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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한국사]

[백제 6대 국왕] 구수왕(仇首王, 214~234)

by [수호천사]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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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6대 국왕] 구수왕(仇首王, 214~234)

 

  • 재위 : 214년 ~ 234년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234년

 

구수왕(仇首王)은 초고왕의 아들로 귀수왕(貴須王)이라고도 부른다.

 

仇首王【或云貴須】肖古王之長子 身長七尺 威儀秀異 肖古在位四十九年薨 卽位
구수왕(仇首王)혹은 귀수(貴須)라고도 하였다.은 초고왕(肖古王)의 맏아들이다. 키가 일곱 자()요 위엄과 거동이 빼어났다. 초고가 재위 49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백제본기>

 

그의 뒤를 이은 사반왕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고이왕에게 폐위를 당했다. 또한 그가 죽은뒤 70년 후에 즉위하여 40년간 재직한데다가 삼국사기 내에서도 생구 출신이라는 설이 전하는 비류왕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초고왕부터 고이왕까지 말갈·신라 등과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으나, 대부분 백제의 패배로 끝났다고 한다. , 재위 말에는 혹심한 가뭄이나 기근 등의 재난이 겹치기도 했다.

 

[216년]

 

음력 8월에 말갈이 적현성을 침범하였으나 성주가 굳게 지켜 물러가게 했고, 왕이 기병 8백명을 이끌고 적을 추격했으나 사도성 근처에서 멈추었다.

 

[217년]

 

음력 2월에 사도성 옆에 두 개의 목책을 설치하였는데, 동서로 서로 떨어진 거리가 10리였다. 적현성의 군졸을 나누어 보내 지키게 하였다.

 

[218년]

 

왕이 군사를 보내어 신라의 장산성(獐山城)을 포위하자 신라 내해 이사금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공격하여 백제군이 크게 패하였다.

 

[234년]

 

구수왕이 죽은 후, 아들 사반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어려서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초고왕의 아우인 고이왕이 즉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이왕이 초고왕의 아우라 하는 것은 연대상으로 모순되기 때문에 고이왕은 구수왕과는 온조계 왕실 내의 서로 다른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구수왕의 차남으로 지목되는 비류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는 구수왕의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이다. ,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얻었다고도 한다. 비류왕과 비류왕의 형 사반왕 사이에는 7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나므로 형제 여부에 관하여 이견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아버지로 지목하는 구수왕과 형으로 지목한 사반왕이 죽은 뒤 70년만에 즉위하여 40년을 통치한다. 또한 삼국사기에서는 비류왕을 구수왕의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이라 기술하고도 같은 조의 다른 줄에는 생구로 살면서 명성을 얻었다는 구절이 나타난다.

 

구수왕의 치세는 말갈, 신라 등과의 전투로 얼룩져 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구수왕 말기에 들어서는 자연 재해까지 발생하는데 연맹 체제 하에서 이러한 일들은 구수왕이 속한 초고왕계 세력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결국 사반왕이 쫓겨나며 고이왕이 즉위하는 계기가 된다.

 

7대 사반왕은 그의 맏아들이고 제11대 비류왕은 둘째 아들이라고는 하는데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온조(溫祚)계 왕족 출신이며 제6대 구수왕에 이르러 그동안 정권을 잡고 있던 온조계 왕족에 큰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관계]

  • 부친 : 초고왕
  • 모친 : 미상
  • 정비 : 미상
  • 차비 : 미상
    아들 : 사반
    아들 또는 후손 : 비류
    아들 또는 후손 : 우복(優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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