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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라블레 [François Rabelais, 1494?~1553] 프랑스의 인문주의 작가

by [*수호천사*] 2025.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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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라블레 [François Rabelais, 1494?~1553]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인문주의 작가

 

  • 이름 :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
  • 필명 : 알코프티바스 나시에(Alcoftibas Nasier), 세라팽 칼로바르시(Séraphin Calobarsy)
  • 출생 : 1494년경, 프랑스 시농(Chinon)
  • 사망 : 1553
프랑수아 라블레의 초상화 [출처 : 위키백과]
 

프랑수아 라블레는 구 투렌 지방 시농 근처의 쇠이 드비니에르에서 태어난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인문주의 작가이다. 라블레는 본인 이름의 철자를 바꾸어 만든 필명인 알코프티바스 나시에(Alcoftibas Nasier)와 세라팽 칼로바르시(Séraphin Calobarsy)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반교권주의자이자 성직자, 기독교인이자 어떤 이들에게는 자유사상가로 평가받기도 하면서 동시에 의사이자 쾌활한 인간이라는 이미지 역시 가지고 있던 라블레라는 인물의 여러 측면은 가끔씩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1494년경 프랑스의 시농 근교에서 출생하다

  • 법률가이자 투렌의 부유한 지주인 앙투안 라블레의 아들로, 서프랑스의 시농 근교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경 수도원에 들어가 고전학을 공부하다

  • 1510년경에 프란체스코파ㆍ베네딕트파의 수도원에 들어가 고전학을 공부하였다.

 

1527 법학학위 취득하다

  • 푸아티에에서 1527년에 법학학위를 취득하였다.

 

1530 의학학위 취득하다

  • 몽펠리에에서 1530년에 의학학위를 취득하고 히포크라테스의 의서를 연구해 이름이 알려졌다.

 

1532 의사가 되다 / 팡타그뤼엘을 출판하다

  • 1532년 리옹 시립 병원 의사가 되었다.
  • 또한 그리스어 고전을 깊게 공부한 희랍주의자(hélleniste)이기도 했다. 신학, 법학, 의학, 고전학 등 다방면적인 학술적 배경과 유럽 곳곳을 여행한 경험은 라블레의 소설의 토대가 된다.
  • 팡타그뤼엘을 알코브리바 나지에라는 필명으로 출판하다.
  • 1532년 이후에, 작자 미상의 소설 가르강튀아 대연대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쓰게 된 팡타그뤼엘이 인기를 끌자, 가르강튀아 대연대기와는 다른 가르강튀아를 펴내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알코프리바 나지에(Alcofribas Nasier)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였다.

 

1534】 《가르강튀아를 출판하다

  • 가르강튀아를 출판하였다.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의 프리퀼이라고 할 수 있다.
  • 1534, 책이 금서가 되고 박해를 피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1545 3서의 출판을 왕에게 윤허받다

  • 1545 9 19일 라블레는 1546년 크리스티앵 베첼이 편집하고 자신의 본명을 명시한 제3서의 출판을 왕에게 윤허받는다. 소르본의 신학자들은 이 작품을 이단이라고 규탄했는데 이 비난은 제4서의 헌정사에서 언급된다.

 

1546 세 번째 책을 출간하다

  • 1546 12 31일 그의 세 번째 책(3, Tiers Livre)이 앞선 두 작품(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이 적힌 대학 금서목록에 합류했다.

 

1550 프랑스로 복귀하다

  • 1550년 프랑스로 복귀하였다.

 

1552 네 번째 책을 출간하다

  • 그의 네 번째 책(4, Quart Livre)도 금서가 된다.

 

1553 사망하다

  • 1553년 소식이 끊겼다. 이때 사망한 것이 최근 와서 확인되었다.

 

1564 사후 다섯 번째 책이 출간되다

  • 그의 사후 다섯 번째 책(5, Cinquième Livre)이 출간되었다. 이 마지막 책은 문체 등에서 그 전의 작품들과 다른 점이 많아 가짜로 의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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