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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한국사]

[백제 12대 국왕] 계왕(契王, 344~346)

by [수호천사]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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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2대 국왕] 계왕(契王, 344~346)

 

  • 재위 : 344년 10월 ~ 346년 9월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346년

 

계왕(契王)의 성은 부여(扶餘) 이름 계(), 분서왕의 장남이다. 분서왕의 죽었을 때 나이가 어렸으므로 사반왕의 동생인 비류왕이 왕위에 올랐으며, 비류왕이 사망한 후에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사망하였으며 비류왕의 아들 근초고왕이 즉위하였다. 이 왕 이후로 고이왕통이 끊겼다. 즉위 기사와 사망 기사 밖에 없으므로 재위 기간 내내 권력이 불안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345년]

 

2, 동명묘에서 제사를 지냈다.


2년 동안 집권했는데 아무런 기록이 없는 것도 계왕을 대표로 한 고이왕계와 비류왕 쪽 초고왕계 왕족들 간의 권력 투쟁이 집권 기간 내내 벌어졌고, 권력 투쟁에 대한 기록이 사라졌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사실 비류왕도 40년간 집권했는데 평화 정책을 계속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계속해서 권력 투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옛 역사서에서는 자연 재해를 내부 반란이나 권력 투쟁을 은폐하는 우회 서술로 쓰는 경우도 많았는데 비류왕 후반기에는 이런 자연 재해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비류왕도 정황상 깨끗한 최후를 맞은 것은 아니었기에 계왕이 시해되었을 일말의 가능성을 본다면 계왕의 사망 이후 고이왕계가 완전히 백제 역사에서 퇴출되는 것은 근초고왕이 집권 후 고이왕계를 전면적으로 제거해버렸기 때문일 가능성도 높다.


[대륙백제설과 계왕]

 

백제의 제8대 왕인 고이왕은 중국 산동 반도로 진출하여 대륙백제를 건설한다. 고이왕이 이곳에 진출한 것은 평소에 국력에 대한 야망이 컸을 뿐더러 주변에 있는 중국 여러 나라를 견제함은 물론 중국 국가간의 무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반도의 백제에서는 고이왕계의 혈통과 귀족들 간의 불화가 있었는데 고이왕이 사망하자 유력 귀족 중 하나인 비류계가 이를 계기로 왕위를 찬탈한다.

 

위협을 느낀 고이왕계는 대륙백제에 건너가 군주가 되어 세력을 키워가고 한반도의 백제에게서 왕위를 탈환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다. 그렇게 대를 이어 가다가 한반도의 백제에서 비류왕이 사망하자 그의 자식이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반도의 백제를 점령하고 왕위를 되찾아 정식으로 즉위하는 것이 계왕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신변에 위협을 느꼈던 비류계 혈통 중 하나였던 근초고왕 또한 왕위에 올라 이를 계기로 계왕과의 사이에서 왕위 쟁탈전을 벌였고 결국에는 근초고왕이 승리하여 계왕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록이 불분명하며 짧은 것, 이름을 모르는 것, 재위 기간의 햇수를 따져봐도 겨우 2년인 것, 근초고왕의 기록이 재위 20년 이후부터 기록된 것도 후대의 왕족들이 고이왕의 혈통을 학살하고 기록을 지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가족관계]

 

  • 부친 : 분서왕(汾西王)
  • 모친 : 미상
  • 배우자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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