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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한국 근대사 산책 1] 제3장 : 대원군의 척화투쟁 (04) 보부상의 정치조직화

by [수호천사]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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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1]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제3장] 대원군의 척화투쟁

04. 보부상의 정치조직화

 

군사력의 무능을 보완한 보부상

  • 보부상의 정치조직화는 병인양요 때부터 시작... 대원군... (114)

  • 보부상단은 대원군의 부름에 적극 응해 프랑스군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의병으로 동원된 보부상은 주로 양곡수송을 담당했는데 양요가 종결되고 정부는 보부상 우두머리들을 포상했으며 유공자 명단에도 올려주었다. (114-115)

  • 들고다니는 보상... 지고다니는 부상... 조선 건국에 일조... 병자호란 때 왕을 구함... 엄격한 내부규율을 지키면서 사회가 용인하는 질서 속으로 편입하려는 강한 욕망... 개화기 내내 관의 친정부ㆍ친권력 세력으로 나서 농민이나 민중에 맞서 싸웠던 것도 그런 지배계급 지향성의 발로이기도 했다. (115)

 

보부상의 정보 수집ㆍ전파 기능

  • 보부상은 정보를 수집하고 전파하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난 집단이었다. (115)

  • 1948년 최초로 보부상에 관한 연구서 조선보부상고를 쓴 유자후... (115-117)

  • 박천홍... “봉건시대에 보부상은 단순한 장사꾼의 범위를 넘어섰다. 그들은 걸어다니는 정보원이나 다름 없었다... 보상 중에는 여자도 많았는데 조선시대 관습상 여자 행상은 허락 없이도 남의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묵인되었다.” (117)

 

지방장시의 커뮤니케이션 기능

  • 박천홍... “중앙정부는 왕의 윤음ㆍ정령 등 정부 시책을 반포, 홍보하는 장소로 장시를 이용했다... 장시는 백성들의 동태를 관찰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장시는 집권층에 의해 처벌하는 권력의 상징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장시에서 반역자를 효수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민의 저항을 봉쇄하려는 상징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장시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중들에게도 중요한 커뮤니케이셔 공간이었다... 괘서나 격서는 장시나 포구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길목이나 교통의 요지에 부착되는 일종의 대자보로서 인심을 선동해 집권층에 간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117-118)

  • 보부상이 정치조직화 되어 이후 주요 사건 때마다 등장해 활약하는 것은 권력의 비호를 필요로 하는 그들의 업무적 특성과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중요성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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