바하 가운데 어느 하나의 함정에 빠지거나 그리스도교의 상대화와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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