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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6부] 제22장 : 기독교 진리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요약

by [수호천사]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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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0년 교황 레오 13세기 그의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에서 아퀴나스의 신학을 가톨릭 신학의 규범으로 삼았다... ‘천사의 박사’(Angelic Doctor)... 교황 피우스 5세가 만물박사라는 칭호를 주었다...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와 20세기 후기의 오스트리아의 칼 라너 사이에 서방측 가톨릭 전통의 유일한 최대의 신학자로 여겨진다. (394-395)

 

# 아퀴나스 저작의 신학적인 문맥

  •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옥스퍼드와 파리와 같은 대학교에서 13세기와 14세기의 스콜라 신학자들에게 신학과 철학은 분리될 수 없었다... 신학은 학문의 여왕이어야 하고 철학은 하인 혹은 시녀가 되어야만 했다... (395)

 

# 아퀴나스의 생애와 경력

  • 1224/1225년 이탈리아 로카세카에서 태어났다... 상류사회의 부유층... 수도원에서 기초 교육... 나폴리 대학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게 건전한 논법이었다.” 그것은 플라톤과 플라톤 철학을 건전한 논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96)

  • 도미니코회 가담... (396)

  • 쾰른 대학... 알버트 마그너스에게 배움... “우리는이 친구를 벙어리 황소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차 온 세상이 그의 호통치는 소리를 들으려고 몰려갈 것이다.” (397)

  •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함...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플라톤 철학)...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호의적)... 학자로서 아퀴나스가 바친 전 생애의 연구과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적인 철학적 통찰이 기본적인 기독교 진리에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전의 선입견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397)

  • 종교개혁자들의 대부분은 아퀴나스를 대단한 천재로 존경하는 반면에, 그들은 아퀴나스의 신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마법에 걸려 성경적 신앙으로부터 철학적 사색으로 잘못 빠져들게 하는 심각한 이탈로 간주했다. (398-399)

 

# 아퀴나스의 신학적 방법

  • 그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적인 논리와 학문의 원리체계는 틀림없는 것이었으며, 기독교적 자연신학으로 인도하는 데 유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명히 기독교 교리들과 충돌하는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399)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는 영원하며, 동시에 원인 없는 원인에의하여 생긴다고 믿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극히 전능하며, 영원한 원인 없는 원인과 부동의 원동자가 영원히 우주의 존재를 발생시킨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는 무에서의 창조 혹은 시간 속의 창조 개념에 대한 여지가 없다. (399)

  • 아퀴나스의 신학적 방법은 자연적인 지식(철학, 그리고 다른 비신학적 학문)과 하나님을 발견하는 지식 속의 신적 계시 사이의 관계를 가지고 시작한다... 하나님에 관한 자연적인 지식의 영역을 발견하고 확고히 세우려고 추구하였다. (400)

 

# 신앙과 이성 그리고 자연신학에 관한 아퀴나스의 견해

  • 특별한 은총, 즉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활동의 영역과는 분리되는 하나님과 인간영혼에 대한 지식의 자연적 영역에 관한 주장... 아퀴나스는 전적으로 은혜에만 의존하지 않는 자연적 지식과 자연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전혀 신앙이 없는-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비기독교신자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순수한 자연의 길을 쫓아갈 수 있다... 이성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의 활동과는 별도로 그 자체의 활동과 소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400-401)

  • 계시는 이성을 만족시키고, 완전하게 한다. 두 영역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서로 보완적이다. (401)

  • 하나님의 존재는 은혜의 도움 없이 이성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하게 신학적이며 영적인 진리는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신학에 관해 아퀴나스가 보여주는 하나의 탁월한 사례는 하나님에 관한 자연적 지식이다. (402)

  •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논증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 다섯 가지 논증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형식에서 발견될 수 있다. 다섯 가지 방법 모두가 인간의 정신이 자연 세계와의 관계에서 가지는 경험에 호소한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경험들은 불가능하며 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설명한다. (402)

  • 아퀴나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자연이 운행하는 현상에 의한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반드시 움직이게 하는 자가 있는 것이며, 그리고 움직임에서 무한한 역행의 굴레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제일 원동자, 즉 다른 무엇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로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하나님일 것이다.” (402)

  • 아퀴나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두 번째 방법은 인과관계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반드시 제일 유능한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분이다. (403)

  • 아퀴나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세 번째 방법은 스스로 그 자신의 필연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것으로부터 그 필연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다른 것에게 그들의 필연성을 일으키는 어떤 존재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분이다.” 원인에 의하지 않는 원인... (403-404)

  • 아퀴나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네 번째 방법은 사물에서 발견되는 단계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반드시 모든 존재자는 그들의 존재, 선 그리고 모든 다른 완전함의 원인이 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403)

  • 아퀴나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다섯 번째 방법은 자연 질서 안의 사물에게 놓여 있는 목적들에 호소하는 것이다. 모든 자연적 사물들이 그것에 의해 그들의 목적으로 향하게 되는 어떤 지적인 존재자가 있다. 이 존재자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403)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론

