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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자료실]/[도서 정리]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19장 : 동방측 교회가 동방정교회가 되다

by [수호천사]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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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54년 이후로, 양측은 서로 스스로를 보편적이고 정통적인 하나의 참된 대교회로 간주해 오고 있다. (344)

  • 서방의 아우구스티누스... 동방의 오리게네스... (345)

 

# 오리게네스의 항구적인 영향

  • 오리게네스와 오리게네스주의가 53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제5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정죄되었지만, 오리게네스와 오리게네스주의는 동방측 기독교 사상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345)

  • 오리게네스주의는 동방교회와 동방교회 구원론을 강력한 신-인 협동론으로 각인시켰다. 오리게네스의 신-인 협동론적인 구원론은 인간 자유의지는 은총과 협력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하나님의 말로 형언할 수 없음과 불가변성을 강조했던 영적이고 신비적인 신론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오리게네스주의의 구원론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신 로고스는 창조물을 변형시키고 죄와 사망을 정복한다는 구원의 성육신 사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345)

  • 단의론성상파괴 논쟁’ ... 존 크리소스톰, 고백자 막시무스, 다마스쿠스의 존... (345-346)

 

# 예배의식과 전통

  • 서방 기독교 분파들은 예배를 성경과 신학에 대한 묵상의 산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346)

  • 동방정교회 신학은 신적인 예배의식,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에 의한 예배를 결코 벗어난 적이 없다... 동방정교회 신학은 정교회 예배 전통의 산물... (346)

  • 교회 예배는 동방정교회 기독교인들에게는 모두 신학의 궁극적인 근원이요 규범이다. 성경도 또한 전통의 부분이다... 동방측 기독교인들에게, 전통은 모든 교회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개개인들의 삶을 지배한다. (346-347)

  • 기독교 전통은 787년을 전후해서 열린 제7차 에큐메니컬 공의회가 니케아에서 열렸을 때 동방정교회 기독교인들에게 실제로 거의 중요한 규범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동방교회가 가끔씩 일곱 개 공의회들의 교회로 알려진 이유이다. 동방정교회 전통의 중심에는 예배가 자리잡고 있다. (347)

  • 동방정교회 신학은 전통에 대한 반성이며, 또한 성경뿐만 아니라 예배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 그것은 서방에서, 특별히 중세기와 그 이후에 발전된 것과 같은 교리적인 명제들을 조직적인 요약이나 체계화와 같은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347)

  • 서방 기독교인들은 종종 신화(deification)로서의 구원과 하나님을 모든 만물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범신론적인 단일성 사이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방측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에너지를 구분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같은 구분은 동방정교회 신학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하게 표현되지는 못했다. (347-348)

  • 서방측 사고로 볼 때, 동방 신학은 종종 신학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이고 성문화된 권위가 없는 신비적이고 역설적인 것으로 보인다. (348)

 

# 존 크리소스톰 : 황금의 입

  • 존 크리소스톰은 전통(성경을 포함하여) 속에 표현된 것처럼 그리스도 정신에 대한 실제적인 설교를 포함하여 예배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신학을 선호했던 사람의 표본이다. (348)

  • 콘스탄티노플 총대감독으로 임명되자마자, 도시의 수도사들과 성직자들의 삶을 정화하고 개혁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교회에 대한 황제의 지배(황제교황주의)에 대항하여 대성당에서 강력한 설교를 직설적으로 선포하기 시작했다... (349)

  • 크리소스톰의 몰락... 에피파니오스는 오리게네스주의를 외치는 이단자로 공격하였다... 406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추방되어 사망... (350)

  • 위대하고 용감한 설교자요, 예배와 교회 생활의 개혁자이며, 영적인 안내자요 강력한 예언자라는 점에서 훌륭한 신학자의 범례로 간주되고 있다. 동방정교회에 따르면, 기도하고 설교를 잘했던 그는 가장 훌륭한 신학자이다. (350)

  • 막시무스의 단의론논쟁... 다마스쿠스의 존... 성상 파괴 논쟁... (351)

 

# 고백자 막시무스와 단의론

  • 단성론자들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이었다... 5세기와 6세기에 동방의 많은 황제들과 지도급 감독들은 정통 기독교와 단성론 기독교인들 사이의 단합을 위해 노력했다. 이 두파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제안은 단의론이었다... “단의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두 개의 완벽하지만 분리할 수 없는 본성을 지닌 통합적인 인간이지만, 그는 오직 하나의 의지, 즉 신의 의지만을 갖고 있다고 믿는 사상이었다. (351)

  • 막시무스는 단의론에 맞서 싸웠고 결국 이것 때문에 처형을 당했다. 그는 단의론을 반대하고 양의론’(그리스도의 본성적인 두 의지를 믿는 신앙)을 찬성했다... 타협안은 단성론으로 되돌아가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온전한 인성과 신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막시무스는 결국 그것은 정통신앙을 아폴리나리우스주의나 유티케스주의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도가 단 하나의 의지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의지는 확실히 신의 의지이어야만 하고 그러면 인성은 절단되어 없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이 되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치유될 수 없다.” (351-352)

