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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전]/[자]

장덕로 [張德櫓, 1883~1950?]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수난자, 호는 성산(聖山)

by [수호천사] 20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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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로 [張德櫓, 1883~1950?]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수난자, 호는 성산(聖山)

 

【1883년】

  • 평북 의주군 고성면 용산동에서 출생하였다. (1884년 1월 13일 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1900년】

  • 장하순(張河舜)에게 전도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1901년】

  • 그의 집에서 용산(龍山)교회가 설립되었다.

 

【1903년】

  • 용산교회 부설 신영(信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07년】

  • 조사가 되어 상단ㆍ북하ㆍ안동ㆍ마전ㆍ신의주 등지의 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1년】

  • 마전(麻田)교회를 개척하였다.
  • 신의주 부근의 마전교회(麻田敎會)에 출석하던 장로교인들이 교회를 따로 세우기로 하고 신의주부 매지정(新義州府 梅枝町) 8번지에 여덟 칸 예배당을 건립하고 1911년 12월에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신의주제1교회(新義州第一敎會)이다

 

【1912년】

  • 마전교회 장로로 장립되었다.
  • 마전교회 부설 신명(新明)학교 교장이 되어 교육에 종사하였다.
  • 윤치호(尹致昊)ㆍ김규식(金奎植)ㆍ김선두(金善斗)ㆍ현순(玄楯)ㆍ임종순(林鍾純) 등과 함께 한국주일학교협회를 조직하기 위한 주일학당위원회(主日學堂委員會)의 한국 교회 측 대표 및 서기를 맡았다. (한국교회 주일학교가 세계주일학교연합회와 연결되기까지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였다)

 

【1913년】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6회).
  •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마전 등 3처 교회를 담임하였다.

 

【1918년】

  • 신의주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 10월 15~16일, 제2회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 통계표서기로 피선되었다.

 

【1919년】

  • 3ㆍ1운동 직후인 4월 13일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흥사단에 가입하여 희락회장 등 간부직을 역임하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 5월 23일 신한청년당 대표 여운형이 파리로 갈 때에 한국민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다는 요지의 진술서를 작성해 국제연맹과 만국장로교연합회 등에 발송하는데 참여하고 진술서에 서명헀다.

 

【1920년】

  • 2월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조계 하비로(霞飛路) 팔선교(八仙橋)에 소재한 기독교 청소년회관에서 열린 흥사단 대회에 참가하였다.
  • 임시정부의 남만주 안동 지역 교통사무국원으로 파견되어 송병조와 함께 전단 배부,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했으며,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해 기관지의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다.

 

【1921년】

  • 남경에 교포교회를 설립하여 목회도 병행하였다.
  • 8월,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의 제3회 총회에서 간사로 피산되어 외교후원회 주간지인 〈선전(宣傳)〉의 기자로 활동했다.

 

【1924년】

  • 3월 3일, 안창호와 함께 동명학원(東明學院)을 설립하고 한인 자제들의 지식과 애국사상 교육에 힘을 쏟았다.

 

【1928년】

  • 상해 고려인기독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주일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31년】

  • 3월, 안창호 등과 함께 공평사(公平社)를 설립하여 근대적인 협동조합을 운영하였으며 이를 통해 구급의무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33년】

  • 상하이에서 흥사단 원동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원동반 제2반장에 선출되었고, 한국독립당 대회의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특무대장으로도 활동했다.

 

【1935년】

  •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뽑혀 김규식, 윤기섭 등과 함께 조국의 광복을 위해 활동했다.

 

【1945년】

  • 8ㆍ15 해방과 함께 귀국하였다.

 

【1950년】

  • 옥인동교회(1949년 2월 27일 창립, 현 옥인교회, 예장 합동) 제1대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1월 1일부터).
  • 한국전쟁 당시에 피난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다가 공산군에게 납치되었고 송창근ㆍ남궁혁ㆍ박상건ㆍ오택관ㆍ이건ㆍ박현명ㆍ김유연ㆍ송태용 등 기독교 지도자들과 함께 북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기타】

  • 1989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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