  • 그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들에 관한 많은 것이 자연으로부터의 추론만으로도 알려질 수 있다고 믿었다... 완전한 존재...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순수하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육체가 없으며, 질료적 형태의 복합물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본질과 존재가 일치하는 순수 현실태이다. 모든 존재자 중에서 완전하시며, 그리고 최고선이신 분이다.” (405)

  • 아퀴나스와 안셀무스의 하나님은 정적(靜的)이며, 그들의 자연신학과는 무관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을 그 이상에 더 큰 자가 업슨 분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하기 위하여 혹은 만물의 원동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은 반드시 되어지는 자가 아닌 존재여야 하며,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 순수 현실태여야 한다. 따라서 그분은 그 자신의 밖에서 일어나는 행동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17세기 기독교철학자이며 신비주의자 블레즈 파스칼은 철학자들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아니다라는 글을 썼다. (405-406)

  • 하나님은 전적 피조물의 질서 밖에 계시기 때문에, 피조물은 그분을 향해 있으며, 그분이 피조물을 향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련된 존재는 피조물의 실재성을 가지지만, 피조물과 관련된 존재가 하나님의 실재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407)

 

# 유비적인 표현으로서 종교적 언어에 관한 아퀴나스의 견해

  •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들 중의 어떤 것들을 알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또는 문자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만큼 신적 생명의 신비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몇몇 신비주의자들과 신학자들의 부정신학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408)

  • 하나님에 관한 언어문제를 위한 아퀴나스의 해답은 유비의 개념을 바탕으로 제시된다... 우리가 신학에서 하나님의 속성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는 뜻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모든 신학적 언어는 유비적이다. (408-409)

  • 아리스토텔레스는 옳고 선한 것을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중용에서 찾았다. (410)

 

# 아퀴나스의 구원에 관한 교훈

  • 그의 궁극적 목적은 구원의 진리를 지키고 또한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 영역에서 아퀴나스는 전적으로 자연과 은혜 사이의 체계에서 움직였다. 구원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 없이는 발견되거나 경험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는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이끄시는 그의 행동이다.” 은혜에 대한 이러한 변형은 동방 정교에서 말하는 신성화로서의 구원관과 비슷하다. 아퀴나스에게 은혜는 인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며, 하나님이 인간의 본성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지점까지 끌어 올려놓는 것이다.” (410)

  • 1) 아퀴나스에서 은혜는 본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본성을 고양시켜, 그 소질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2) 그것이 결코 강요될 수 없다는 것이다... (410-411)

  • 은혜로 인한 구원의 과정은 칭의와 성화 두 가지이다. 칭의라는 말은 구원의 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칭의로서 구원받은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룬다. 성화라는 말은 동전의 다른 면과 같은 것으로서 구원 과정의 내적인 면을 뜻한다. 성화에서 사람은 실재로 더욱 더 경건해져간다. 아퀴나스의 구원관에 있어서 이 두 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411)

  • 아퀴나스는 세례, 성찬, 그리고 참회와 같은 성례에 참여하는 것은 점점 칭의와 성화되어가는 과정의 본질적인 상황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은 반드시 자유의지를 작동시켜야 하며, 이와 같은 은혜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외적으로 볼 때, 그는 선행이 구원의 원인이 되는 것을 믿은 것처럼 보인다. (411)

  • 아퀴나스의 구원관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신학적 배경은 예정을 포함한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그의 전체적인 견해이다. 이 교리에 있어서 아퀴나스는 아주 밀접하게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를 따랐다... 섭리에 관해서 그는 하나님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정하시고, 하나님은 전적으로 악을 제외한 모든 것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악이라는 것은 단순히 선의 결핍이라고 주장하였다... 2원인들을 통하여 자연과 역사 속에서 사역하신다는 생각을 덧붙였다. (412)

  • 자연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보통 2차적인 자연의 원인을 통하여 일하신다.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은 2차적인 초자연적 원인을 통하여 일하신다. 구원의 은혜는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본성에 개입하여 본성을 고양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성은 인간의 본성적인 지식의 부분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를 찾는 지식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413)

  • 예수회의 수사들은 일반적으로 구원에 관한 신인협동적 구원론을 지지하면서 하나님의 독점적 사역의 구원론을 거절하였다. 많은 개혁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로마 가톨릭의 다수 신학자들은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신비적인 영역 속에 그냥 놓아두는 편을 택했다. 그러나 아퀴나스의 입장은 분명하였으며,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이 정정당당하게 하나님의 독점적 사역의 구원론을 지지하였다. (413)

  • 아퀴나스의 구원론에 관한 개신교의 불평은 적절하게 칭의와 성화 사이를 구별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퀴나스는 그 둘을 분리하는 것을 거절했다... 루터가 당시 가톨릭 사상에 반항한 것은 신인협동적 구원론 때문이다.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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