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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7부] 제27장 : 로마와 캔터베리의 분리와 병행

by [수호천사]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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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

  • 헨리 8(1491-1547)의 재혼... 로마 가톨릭의 교회법에 금지... 토마스 크랜머가 1533년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됨... 크랜머는 헨리의 이혼과 결혼을 정당화해줌... 1534년 왕은 캔터베리의 대주교와 함께 자신을 영국 가톨릭 교회의 최고의 머리로 선언하고, 자신의 수장권을 인정하지 않는 로마 가톨릭고 개신교도들을 화형으로 다스렸다. (510)

  • 헨리의 아들 에드워드 6세는 아홉 살에 뒤를 이었지만 1553년까지밖에 살지 못하였다... 개신교 교회로 변해감... (510-511)

  • 가톨릭신도 메리가 왕좌에 오름(1553)... “피의 메리에 의해 가톨릭으로 되돌아감... 개신교 지도자들의 망명... (511)

  • 엘리자베스 1... 타협적 태도를 취함... “엘리자베스의 조정” (511)

  • 스코틀랜드 왕국이 1560년경 개혁자 존 녹스의 지도 아래 국가 종교로서 개신교의 개혁주의적 해석, 즉 칼뱅주의를 채택... (512)

  • 리처드 후커(1554-1600)... 개혁파 출신이었지만 가톨릭에 공감... (512)

  • 월터 트레버스(1548-1635)... 영국국교회주의와 엘리자베스의 정착에 열렬한 청교도적 비판자... (513)

  • 트레버스와 후커의 갈등... (513)

 

# 가톨릭 개혁의 역사적인 배경

  • 16세기의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타락하여 가는 교회에 대하여 넌더리가 날 정도로 혐오하였다. (514)

  • 15441111일에 교황 바울 3세가 제19회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15453월 초에 트렌트에서 모일 것을 반포... 장소의 결정은 교황과 황제 찰스 5세의 절충안... 황제는 이 공의회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화해를 이루어 재결합된 기독교 세계를 희망... 교황은 개신교가 이단이고 로마 교회가 유일한 참 교회로 표명되기를 원하였다. (514)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1414-1418)는 제16회 에큐메니컬 공의회로 간주되고 있다. (514)

  • 플로렌스 공의회(1438-1445)... 17회 공의회... 잠깐 동안 동방 정교와 서방측 교회 사이의 재결합이 이루어졌었다. (515)

  • 5회 라테란 공의회(1512-1517)... 18회 공의회... (515)

  • 트렌트 공의회는 개신교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교황 피우스 4세에 의하여 끝이 났다... 기독교 세계의 재결합은 이루지 못한 채 양측을 좀더 멀리 분리시키고 말았다... 로마 가톨릭주의를 강하게 만들어, 가톨릭이 새로운 활력과 다시 소생하는 기세를 얻게 하였다. (515)

 

# 영국 종교개혁의 아버지, 토마스 크랜머

  • 그는 그의 교회에 성경, 성경적 설교, 요리문답, 기도서 그리고 신앙고백서를 제공하였다. 그가 이런 것들을 교의적인 논문 형식으로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당시 그가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있었던 대부분의 개혁들은 신학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517)

  • 영어성경을 왕국의 교회에 도입하였다... 성경은 개혁주의 신앙의 기초였다... 한편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 모든 전통은 높이 평가하였으며, 가끔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권위 있는 교부들에게 호소하였다. (517)

  • 칭의에 의한 구원을 주장... 그러면서도 선한 행위와 성결한 생활로서의 성화를 강조... 야고보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 (518)

  • 성직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과 양을 치는 일꾼으로서 회중을 먹이고 섬기며, 행정가로서 세례와 성찬식을 시행하도록 교회에 의하여 임명된 사람이었다. (518)

  • 크랜머에 의하면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서 중재와 죄사함 그리고 은혜를 나눠주시는 일을 하시는 우리의 참된 성직자이시다. (519)

