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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자료실]/인물 [사]

소수림왕 [小獸林王, ?~384] 고구려 제17대 국왕(AD. 371~384)

by [*수호천사*]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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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림왕 [小獸林王, ?~384] 고구려 제17대 국왕(AD. 371~384)


【개인 정보】

  • 이름 : 구부(丘夫) / 소해주류왕(小解朱留王) 또는 해미류왕(解味留王)이라고도 한다
  • 출생 : 미상
    사망 : 384년 11월(음력)
    재위 : 371년 10월 ~ 384년 11월(음력)
  • 전임 : 고국원왕
    후임 : 고국양왕

【가계 정보】

  • 아버지 : 고국원왕(故國原王, ?~371) – 제16대 국왕
    어머니 : 미상
  • 왕후 : 없음
  • 동생 : 고국양왕 (故國壤王, ?~391년) – 제18대 국왕

【소수림왕 연보】

 

【기원후 355년】 고국원왕 24년

  • 고국원왕(故國原王)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름은 구부(丘夫)이며, 신체가 장대하고, 웅대한 지략이 있었다고 한다.
  • 1월 태자에 책봉되었다.

【기원후 371년】

  • 10월,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투에서 부왕인 고국원왕이 전사하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기원후 372년】

  • 6월, 전진(前秦)의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함께 승려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전함으로써 고구려에 처음 불교가 전래되었다.

【기원후 373년】

  •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통치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규범을 갖추었다. 소수림왕의 이와 같은 체제 정비 사업을 기반으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시대에 들어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기원후 374년】

  • 아도(阿道)가 들어와 불도를 전하였다.

【기원후 375년】

  • 초문사(肖門寺)를 창건하여 순도를 머물게 하였으며, 또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창건하여 아도를 머물게 하는 등 전진(前秦)과 평화적 관계를 수립하는 동시에 불교를 수용하고 보급하는 정책을 펼쳤고, 또한 불교를 호국사상으로 삼았다.
  • 귀족 자제들의 유학 교육기관으로 태학(太學)을 설립하여 유교적 정치이념에 충실하고,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에 적합한 관리를 양성하였다.
  • 백제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부왕 고국원왕을 잃은 소수림왕은 계속 백제와 충돌하였다. 375년에는 백제의 수곡성(水谷城)을 빼앗았다.

【기원후 376년】

  • 음력 11월에는 백제의 3만 대군을 물리치고 북변(北邊)을 역습하였다.

【기원후 377년】

  • 백제 근구수왕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평양성으로 재차 침공해 왔지만 막아내었고, 11월에 이를 보복하기 위해 남으로 백제를 정벌하였다.

【기원후 378년】

  • 극심한 가뭄이 든 상태에서 거란의 침략을 받아 8개 부락을 빼앗기기도 했다.

【기원후 384년】

  • 11월 사망하였다. 후사가 없이 서거하여 아우인 이련(伊連, 고국양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소수림(小獸林)에 묻혔으며 능묘에서 시호 소수림이 유래하였다.

【동시대 주변 국가】

  • 백제 : 근초고왕(346~375년), 근구수왕(375~384년)
  • 신라 : 내물 마립간(356~402년)
  • 가야 : 이시품왕(346~4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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