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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제2부 : 제3장 - 사회운동

by [수호천사]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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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굉일,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제2부. 북간도 기독교인들의 민족운동의 실태

제3장. 사회운동

 

  • 간민자치회, 간민교육회, 간민회, 국민회 등 사회단체의 조직... 삼국전도대, 부녀회, 청년회, 기독교우회, 만국개량회와 교회의 여러 형태의 집회 및 행사... 민력양성의 민중운동이었으며 국권회복을 위한 장기적인 전력의 축적... 북간도가 국외 독립운동 기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민중들이 지도층이었던 기독교도들이 한인들을 애국주의와 신지식으로 계몽시켜 국민적 훈련과 각성을 촉구하였기 때문... (177)

 

1. 간민교육회의 조직과 국민회

 

  • 1907... 일제는 북간도 용정에 통감부 임시 간도파출소를 설치... (177)

  • 북간도 기독교계 민족주의자 김약연, 김영학, 구춘선, 강백규, 유찬희, 문치정, 김정규, 마진 등은 1907년 비밀단체인 간민자치회를 조직... 한인들의 단결과 친목, 복리증진, 사상계몽 등을 목표로 삼아 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연길도윤 공서 오록정과 협정... 한인이라도 청국에 귀화하여 국적을 가진 사람이면 토지소유권, 집조(執照)가 인정되어 한인들도 합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178)

  • 1909년 일제는 안봉선의 개축 등 4대 이권을 얻는 대신 간도 영유권을 청국에 넘겨준다는 청일간의 간도협약에 조인.. (178)

  • 1909년 김약연, 이동춘 등은 변무사 오록정의 허가를 얻어 공적인 한인들의 친목단체인 간민교육회를 조직... 조직 초부터 학교를 설립하여 한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중국인 관리들과 법적 문제가 야기되면 중재를 맡았으며 중국 관헌들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이동춘은 중국 관헌의 통역을 지닌 기독교신자로서 배일사상이 강하여 간민교육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민족운동에 전념하였다. 1911년 당시 간민교육회 회원은 120~30백명이었다. (179)

  • 190911월 일제는 용정촌에 총영사관을 개청하고 국자가, 두도구, 백초구에도 분관을 개설... 1911년 친일단체인 조선인회 조직... 조선인회가 계획대로 운영되지 않자, 일제는 간도 조선인회의 명칭을 간도 용정촌 조선인회라 개칭하였고, 1917년에는 조선인거류민회로 바꾸었다. (179-180)

  • 1911년 신해혁명... 연성자치제... 북간도의 한인들은 간민교육회의 행정조직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간민회로 발전... 1912년 가을 간민회는 북경 정부로부터 정식 허가를 얻었고, 중화민국 2(1913) 5월에는 국자가에서 간민총회를 소집하였다. (180)

  • 원세개의 독재 전제정치가 등장하면서 신해혁명은 실패로 돌아갔고 연성자치제도 철폐... 간민회는 1912년부터 1913년까지 북간도 한인사회의 대표적 자치기관으로 활동을 함... (180-181)

  • 간민회의 중요 인물인 김약연, 백옥포, 남세극, 김립, 이동춘, 마진, 구춘선 등은 모두 교인들로서 장로, 집사 및 기독교학교 교사들이었다... 31운동 후 간민회가 독립운동단체의 성격을 지닌 국민회로 개편되면서 회장에 구춘선을 선출... 국민회는 1919년 말부터 1920년 초에 걸쳐 민정에서 군정으로 방향을 바꾸어 독립군을 양성하고 군사자금을 모았으며, 무기 구입에 힘썼다. 또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및 최명록의 군무도독부군과 제휴하여 연합전선을 폈다. 1920년 가을, 국민회 소속 독립군의 중요 간부로 사령관에 최명록(최진동으로 불리기도 함), 부관에 안무, 연대장에 홍범도가 임명되었고, 소속 병력이 5백 명이나 되었으며 무기도 5백 정에 달하였다. (181)

  • 국민회는 북간도 지방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각 지방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조선독립기성회를 결성하여 북간도의 모든 독립운동을 조직화하고 조선국민보를 간행... ‘대한국민회로 개명... (183)

  • 훈춘 대한국민회조직... 국민회에 통합... 국민회는 북간도 4현에 거주하는 40만 이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넓은 기반과 많은 동포를 조직에 포섭하여 민정에 공헌한 기구... (184)

  • 북간도교회 행정조직... 3시찰회... 국민회 지방회... (184-185)

  • 국민회의 운동기관 및 계통에는 간도 용정촌 캐나다 장로파 야소교회에 속한 기독교신자들이 대부분이며, 그들은 간도 각지를 야소교 전도구역으로 하여 구역에 매구장을 배치하고 구장은 국민회 운동에 관한 불온간행물을 취급하여 기부금을 모집한다는 일제의 기록으로 볼 때에 국민회와 기독교의 관계는 분명해진다. (185)

  • 훈춘현의 국민회... “대한국민회 훈춘지회는 기독교도 황병길이 교인들과 제휴하여 건국회를 조직한 것이 이 회의 시작이며 그 후 캐나다 장로파 기독교도가 중심이 되어 회원이 규합되었다. 이들은 주로 육도구, 동구, 훈춘 평야 및 황구 부근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회장 이명순, 총무, 서윤묵, 서기 여남섭, 통신반장 나정화, 부회장 박관일, 재무 오현종, 서기 오종환, 교제과장 황병길로 그 소재지는 동구 남별리이다.” (185-186)

