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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식]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여울, ‘손돌목’의 유래에 대하여

by [수호천사]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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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여울, ‘손돌목’의 유래에 대하여

 

손돌목은 강화도 덕진진~광성보와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여울인데, 물살이 세고 암초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손돌목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한강은 통진(通津)의 서남쪽에서 굽여져 갑곶(甲串)나루가 되고, 또 남쪽으로 마니산 뒤로 움푹 꺼진 곳으로 흐른다. 돌맥이 물속에 가로 뻗쳐서 문턱 같고, 복판이 조금 오목하게 되었는데 여기가 손돌목[孫石項]이고, 그 남쪽은 서해 큰 바다이다. 삼남지방에서 거둔 세조(稅租)를 실은 배가 손돌목 밖에 와서는 만조(晩潮)되기를 기다려서 목을 지나는데, 배를 잘 다루지 목하면 문득 돌맥에 걸려 파선하게 된다.

 

이 때문에 고려 말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손돌목을 지나지 않고 인천 앞바다에서 바로 한강으로 이어지는 운하를 만드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서울로 안전하게 나르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의 출발이다.

 

손돌목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온다.

 

고려 고종 때 몽골군이 침입해(또는 조선 인조 때 ‘이괄의 난’ 때문이라고도 한다)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때 한강에는 손돌(孫乭)이라는 뛰어난 사공이 있어 그가 임금이 탄 배의 노를 젓게 되었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다가 물살이 무척 센 곳에 이르렀다. 배가 심하게 흔들려 임금은 무척 불안했는데 손돌은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계속 배를 몰았다. 이에 임금은 그가 자신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는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고 신하들에게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이에 손돌은 임금 앞에 바가지를 하나 내놓으며 “이곳은 물살이 세니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것만 따라 물살을 저여가면 무사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임을 당했다. 손돌이 죽자 하늘에 구름이 덮이고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돌이 말한 대로 따라 해 일생은 살아날 수 있었다. 이에 임금은 뒤늦게 손돌의 억울함을 깨닫고 그를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 또 무덤가에 사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 뒤로 그가 죽은 날이 되면 꼭 심한 바람과 추위가 몰려왔다. 이에 사람들은 이날 부는 바람을 손돌풍이라고 하고, 그가 죽은 곳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꽤 그럴듯하다 보니 김포시에서는 요즘도 해마다 손돌이 죽은 날이라는 음력 1020일이 되면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하지만 손돌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좁은 목’이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 단어일 뿐이다.

 

조선 세종 때 나온 용비어천가6에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는 고려 말 우왕 때 강화도에 쳐들어오노 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왜적이 강화부에 침입하여 전함을 불질렀다. 또 착량(窄梁ㆍ손돌)에 들어가 전함 50여 척을 불사르니 바다가 대낮같이 밝았다. 죽은 사람이 1,000여명이 되었다. 만호 손광유(孫光裕)가 화살에 맞았는데 간신히 살았다. 서울이 크게 두려워했다. 착은 좁다는 뜻이다. 착량은 강화부 남쪽 30리쯤 되는 곳에 있다.

 

이 기록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착량’, 손돌은 사람이 아니라 지역 이름이다. 그리고 그 뜻은 =좁다’, ‘=에 따라 좁은 도랑(물길)’이 된다.

 

그런데 한자 착량이 우리말 손돌과 같다고 했으니 =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손’은 ‘솔다’라는 우리말 형용사의 어간 ‘솔’이 관형형으로 바뀐 것이다. 솔은 돌이 줄어 손돌이 되었다. ‘솔다라는 말은 가늘다’, ‘좁다’, ‘뾰족하다’, ‘작다등의 뜻을 갖고 있다. 이 뜻의 은 지금도 소나무, (옷의) 솔기, (바람이) 솔솔, 송곶, 오솔길 등의 단어에 흔적으르 남기고 있다. 사람의 ’[]도 여기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크다. 손은 몸통에서 가늘게 뻗어 나온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리 보면 ‘손돌’은 결국 ‘솔은 돌’, 즉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좁은 도랑’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손돌이 사람의 이름으로 둔갑한 것은 이 사람의 성씨 과 같고, ‘쇠돌이차돌이처럼 옛날 우리 이름에 많이 쓰인 글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국어학자 정재도 선생에 따르면 손돌이라는 땅 이름은 이곳 말고도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연상리와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장암동(금강 어귀)뿐 아니라 북한의 평안도 의주에도 있다. 사람 이름이 아니고 전설과도 관련이 없기 때문에 지형에 따라 이처럼 곳곳에 같은 이름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와 어원으로 찾아가는 우리 땅 이야기』, 최재용, 21세기북스, 2015년, 55-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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