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20대 국왕] 비유왕(毗有王, 427~455)
- 재위 : 427년 ~ 455년 9월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455년 9월
비유왕(毗有王)의 휘는 비(毗)이고, 송서 이만전 백제조에서는 여비(餘毗)로 나와있다. 용모가 가냘프고 언변이 좋았다고 한다.
비유왕은 구이신왕의 장남 혹은 서자이나, 가계가 다소 불분명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구이신왕의 장남이라 하고, 삼국사기에는 두가지 설이 등장한다. 구이신왕의 장남이라는 설과 전지왕의 서자라는 설이 있지만, 전지왕 서자 설은 분명치 않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구이신왕의 아들로 등장한다. 왜의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비유왕을 시조로 받드는 성씨로는 불파련(不破連)씨가 있다 한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비유왕은 구이신왕의 손자라는 설도 있어, 구이신왕의 아들 부여주가 비유왕의 아버지라 한다. 왜에서는 그를 비유왕 또는 곤유왕, 피류왕으로도 부른다. 전지왕의 후손이라는 것은 확실하나, 가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다. 어머니의 이름과 집안, 행적 등은 미상이다.
[427년]
구이신왕이 반란중 죽자 왕위에 올랐다.
해충이 섭정하였다.
[428년]
친정을 시작하였다.
[429년]
남조의 송나라에 조공하였고, 좌평 부여신이 죽자 전지왕 때의 외척이었던 해(解)씨 가문의 해수(解須)를 새로운 좌평으로 임명했다.
[430년] 비유왕 4년
송나라가 전지왕에게 내렸던 작위를 계승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사지절 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使持節 都督 百濟諸軍事 鎭東大將軍 百濟王)으로 책봉이 되었다.
[433년] 비유왕 7년
신라에 사자를 보내 화친을 요청해, 선물의 교환을 통해서 신라의 수호가 성립하여, 553년까지 동맹 관계가 이어지게 되었다.
[455년]
454년부터 아들 경사가 대리청정을 하였다. 중국 남조, 송, 신라, 왜국의 협조 체제를 가지고, 북조, 북위와 연결한 고구려에 반항하는 태세로 만들었지만, 455년 9월에 사망했다.
비유왕은 반란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삼국사기》에는 비유왕 대의 반란 기사가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으나, 왕이 죽기 직전에 흑룡이 나타났다는 기사가 있는 등 왕의 죽음을 암시하는 부분들이 있다.
秋九月 黑龍見漢江 須臾雲霧晦冥飛去 王薨
가을 9월에 흑룡이 한강에 나타났는데 잠시 구름과 안개가 끼어 어두워지자 날아가 버렸다. 왕이 죽었다.
이 기록을 백제 내부의 정쟁에 휘말려 시해당했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고, 검은색이 북방을 뜻함에 따라 백제의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에서 암살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비유왕의 유해가 빈 들판에 가매장되었다는 도림의 언급으로 보아 매장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던 듯. 아무래도 비유왕의 승하시에 정치적으로 큰 혼란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승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자연스러운 죽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관계]
- 부친 : 구이신왕 / 전지왕 / 부여주
- 모친 ?
- 배우자 ?
- 자녀 : 개로왕ㆍ곤지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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