  • 국민회는 북간도 전역의 중요 도시에 거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단체보다 군자금을 모금하는 데 유리하였다. (186)

  • 국민회의 대표적 지도자... 김영학, 김약연, 김내범, 구춘선, 마진, 유예균, 배형식, 이태현, 김순문, 김정, 김상호, 이홍준, 정재면, 강백규, 유찬희, 서성권, 문재린, 김병흡, 강봉우, 박태환, 양하구, 이중집, 신학봉, 공원준, 홍상표 등이었다. (186)

  • 국민회 1919년 임원, 1921년 임원... (187)

  • 연결현 와룡동에 있는 청년단... (189)

  • 간민회의 전통을 계승한 국민회는 초기에는 민정에 주력하였으나 31운동을 계기로 독립군의 양성, 군사자금 모집, 무기구입 등 군정에 힘써 독립군 부대를 편성하였고, 1919년 말부터 1920년대에 걸쳐 일제 군경과의 항전에 공헌한 단체였다. (189)

 

2. 교회운동을 통한 민중운동

 

  • 민족이념이 투철하였던 북간도 교회는 민족의 구원을 정치적인 사회개혁에만 국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정치ㆍ사회 개혁에 앞서 인간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전도운동을 하였다. (189)

  • 의료선교를 통한 민중운동... 연길현 용정촌 캐나다 장로파 선교부 경영 제창병원... 1914년 캐나다 연합교회 선교사 바커 부부가 선교사업을 전개한 데서 시작... 의료선교사 민산해... 구춘선, 계봉우, 김지송을 중심으로 한 합막당교회... 제창병원은 민족운동가들의 정치적 피난처로 역할... 치외법권지대... 192010월 일군의 간도출병시에 병원장 마틴은 한인들의 학살당하 참상을 세계에 폭로하였고, 부상자를 치료해 주었다... (189-191)

  • 북간도 교회의 민중운동의 특색은 전도회에 있었다... 이동휘의 삼국전도회(1911)... 구례선 선교사의 선교수기... “여러 곳에 학교가 세워지고 기존건물이 학교로 변하고 책상이 수입되고 교재가 출판되었다. 전도회가 각지에서 개최되었다. 교회는 교인만이 모이는 곳이 아니고, 한인이면 누구든지 나왔다. 늘 보는 교인들 외에도 낯선 얼굴들이 나타낫고, 이들은 교회 가까운 동리에 사는 사람들인데 예배가 끝나면 자기네 동리에 와서도 기독교 교리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편지가 오는 경우 대개 많은 사람이 서명했었는데 어떤 때는 수백 명이 서명한 편지도 있었다. 이름마다 도장을 찍거나 무인(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우리는 이 모든 요청을 다 받아들였고 우리가 간 곳 대부분에는 교회와 학교가 세워졌다고 한 것처럼 북간도의 삼국전도회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교회의 요청에 의하여 전개되었다... 1915년 삼국전도회는 북경의 기독교회와 국자가 기독교회가 연합하여 만국개량회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회장은 중국인 전도사 장종휘... 이동휘, 정재면, 권사용, 유기연, 유찬희, 유홍윤, 최빈, 정안립... (191-192)

  • 교회는 민중운동의 일환으로 토론회를 자주 개최... 주색잡기를 금단하자는 간도 삼단동맹회는 간도 용정촌 기독여자청년회의 활동으로 교회를 중심하여 결성하였고, 매월 월례회로써 고명한 변사를 선택하여 삼단 이해에 관한 강연을 실시... 회장에 이경재, 총무에 박일문, 고문 강두화 목사... 회원 60여 명... 삼단운동을 적극적으로 계몽 선전한 임종신, 최진실 등이 활약한 기독여자청년회의 활동이 대표적... 정신태, 이의순, 우봉운이 1913년 삼국부인전도회를 조직하여 교회의 연합과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서 비롯된 것... 삼국부인전도회는 북간도 최초의 여성고등교육 기관인 명동여학교의 설립에 공헌하였으며, 명신여학교 등 여성교육기관을 생기게 하는 계기를 이룸... (193)

  • 기독청년회 운동... 북간도 사회의 개화운동과 민중운동... 그들의 관심이 사회윤리, 문화, 민족의 장래, 경제적 문제, 교육 문제, 보건 위생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민중을 계몽하는 데 있었음... 유명한 토론과와 연사로는 정사빈, 이태준, 이병하, 강덕회, 윤화수, 강두화... 토론회와 강연회... 운동경기... (193-194)

  • 교회는 연극활동을 통한 민중운동도 하였다... 19218월경 북간도 장로교파 교회에서 행한 풍자극... ‘백몽식’... 배일을 풍자... (195)

  • 교회는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에 앞장섰다. 용정청년회의 정사빈과 중국인 교사는 성인들을 중심으로 강좌를 열었다. (195)

  • 1921323, 24일자 동아일보, “북간도 용정촌교회 전도대의 활약상이라는 기사... (196)

  • 용정교회 전도대 강연 및 설교와 활동상황표 (197-198)

  • 북간도 교인들의 살아 있는 신앙은 민중들의 조국애와 민족의식 속에 더욱 내면화되고 질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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