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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한국사]

[백제 11대 국왕] 비류왕(比流王, 304~344)

by [수호천사]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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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1대 국왕] 비류왕(比流王, 304~344)

 

  • 재위 : 304년 10월 ~ 344년 10월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344년 10월

 

비류왕(比流王)삼국사기백제본기에 따르면, 비류왕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자 사반왕의 동생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다른 줄에 의하면 그는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8대 고이왕의 손자 분서왕이 죽자 그의 아들 계()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 하여 비류가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그는 활을 잘 쏘았으며 성품이 너그러웠다고 한다.

 

비류왕과 비류왕의 형 사반왕 사이에는 7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나므로 형제 여부에 관하여 이견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아버지로 지목하는 구수왕과 형으로 지목한 사반왕이 죽은 뒤 70년 만에 즉위하여 40년을 통치한다. 구수왕이 234년에 죽었기 때문에 구수왕이 죽기 직전에 비류왕이 태어났다 쳐도 337년에 사망했으니 대략 110세에 죽은 셈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계보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사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초기 왕들의 수명은 비상식적으로 길어서 정확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많으며 비류왕 역시 그 중에 1명이다. 비류왕은 구수왕의 아들이 아닌 후손일 거란 가설도 있다.

 

일단 여기에 근거하여 비류왕-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으로 이어지는 왕통을 초고왕계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나오는 추정은 비류왕의 즉위가 백제 왕실 지파(枝派)들 사이의 세력 교체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것이며, 비류왕의 혈족 관계와 재위년 사이의 모순도 그와 같은 왕실 지파 간의 세력 교체에 대한 역사 서술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308년]

 

봄 정월 초하루 병자 : 일식이 발생했다.

 

[312년]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따르면, 312년 음력 2월 신하를 보내 백성들의 질병과 고통을 살피고, 홀아비, 과부, 고아, 그리고 자식 없이 외롭게 지내는 노인들을 도와주었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자에게는 곡식을 3섬씩 나누어주었다. 병관좌평(兵官佐平)에 해구(解仇)를 등용하였다.

 

[316년]

 

: 가뭄이 발생했다.

 

[321년]

 

정월에는 왕의 서제(庶弟) 우복(優福)을 내신좌평(內臣佐平)으로 삼았다. 그러나 우복이 327년 북한산성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켜 왕은 이를 토벌하였다.

가을 음력 7월에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났다. 나라 남쪽에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다.

 

[327년]

 

내신좌평 우복이 327년 북한산성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켜 왕은 이를 토벌하였다.

가을 음력 7: 붉은 까마귀와 같은 구름이 해를 끼고 있었다.

 

[331년]

 

, 여름 : 가뭄이 크게 들어 풀과 나무가 마르고 강물이 말랐다. 음력 7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이 해에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333년]

 

여름 음력 5: 별이 떨어졌다.

진의(眞義)를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335년]

 

겨울 음력 10월 초하루 을미 : 일식이 발생했다.

 

[337년]

 

봄 음력 2월에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왔으며 극진히 대접하였다.

 

[336년]

 

봄 정월 신사 : 혜성(彗星)이 별자리 규()에 나타났다.

 

[344년]

 

겨울 음력 10월 비류왕이 붕어하자 계()가 왕위를 물려받아 12대 계왕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비류왕의 즉위는 백제 왕실이 초고왕계로 변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비류왕 사후 계왕이 즉위하면서 잠시 고이왕계로 복귀하였으나 계왕이 2년만에 사망하고 근초고왕이 즉위하면서 초고왕계 왕실이 확립되었다고 본다.


[가족관계]

 

  • 부왕 또는 선조 : 구수왕
  • 형 또는 선조 : 사반왕
  • 이복 동생 : 부여우복
  • 왕비 : 왕비 해씨(解氏)
    장남 : ?
  • 후궁 : 왕비 진씨(眞氏)
    차남 : 근초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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