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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결론

by [수호천사]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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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굉일,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결론

 

  •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화됨에 따라 수많은 이주민으로 형성되었던 북간도의 한인 촌락은 일제의 탄압이 적극적으로 미치지 않았던 1915년 이전까지는 민족독립운동의 근거지로 발달될 수 있었다... 1921년 북간도 이백여 처의 교회는 선교사의 도움과 평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설립되어 자주, 자립, 자치로 발전한 것들이었다... (267)

  • 북간도의 한인들은 간민자치회, 간민교육회, 간민회, 국민회, 삼국전도대, 교회청장년회, 주일학교, 사경회, 기도회, 부흥회, 토론회 등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과 함께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명동학교를 비롯한 북간도 기독교 학교들의 교육은 시문화운동 뿐 아니라 애국 청년을 길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267-268)

  • 간민회... (268)

  • 이동휘, 정안립, 김일, 백옥포, 김하석, 황병길, 양하구 등 과격파 기독교 민족운동가들은 암살대를 조직하여 무력항쟁의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268)

  • 1920년 국민회 소속의 안무, 최진동, 홍범도 휘하 항일무장군의 국내 진공과 봉오동전투... (268)

  • 간도 한인들이 무력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을 기반으로 기독교도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민족운동의 원동력이 축적되었기 때문... (2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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