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틸리히 신학 되새김』
노트 33 : 인간적 영과 신적 영의 관계
엑스터시와 합리성
영 혹은 성령이란 능력과 의미가 통일된 상태에서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 경험의 한계 안에서 볼 때, 이런 독특한 영 체험은 오직 사람에게서만 가능하다. (357)
하나님의 영의 현존은 사람의 영혼으로 하여금 그 한계를 초월하게 하지만, 사람이 지닌 이성의 합리적 구조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성경이 증언하는 진정한 엑스터시는 통전된 인간 자아의 중심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357)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인간의 영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강요할 수 없다... 유한은 무한을 강요할 수 없다. (358)
개신교의 견해에 따르면 성령은 언제나 철저히 인격적 주체자이시며, 결코 사제의 성례전 예전 집행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은혜가 오가는 초자연적 물질 같은 성격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례전에 있어서도 말씀이 함께해야 한다. 신앙과 사랑은 중심 잡힌 인격적 사람의 심령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영의 현존이 일으키는 결과적 영향이라고 개신교는 본다. (360)
약물중독에 의한 것이나 광신적이고 열광적인 신앙에 의한 황홀경 체험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인격적 책임성, 문화적 합리성, 영적 창조성 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361)
진정한 기도란 주체-객체 구조가 극복되는 역설적 황홀 상태에서 일어난다. 진지한 기도란 연약한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서 말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하나님은 기도자의 파트너가 되고 ‘나와 당신’ 관계의 구조 안으로 스스로 들어오신다. 그러나 매우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동시에 언제나 주체이시며 단순한 객체가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는 그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다.” (362)
틸리히는 종교적 황홀 경험, 특히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는 황홀 경험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심리적 이상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 경험은 궁극적인 것에 의해 인간 존재가 사로잡힘을 받을 때, 즉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간의 영혼이 압도당하고 사로잡힘을 받을 때 경험하는 종교체험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363)
틸리히... 황홀경 상태에서 인간 자아의 주체성이 몰수되거나 파괴되거나 혼란과 분열 상태에 빠진다면, 그것은 성령에 의해 일어난 황홀경이 아니라 ‘악령에 사로잡힌 상태’이며,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증언하는 경우라고 했다. 이 점은 틸리히가 그의 계시론에서 말한 “계시는 이성을 파괴하지 않는다”라는 명제와 통한다. (363)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에 붙잡힘을 받은 인간의 영혼은 더욱 예민한 감수성과 일체감을 가지고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동병상련하며 그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참여하게 된다. (364)
틸리히... 바울의 신학은 ‘율법과 복음’이라는 구조로 보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 체험’이라는 성령론적 신학으로 보아야 한다... (364)
올바른 성령 운동은 세 가지 위험에 늘 직면한다... 1)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직 질서와 교권주의가 보여주었듯이 성령을 교권과 직제 아래 묶어두려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성령 운동이 가져올 수 있는 무질서와 혼란, 교회의 분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개신교 정통주의에서 흔히 발생... 성령의 자유하신 역사를 교리 체계와 도덕률로 제어하려고 한다. 그 결과 개신교 신학의 역사는 언제나 신비주의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역동적 영(프뉴마)를 질서 있는 말씀(로고스)에 종속시키려는 잘못을 저질러왔다... 3) 성령의 은사를 받은 지도자가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영적 휴브리스에 빠질 수 있다... (365)
건전한 신학적 지성이 동반되지 않은 한국 교계의 성령 운동이 종국에는 파탄에 이르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366)
기도는 엄청난 사건으로, 하나님의 허락이고 초청이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그리고 우리 위에서 기도를 경청하시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서, 우리 존재의 근저에서 기도를 가능케 하시는 분이다.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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