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스토 곤잘레스는 안셀무스를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로 보고 있다. “안셀무스는 의심할 것 없이 그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는) 13세기의 위대한 스콜라 신학의 길을 닦아 놓았다... 안셀무스와 더불어 기독교 사상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375)
-
서양 철학사에 명성을 떨친 안셀무스의 주장은 하나님의 존재를 위한 소위 존재론적인 논증에 관한 그의 계통적인 서술이다...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그는 구속(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희생)에 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데 기여하였다... 세속적인 것과 또는 왕들에 의한 교회 지배에 대하여 완강히 반대하였다... (375)
#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의 생애와 경력
-
1033년 이탈리아 알프스 지방 아오스타에서 출생... 베데딕트 수도원... 1093년 캔터베리의 감독이 됨...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 영향을 입었다... 안셀무스의 생애를 지배한 주요한 열정은 지적인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영혼의 기원... (376-377)
#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
-
안셀무스는 본질적으로 왜 무신론이 그토록 어리석은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의심하면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을 믿기 위하여 인식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안셀무스의 기본적인 신학적 방법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이성주의가 아니었다. 다만 믿음을 강화하는 신의 계시에 대한 봉사에서 논리를 이용하려고 시도하였다. (378-379)
-
그의 자연신학은 유대교 신자와 이슬람교도의 신학자들의 양자택일적 신학과 철학은 물론, 유럽의 어떤 지식인 사회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미묘한 회의주의를 논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379)
-
인간이 식별할 수 있기 위하여 그리고 인간 주변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신분을 진질로 믿을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완전히 선하고 가장 높은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논증... 완전히 실재하는 객관적인 선의 기준 없이는 사물들에서 “더욱 나쁜 것”과 “더욱 좋은 것”을 분간하여 말할 방법이 없다. (379)
-
어떤 존재가 이를테면 그들의 선의 정도에 따라서 개별적인 사물을 헤아리기 위한 궁극적인 기준 또는 규범이 마련될 수 있다는 데서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게 되는 것이다. (380)
-
“우리는 당신이 당신보다 더 큰 존재가 없는 최고의 존재임을 믿습니다”(하나님에 대한 자명한 정의)... 실재로 화가가 그린 그림은 화가의 정신 속에서 그것을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 (380-381)
-
어리석은 자는 비이성적인 사람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382)
-
안셀무스는 신의 계시나 믿음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논리적 기초 위에서 기본적인 기독교 신앙의 설명을 발전시키려고 시도한 첫 번째 기독교 신학자였다. (382)
# 안셀무스의 견해에서 본 하나님의 본질
-
“최고 지선(至善)”은 많은 인정과 냉정함(무감각),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인정이 없다면, 그는 최고 지선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만일 그가 열정(강렬한 감정)을 가졌다면 그는 피조물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 결과로 그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결국 그 이상에 더 큰 존재가 없는 최고의 존재로소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382)
-
하나님은 단순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변하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제한이나, 몸, 지체들 또는 열정이 없는 실재나 본질이었다. 하나님은 행동하지만, 결코 무엇에 의하여 작용되지 않는다. (383)
# 속죄에 관한 안셀무스의 법적 보상설
-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한 새로운 모델... 속죄는 간단히 말하면 ‘화해’를 의미한다. 신학에 있어서는 그것을 보통 예수 그리스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행위로 돌린다. (383)
-
배상설(賠償說, ransom theory)... 600년경 교황 그레고리우스에 의하여 명백한 형태로 제시... (384)
-
배상설과는 다른 안셀무스의 속죄의 이론은 법적 보상설(satisfaction theory)로 불리게 되었다... 노예가 봉토계약을 파계했을 때, 영주에게 만족할 만한 변제의무를 그가 이행하기 위하여 ‘빚을 상환’하는 중세의 노예적 개념을 축으로 전개...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들이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 것을 말한다... (384-385)
-
안셀무스의 속죄 방법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곧 그의 인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객관적 화해로 묘사하고 있다. 바로 우주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죄 없는 인간 존재의 자발적인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진노를 화해시킨다. 왜냐하면 공의가 자비로움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385-386)
-
16세기 존 칼뱅의 형벌 대속설... (386)
# 피터 아벨라르두스의 생애와 역경
-
안셀무스의 반대자... 1079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142년 프랑스 클루니 수도원에서 사망... 헬로이즈와의 사랑... 헬로이즈의 숙부와 후견인 풀버트의 자객에 의해 거세됨... 수치심으로 파리를 떠나 수도사가 됨... 헬로이즈와 서신교환... 헤로이즈는 수녀원으로... (386-388)
# 아벨라르두스의 철학적 표현법
-
아벨라르두스의 계획은 기독교 진리와 철학의 진리 사이의 일관성을 논증하려는 것... 삼위일체 신앙의 기본적인 윤곽은 그리스도 이전에 유대인 예언자들과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하여 암시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388-389)
-
아벨라르두스의 개념론은 종종 보편적 실재들을 순수한 이름들과 용어들로 취급한 중세 후기의 유명론 쪽으로 한 걸음 진보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389)
# 속죄에 관한 아벨라르두스의 도덕적 감화설
-
그는 안셀무스의 보다 새로운 변제설은 물론 전통적인 배상설과도 공공연하게 의견을 달리하고 그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켰다. 그 자신의 견해는 도덕적 감화설 또는 도덕적 모범설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죽으셨는가에 대한 것이다. (390)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교황에게 그의 정죄를 요청하였다... 아벨라르두스는 교황(인노센트 3세)를 알현하고 그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친히 변호하여 정죄를 벗기를 바랐다. 그러나 로마로 가는 동안 병이 들어 죽었다. (390)
-
아벨라르두스의 속죄의 양식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진노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 아벨라르두스에 의하면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행동을 위한 새로운 동기이지, 인간 자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갚아야 할 보상이 아니었다. 그는 변제설은 물론, 배상설도 마찬가지로 화해의 과정에서 인성을 전적으로 빠드리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들은 십자가의 하나님을 다만 하나님의 영광과 우주적인 공의만을 염려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벨라르두스의 마음은 아버지가 항상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에수의 탕자비유에 사로잡혀 있었다... 십자가의 효력은 인간을 향한 것이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다. 아벨라르두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과 화해하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벌써 우리를 사랑하신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의 행동 속에 새로운 동기를 불어넣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우리를 사라하셨는가를 십자가를 통하여 보고, 우리도 그 보답으로 사랑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390-391)
-
속죄에 관한 아벨라르두스의 설명은 속죄에서 법적인 화해에 관한 모든 의미를 제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비평가들이 기존의 속죄이론에다가 ‘주관적인 이론’을 덧칠했다는 이유이다... 비평가들에게 아벨라르두스의 의견은 필연적으로 펠라기우스의 원죄에 대한 부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392)
-
속죄는 그리스도가 죽을 때보다도 차라리 죄인이 회개하고 사랑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화해는 우리가 십자가에 의하여 감화되어 우리 자신 안에서 생기는 도덕적인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 (392)
-
아벨라르두스의 속죄의 이론은 그의 생전에는 거부되었으나, 19세기 그리고 20세기의 많은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관한 기독교 견해를 계몽한 것으로 재발견되고 환영되고 있다. (393)
-
안셀무스의 속죄의 이론과 아벨라르두스의 속죄의 이론은 십자가에 관한 서로 보완적인 설명으로 보인다. (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