  • 나는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의 통일이나 분열에 관심 없다. 그러나 나는 결코 올바른 신앙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건전한 교리를 연구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성직자의 일이지 황제의 일이 아니다.” (352)

  • 칼케돈 신앙의 위대한 변호자... “고백자” (352)

  • 막시무스의 보다 큰 목적은 결코 완전하게 설명될 수 없는 성육신을 중심으로 한 정통 기독교 세계관이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육신은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단지 세상 죄를 용서하기 위한 방편도 아니었고 타락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아담을 다시 회복시키는 방편도 아니었다. 막시무스는 성육신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보았다. 성육신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일어났을 것이다. 동방정교회는 막시무스의 이 같은 견해를 받아들였다. (353)

 

# 실재에 관한 막시무스의 신인 양성론적 견해

  • 막시무스의 존재론은 창조 안에 모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상에 기초해 있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자신의 자기표현이요 그의 임재 수단으로 창조되었다. 세상은 로고스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었다. 만일 첫 인류가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이것은 성육신에서 절정에 도달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353)

  • 로고스의 성육신은 구출 작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막시무스에 의하면, 그것은 모든 창조물과 자신을 연합시키려는 하나님의 원초적인 계획이요 설계이다. (354)

  • 우주적인 성육신은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부응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인간이란 피조물은 하나님의 의지에 자유로운 복종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도록 개방함으로써 하나님께 올바르게 반응해야 한다. (354)

  • 막시무스는 성육신을 인간 피조물이 우주적인 신성화의 과정에서 하나님과 적극적으로 합일하여 재탄생시키도록 하는 임무(charge)로 보았다. (354)

  • -인 양성론적인 차원이 작동하기 위해서 인간은 반드시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성육신의 과정에서 신의 은총의 불꽃과 자유롭게 협력을 해야 한다. (355)

  • 단의론자들과 성막시무스 고백자의 모든 논쟁은 엄격히 말해서 의지는 인간 본성의 필수적인 특성이고 의지와 자유가 없다면 인간 본성은 불완전하고 참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막시무스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궁극적인 완성을 위해서 너무도 필요한 신-인 양성론적 차원은 그리스도가 인간 의지를 갖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막시무스는 그리스도의 인간 의지는 하나님에게 반항했던 타락한 아담의 의지가 아니라 원초적인 의지였다고 주장했다. 그의 모든 생애에서 예수의 인간적인 의지는 로고스와 자유롭게 협력했다. 이 두 의지는 완벽하게 협력하여 로고스가 길을 인도하면 예수의 인간의지는 자유롭게 복종하고 따라갔다. (355)

  • 막시무스는... 자유의지를 인정했다... 인간은 신-인 협동론적인 구원관을 주장했다. 모든 동방 기독교의 전통처럼 막시무스가 주장한 자유의지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지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던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지 않았다.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불가피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356)

  • 일부 비동방정교회 신학자들이 취했던 딜레마로부터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은 의지란 본성의 기능이 아닌 인격의 기능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비잔티움의 레온티우스는 성육신에 관한 신성내주의 사상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하나의 의지만을 지녔다. 그 의지란 다음 아닌 그의 통일된 인격을 형성했던 하나님 아들의 의지이다. 그것은 또한 성육신 때문에 인간의 조건들 아래 있는 신의 의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케노시스’(자기 비움)를 통해 유혹(죄는 아님)에 개방되어 있는 의지이다. (356)

  • 그러나 이것은 동방 전통이 수용할 수 없었던 어떤 무엇이다... 로고스는 성육신 과정을 거치면서 어떠한 변화도 겪지 않았다. 로고스는 어떠한 변화나 변경을 겪음 없이 인성을 통해서고난을 받았다. 로고스는 불변으로 남아 있었고 고통을 겪지 않았다. (356)

  • 6차 에큐메니컬 공의회(680-681)... 단의론을 정죄하였고 그리스도 안에 두 의지가 있다는 교리를 천명하였다. 구원을 우주적인 차원으로 해석했던 그의 입장은 동방정교회 기독교인들로부터 타당한 것으로 수용되었다. (357)

 

# 다마스쿠스의 존과 성상파괴 운동

  • 787년 에큐메니컬 공의회... 거룩한 화상들(성상들)은 폐기해서는 안 되며 기독교 예배에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357)

  • 동방정교회 예배에서 성상들은 하늘로들어가는 창문들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성인들은 접촉가능한 중보자들로 쉽게 간주되었다... 성상들은 결코 예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6세기 초에 동방에서 성상들은 문맹자들을 위한 책들로 사용되었다... (357)

  • 레오 3(717) 황제는 제국 전역의 성상을 파괴하라고 명령... (358)

  • 동방교회는 성상들이 우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복원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358)

  • 절대적인 예배란 오직 하나님께만 바쳐지면 반면에 존경은 거룩한 화상들에게만 바쳐질 수 있다... 787년 제7차 에큐메니칼 공의회...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화상들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자들을 저주하노라. 성스러운 화상들을 우상으로 부르는 자들을 저주하노라.” (359

  • 필리오케”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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