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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한국 근대사 산책 1] 제3장 : 대원군의 척화투쟁 (02) 제너럴셔먼호 사건

by [수호천사]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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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1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제3장] 대원군의 척화투쟁

02. 제너럴셔면호 사건

 

제너럴셔먼호는 무장 해적선

  • 조선은 전통적으로 멀리서 오는 사람에게 되도록 너그럽게 대한다는 이른바 유원지의(柔遠之義) 정책을 쓰고 있었다. 미국의 포경선 투부라더스호(철종 3)와 미국상선 서프라이즈호(고종 3)가 잇따라 표류됐지만 모두 무사히 송환된 것도 바로 그런 정책 때문이었다. (100)

  • 18668-9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 ‘무장 해적선’... 김용구는 이것을 이른바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미국의 한 상성이 저지른 해적 행위였다고 평가했다. (101)

  • 셔먼호는 철수하는 대가로 많은 미곡ㆍ금ㆍ은ㆍ인삼을 요구하는 등의 난동을 부리다가 92(음력 724) 현지 관민들의 화공을 받고 침몰했으며 선원들도 모두 살해당했다. 모두 19명이었으며 조선측 사상자는 13명이었다. 나중에 미국 측도 셔먼호 선원들이 모두 살해된 이유가 그들이 조선인들에게 난폭하게 행동한 데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1)

 

영국인 선교사 토머스

  • 셔먼호의 통역을 맡은 영국인 목사 토머스(Robert J. Thomas, 1839-1866)는 조선군의 화공을 받기 전 대동강 주변 주민들에게 500여 권의 성경을 배포하는 등 전도를 했다. 그는 1년 전인 18659월에도 황해도 소래(松川, 솔내) 근처에서 2개월 반을 머물면서 한문으로 쓴 쪽복음 서책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 적이 있었다. 그는 런던선교회가 조선 선교를 위험하다는 이유로 허락을 하지 않자 이번엔 미국 상선을 타고 온 것이었다. (101)

  • 오문환... “그동안 토머스는 두 무릎을 모래사장에 꿇고 머리를 숙여 땅에 댄 후 얼마동안 최후의 기도를 올리고 다시 일어나서 군졸에게 성경 받기를 권하였으나 그 군졸은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도 사실이려니와 환경이 그것을 허락지 않는지라 마침내 칼을 그의 가슴에 대어 하나님의 충복 토머스 선교사의 귀여운 생명을 빼앗고 말았다.” (102)

  • 김명호... 셔먼호 일당 중 조선어 통역으로 승선해 우두머리처럼 행세한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의 토머스 목사는 종래 기독교계로부터 순교자로 예찬돼왔지만 토머스의 피살은 선교 이유보다는 당시 평양 군민들을 살상한 침략자들의 괴수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02)

  • 토머스를 죽이는 데 앞장선 박춘권은 죄책감을 느끼고 훗날 천주교로 개종해 전도사로 활약했다. (102)

 

박규수의 활약

  • 18664월초 평안감사로 부임한 박규수... 셔먼호의 격퇴로 양이공신(攘夷功臣)으로 칭송받았으며 그후 형조판서와 한성판윤을 거쳐 1874년 우의정까지 올랐다... 열강의 무력적 침략에 맞서 조선을 보호하고자 한 것이었을뿐 그는 개국통상론으로 기울어져 있는 인물... (102)

  • 제너럴셔먼호의 선체(길이 55미터 너비 15비터, 높이 9미터)와 엔진을 끌어올려 서울로 보내서 해국도지의 설명대로 증기선의 실험을 하도록 대원군에게 권고했다... 조선정감의 기록... 김원보는 신빙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103)

  • 해국도지... 중국의 위원(魏源, 웨이위안)이 아편전쟁의 충격을 받고 쓴 해국도지는 서양열강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문제의식으로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지리와 역사ㆍ국방ㆍ병기와 전술을 설명한 책... 1852년에 100권에 달하는 백과사전식의 방대한 분량... “19세기 전반 조선의 세계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저술”... 박규수는 평소 젊은이들에게 해국도지를 읽어 해외사정을 알도록 권유하곤 했다. (103)

  • 김명호... “박규수의 활약이 경시되어온 데는 대원군 집권이므로 대원군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따랐으리라는 선입견이나 김일성의 증조가 셔먼호 격침을 진두지휘했다는 주장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103)

 

김일성 증조가 셔먼호 격침을 지휘했나?

  •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는 미국 해적선 샤만호를 소멸하기 위한 창발적인 전법을 발기하고 몸소 투쟁의 앞장에 선 사람은 김일성 동지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 선생님이었다”... “김응우 선생은 실로 우리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렸으며 이 싸움 마당에 떨쳐나선 인민들은 무비의 영웅성과 애국적 헌신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104)

  • 김원모... “김일성 우상화 작업... 당시 평양 군민들은 결코 문제의 배가 미국 상선인 줄 몰랐다.” (104)

  • 김명호에 따르면 박규수는 무장한 철제 상선인 셔먼호에 비해 조선측의 무력이 열세에 있는 것을 깨달은 데다 해국도지영향을 받아 서양과의 분쟁에서 개전의 구실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셔먼호의 도발이 계속되자 이를 섬멸키로 하고 화공작전을 감행했다... 대원군과 박규수는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며 미국과의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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