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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5장 : 최초의 국가와의 대결

by [수호천사] 202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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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의 이유와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59)

 

# 새로운 유대교 분파 (59)

 

  • 유대인들을 향한 기독교의 메시지는 그들의 고유한 유대성을 버려야 하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므로 더 나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60)
  • 이방인들을 향해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에 참여하라는 것. 이방인들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었으므로 신앙을 통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초대되었다. (60)
  • 로마인들과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당시의 문제가 유대인들 사이의 내분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61)

 

# 네로 시대의 박해 (63)

 

  • AD. 64618일 로마의 대화재 발생 황제는 기독교인들에게 혐의를 씌우기로 작정함. 타키투스의 기록 (64-65)
  • 로마 문화와 사회를 사랑한 타키투스와 같은 로마 시민이 볼 때 기독교 신자들은 인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었다. (66)
  • 네로의 박해 : 잔인했지만 제국의 수도에 국한 (67)

 

# 도미티안 시대의 박해 (67)

 

  • 로마의 신들과 많은 전통을 거부한 기독교인들이 도미티안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었을 것 (67)
  • 당시 로마 당국자들은 유대인과 기독교 신자들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했으므로 제국 관리들은 유대 풍습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두 박해하기 시작 (68-69)
  • 플라비우스 클레멘스와 그의 아내 플라비아 도미틸라 죄목은 무신론유대 관습” (69)
  • 소아시아에서는 이 박해 때문에 밧모 섬에 유배된 저자에 의해 요한계시록이 저술됨 로마에 대하여 부정적 태도 (69)

역사적으로 로마 시대 교회의 박해에 대해서 기독교측은 견디기 힘든 박해였다고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박해를 이겨냈다는 것이 이후 기독교의 입장에서 여러 방면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고대 역사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적의 수십만 대군을 무찔렀다고 기록하는 것처럼, 적대자가 악할수록 기독교의 순교의 역사는 빛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본 인물이 로마의 네로 황제였을 것이다. 물론 네로 황제가 전혀 박해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박해자로 몰았다는 것은 아니다. 

 

특이한 것은 당시 기독교인이 박해받을 때 죄목이 '무신론'이었다는 사실이다. 로마 황제들이 싸이코 같은 성격으로 제멋대로 기독교인을 박해한 경우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로마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이 기독교라고 판단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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