 

# 성공회의 건축가, 리처드 후커

  • 성공회의 신학적 설계자... 자연신학을 포함하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구원(신인협동론) 과정에서 그것의 참여를 강조한다. 유럽 개신교가 수행한 종교개혁의 기본적인 동기와는 반대로 중세 가톨릭의 교리와 관례에는 빠지지 않으면서도 가톨릭의 전통주의로 매우 기울었던 사람이다. (520)

  • 성경의 절대 권위오직 은혜와 믿음을 동의하였으나 만인사제설을 무시하였다. (520)

  • 후커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은혜의 도움을 입고 은혜와 협력하여 은혜에 이르지 못할 만큼 타락과 원죄에 의하여 그렇게 손상을 입지 않았다. 최상의 이성과 자유의지는 하나님과 구원의 참된 지식을 위한 준비이다. 그리고 신적 계시와 구원의 은혜가 나타날 때, 인간의 본성은 재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고양된다. 이것은 특별계시를 제외하고, 자연의 질서를 관찰하는 타고난 인간의 저인이 하나님과 그의 은혜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21)

  • 죄사함과 전가되는 의(법정적인 칭의)에 관한 단언으로서 개신교 교회의 구원론을 우선적으로 가르치기는 했지만, 후커는 또한 인간의 본성이 성례를 통하여 점차적으로 신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과정적인 구원을 묘사하는 경향을 가졌다. (522)

  • 후커는 성례가 사람을 하나님과 연합시키며, 진실로 거룩한 불멸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는 고전적인 정통 가톨릭의 신앙을 수용하였다. (522)

  • 교회 정치에 관한 후커의 견해는 신자의 보편적인 사제직을 겉으로는 부인하지 않았으나, 암암리에 그것을 훼손하고 있었다. (523)

  • 39개 조항의 종교규범은 세계적인 영국 국교회주의의 공식적인 교리적 고백을 나타낸다. (524)

 

# 가톨릭 종교개혁의 보석, 트렌트 공의회

  • 트렌트 공의회는 교의를 확정하고, 많은 개신교파의 이단들에 대하여 교회를 단합시키는 대단한 성취였다. (525)

  • 트렌트 공의회는 가톨릭이 최종 권위를 통해 반드시 믿어야 할 것을 규정하였다. (524)

  • 1) 성경과 전통에 관한 권위... 믿을만한 성경으로서 불가타 성경(소위 외경을 포함한 성경)을 확정하였고 모교회(로마)에 성경의 의미에 대한 최종적 판단자의 권위를 부여하였다. (526)

  • 개신교의 칭의 교리에 대응하여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의 칭의 교리를 위해 세례 베푸는 것에 의하여 받는 의롭다 함을 로마 가톨릭의 표준교의로 정하였다... 칭의와 성화를 구원이라는 동전의 양면으로 간주하고 칭의와 성화의 일치성을 확인하였다... 사실상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독점사역론을 거부... (526-527)

  • 트렌트 공의회는 분명히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얻는 구원을 부인하였으며, 칭의를 인간 의지의 협력과 공로를 통한 선한 행위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한 과정으로 만들었다. (528)

  • 트렌트 공의회의 만인사제설에 관한 거부는 노골적이었다... (528-529)

  • 트렌트 공의회는 연옥과 화체설, 그리고 면죄부에 관한 가톨릭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확인... (529)

  • 21회 에큐메니컬 공의회로 알려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3-1965)에서 개신교들을 로마 가톨릭에 의하여 분리된 형제들이라 부르는 우호적인 회합이 있었다. (529)

  • 트렌트 공의회와 거기에서 예상된 결의들과 법규들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의 권위주의적 개신교 일부 단체들은 그들의 정규 교리고백서를 세상에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529)

  • 종교개혁 시대의 말기에 기독교 세계가 분할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분열되었다.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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