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1』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머리말 : 자위와 자학을 넘어서
근대사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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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겪은 시련과 고통이 밑거름이 돼 오늘의 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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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도 그렇지만 특히 일제강점기에 겪은 우리의 시련과 고통은 가끔 혈압을 오르게 할 만큼 분노와 비애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나는 독자들께 요청드린 자세를 확실하게 갖춘 덕분에 그런 분노와 비애마저, 오늘에 감사드리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자신감을 갖는 데에 도움이 되게끔 소화해낼 수 있었다. (5-6)
전문화ㆍ세분화에서 종합화ㆍ총체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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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 연구에만 몰두하는 학자들의 학문성과 학구열엔 경의를 표하면서도 일반 학생과 대중을 위한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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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가 역설한 ‘익은 과일 따기’의 효능 (7)
역사의 현재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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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비트가 『메가트렌드』(1982)라는 책으로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그에게 “나는 당신이 책에서 말한 것들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조각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주었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나이스비트는 『마인드 세트』(2006)라는 책에서 그런 평가에 대해 “‘익은 과일 따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라면서 “문제는 무엇을 따서 어디에 놓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여유를 보였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연관지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엮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7-8)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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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카(E. H. Carr)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과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그 상호작용ㆍ대화의 성격과 질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화’보다는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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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단순명쾌할 수 없으며 매우 복잡하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재확인해보자는 뜻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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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사건마다 각기 다른 여러 전문가들의 주장을 감상하면서 “아, 똑같은 사안을 이렇게까지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하는 놀라움과 더불어 재미를 만끽해 보자는 것이다. (11)
역사 서술 시각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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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주영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일제시대의 상류층을 뺀 상태에서 사실들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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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혐의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빼다 보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애국계몽운동과 관련하여 모든 교과서가 대한자강회를 언급하고 있지만 윤치호 등의 이름을 빼다 보니 누구에 의해 운영되던 단체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 되고 있다. …… 민족주의와 민중주의의 명문, 다시 말해 ‘민족 대 반민족’, ‘엘리트 대 민중’의 대결 구도에 대한 집착은 ‘그 시대의 엘리트층’에 끼지 못하는 위정척사파 유학자들이나, 또는 민중주의자나 사회주의자와 같은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게 되는 것이다.” (12-13)
도식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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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開化)란 본래 『주역』에 나오는 ‘개물성무(開物成務) 화민성속(化民成俗)’에서 연유한 것으로, 모든 사물의 지극한 곳까지 궁구(窮究), 경영하여 일신(日新)하고 또 일신하여 새로운 것으로 백성을 변하게 하여 풍속을 이룬다는 뜻이다. 이런 개념이 조선왕조 말기의 위기상황에 적용돼 국가적 근대화ㆍ변혁ㆍ진보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개화’라는 용어는 영어 ‘civilization’을 일본에서 번역한 것으로서 서구중심적인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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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론’과 ‘수구론’의 대립... 강상규는 “당시의 지식인ㆍ위정자들의 사고를 개화 혹은 수구의 어느 한쪽에 끼워 넣으려는 것은 당시 조선의 정치지형, 그리고 현실 정치의 역학관계 및 문맥을 이해하는 데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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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각에 입각하게 되면 동요하고 있던 시대를 살았던 당대인들의 정치적 고뇌와 선택의 의미가 생동감있게 느껴지지 어렵다. 19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사고의 경직성을 탓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가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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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주의를 넘어서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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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건 우리의 저력이 무섭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발상의 전환을 해보길 권하는 게 옳으리라. (15)
식민사관과 안티 식민사관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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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일제의 식민사관과 그에 따른 역사 기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 그 대표적 학자는 이태진이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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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을 넘어서는 건 절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일에 집착하다가 ‘안티 식민사관’의 지배를 받는 것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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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은 “계급사회에서 보이는 보편적 현상을 한국 사회의 특수성으로 부각시켜 자체 발전의 불가능함을 역설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보편적 현상’이라 함은 주로 상층 지배계급의 부패와 무능이다. 그러나 식민사관으로 오인받지 않기 위해 조선 상층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거나 그들을 미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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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은 “일제강점하 양반문화에 대한 매도는 거의 습관화된 담론이었다. 양반의 잘못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사실이 되었다. 이런 담론은 계속될수록 조선총독부의 ‘시정개선’ 선전효과가 생기게 하고 조선인의 복종심을 더 키울 수 있는 것이었다”고 개탄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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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은 “박은식 같은 이조차 이제는 조선왕조시대의 유교문화를 허위의 문화로 규정하면서 그것에 의한 조선왕조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신랄히 비판하였다. 이런 회오(悔悟)에 찬 비판은 병탄의 현실 앞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하나의 자비심(自卑心)으로서 일인들의 당파성론이 침식하기 좋은 온상이 될 뿐이었다”고 했다. (17)
역사의 명암(明暗)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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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암(明暗) 이론’이야말로 ‘식민사관’과 ‘안티 식민사관’을 모두 넘어서는 제3의 길이라 믿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명암의 양면을 다 보고 끌어안자는 뜻이다. 축복이 저주가 되고 저주가 축복이 되는 역사의 문법 위에 바로 서자는 뜻이기도 하다.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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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희는 조선 양반사회의 명암 또는 축복과 저주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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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사회의 출현으로 한때 국가체제의 건전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보편적 유교문화와 전통문화의 꽃을 함께 피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반대로 양반사회의 존재 그 자체가 국가권력을 쇠퇴시키고 개인의 창의력을 말살하며 다가올 새로운 시대를 외면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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