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부터 11세기 스콜라주의가 등장할 때까지 라틴 기독교 신학은 일종의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신학논쟁의 대부분은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거의 모든 논쟁의 대답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서 찾고자 했다. (330)
# 반(semi) 펠라기우스주의
-
교회는 죄와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의 중대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중재적 입장과 다소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로마 가톨릭주의는 항상 온건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온건한 반(semi) 펠라기우스주의 사이 중간쯤에 남아 있었다. (331)
-
신학의 역사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질문들 중의 하나는 인간은 자신의 구원에서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실제로 전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구원은 하나님의 독점적인 사역이라고 결론지었다... 펠라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단독사역론’을 반대하면서 구원에 인간의 진정한 공헌을 전제했던 구원을 발전시켰다. 펠라기우스는 초자연적인 은총의 도움은 불필요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331-332)
-
순수 펠라기우스주의는 431년(에베소 공의회) 이후로 보편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들에게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되지 못했던 반면, 많은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단독사역론’과 펠라기우스의 ‘행위의인화’ 사이의 중간적인 입장을 추구했다. 확실히 그들은 은총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과 행동 모두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구원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중도적인 입장에 훨씬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332)
-
반(semi) 펠라기우스파 신학자들의 지도자는 프랑스 마르세이유의 수도사 존 카시안이었다... 서방 수도원주의를 처음으로 조직화하고 체계화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동방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인정했다. (332)
-
카시안과함께 노력한 두 신학자... 레링의 빈센트와 리츠의 파우스투스... 신의 예정론을 주장한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데 특별히 앞장선 사람들... 반(semi) 펠라기우스파... (332-333)
-
카시안과 그의 동료들은 보편적인 교회에 아우구스티누스파의 ‘단독사역론’을 대신할 만한 유력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정통 신-인협동론과 펠라기우스주의 사이의 미묘한 차이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333)
-
카시안은 정통적이고 보편적인 ‘신-인협동설’을 발전시키면서 ‘단독사역론’과 ‘펠라기우스주의’ 모두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서방교회에 따르면 그는 이 점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실패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중 신학으로 널리 수용되었다. (333)
-
카시안과 다른 메살리언파들(초대교회 수도사 그룹)은 인간은 은총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와 같은 구원은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선한 의지의 주도로 시작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돕는 사람을 도우신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을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그 길의 남은 부분을 걸어오실 것이다.” (529년 오렌지 공의회에서 정죄받음... 펠라기우스파와 너무 가깝다) (334)
-
카시안은 은총과 자유의지는 구원이 발생하는 데 필요하며 그들은 서로 조화로운 관계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335)
-
존 카시안은 자신의 견해들이 펠라기우스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모든 일에서 은총의 현저성을 주장했다...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 주도권의 가능성을 매우 살짝 개방시켜 놓았기 때문에, 카시안은 반(半) 펠라기우스주의의 기초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336)
-
반(半) 펠라기우스 논쟁... 529년 오렌지 노회에서 최종 종결... 보편교회 감독들은 반(半) 펠라기우스주의의 핵심 사항을 정죄했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했던 은총의 필요성과 충분성을 인준했으며, 예정론을 악하거나 나쁜 것으로 정죄했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의로움이나 어떤 선함은 그들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라는 믿음을 요구했다. (337)
-
이제부터 정통 가톨릭 신학은 하나님의 은혜만이 인간의 어떤 의로움의 유일한 근거이고 원인이며 인간은 은총의 도움 없이는 어떠한 선행이나 구원에 합당한 공로를 쌓을 수 없다는 사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오렌지 노회가 은총과 협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계속해서 은총의 증거로써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공적주의를 강조하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일종의 신-인협동론, 즉 자유의지는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는 은총과 협력해야 한다는 사상을 선호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337)
-
비록 반(半) 펠라기우스주의는 529년 이후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그것은 이미 서방교회 영성의 관습으로 자리잡았고 분명히 대중들의 신앙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중세기 내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많은 수도사들과 성직자들은 비록 교회가 이론적으로는 그것을 반대했지만 일종의 반(半) 펠라기우스를 실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인 노력과 영적 실천의 큰 의무가 평신도들에게 부과되었는데, 그것은 은총이 그들의 삶 속에서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337)
-
어떤 의미에서 고해성사는 반(半) 펠라기우스적이었다... 인간의 결정과 노력은 하나님의 선행되는 은혜 없이는 불가능한 기계적인 원인들에 불과한 것뿐이다. 하나님의 선행되는 은혜는 인간의 결정과 노력보다 앞서는 것이고 그 결정과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원인이다... 아마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을 성싶다. (337)
# 교황 그레고리우스 대제
-
그레고리우스 1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초를 놓은 인물... 로마 가톨릭 전통 형성에 기여한 4명 중 한 사람... 밀라노의 암부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 (338)
-
아우구스티누스의 ‘단독사역론’과 존 카시안의 ‘신-인협동론’을 혼합한 형태의 구원론을 창안... (339)
# 그레고리우스의 구원론
-
존 카시안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접근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 대한 그레고리우스의 해석과 적용은 철저하게 신-인 협동론적이다. (340)
-
그레고리우스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철저한 회개를 의미한다. 철저한 회개란... 자기 희생의 참회적인 행동, 영적 삶을 방해하는 육체적인 쾌락의 철저한 자기 부정, 교회에서 베푸는 성례전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과 같은 사랑의 행동들을 말한다. (344)
-
완벽한 참회를 바라고 용서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수도원에 들어가야 한다. (342)
-
루터가 은총의 하나님을 찾고자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원에 가담했을 때, 그가 배웠던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 대한 그레고리우스의 해석이었다... 그는 그레고리우스의 완벽한 참회 노력을 중단하였고 은총 안에서 평온함을 찾았다... 대부분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그레고리우스의 구원론을 반대한 반응이었다. (342-343)
-
동방측 교회는 그레고리우스의 신-인 협동론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방측 교회는 동방교회 감독들과 콘스탄티노플 총대감독보다 로마 감독이 더 우월하다는 그의 주장을 반대했다. (343)
'[기타 자료실] > [도서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20장 : 대분열 : 하나의 전통이 두 개의 전통으로 나누어지다. (0) | 2021.02.26 |
---|---|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19장 : 동방측 교회가 동방정교회가 되다 (0) | 2021.02.26 |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17장 :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타락 (0) | 2021.02.26 |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두 교회 이야기 : 동방과 서방으로 분열된 거대한 전통 (0) | 2021.02.26 |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4부] 제16장 : 계속된 갈등의 여파 (0) | 2021.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