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목원대학교 신학과 교수)
『종교문화연구 (2)』, 2000.4, 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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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자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전쟁이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29)
I. 전쟁 직전의 교회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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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물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전쟁을 지원하게 된 것은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였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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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로부터의 해방 직후 새로운 국가건설의 전개과정 초기부터 남한과 북조선 두 지역 모두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정치 활동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북에서는 윤하영과 한경직 목사가 주도한 기독교사회민주당(1945)과 조만식 장로를 대표로 한 조선민주당(1945)이, 서울에서는 박용희 목사를 중심으로 한 사회민주당(1945)이 조직되었으며 서울이 기독교민주동맹(1947), 기독신민회(1945), 그리스도교연맹(1947), 그리고 평양의 북조선기독교연맹(1946) 같은 교회의 정치참여를 목표로 한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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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활동에 직접 나서지는 않으면서도 강연이나 설교 또는 글을 통해 정부수립의 기본 이념과 방향을 구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김재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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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기독교적 이상에 의해 건국되기를 염원하면서 “우리가 삼십여 년간 ‘일본의 포악한 정치 밑에 종이 되었을 때에는 정치는 우리가 운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된 오늘날 나라를 다시 찾아 나라의 주인공이 된 우리로서는 누구나 다 정치에 관여하여 국가의 훙륭을 기대하는 것이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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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서기장 강양욱 목사... “일제 치하에서 종교와 정치는 별개이어야 했”으나 이제 “민주국가의 모든 시민과 조직은 좋은 법안의 통과를 추진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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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기독교와 정치”(1946), “건국과 기독교”(1947) 같은 글들에서 미국을 “건국 이래 오늘날까지 세계에 제일 축복 받은 평화의 나라”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기독교적 이상에 의하여 재건되기를 염원했는가 하면, 기독교가 반드시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격파’할 것을 촉구하였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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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좌파 김창준 목사... 기독교민주동맹...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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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독교연합회는 1949년 미군철수 반대 기독교 총궐기대회 개최... (31)
II. 전쟁지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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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교회가 속해 있는 정부에 대한 전쟁지원 활동... 오랫동안 교회가 지녀온 종교와 민족의 결합적 성격을 포기하는 것...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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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기독교도연맹... 김익두...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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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독교구국회... 서울 수복 기념식... 평양 탈환...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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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반대 입장... 구국신도대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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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을 반대하는 교회의 입장은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기독교인으로서 호전적인 경향에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공산도당의 사고(思考)는 무신적이고 그들의 행동은 완전히 악마의 대행자이므로 그들을 상대해서 휴전을 약속하여서는 안될 것이라”는 충고로 이해되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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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에서는 유럽에서 열리고 있던 세계평화옹호자대회에 대표를 보내 미국의 북조선 공격과 그것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었다... 1952년 12월 오스트리아 빈... 김창준 목사... (37)
III. 전쟁지원의 설명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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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정당화 방식은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요청, 전투에서 사망하는 병사들을 위한 내세의 약속 그리고 전쟁을 선과 악의 투쟁으로 묘사하는 윤리적 이원론 등으로 나타났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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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론에 의해서 적의 타자성이 철저히 강조되며 적의 희생이 허용되고 합법화된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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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교회에게는 한국전쟁이 “미제국주의 악마”와의 전쟁으로 이해되었으며, 남한교회에게는 “세계 민주주의 자유국가들과 공산독재 국가들”간의 이데올로기 전쟁, 즉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며 원리와 원칙을 세우기 위한 정의의 싸움”이면서도 “반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전쟁”으로 보였다.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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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전쟁의 원인에 대한 생각...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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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교회의 전쟁의 원인에 대한 생각...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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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미국 에반스톤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공산국가의 교회 대표들도 참석한 이 총회에서 공산국가들과의 공존 문제가 논의될 때 명신홍, 김현정, 유호준 등 한국 대표들은 공산주의자와의 공존을 절대 반대하는 태도를 표명하였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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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전시에 공산주의자들을 사탄시한 것은 교회가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에 대한 가르침보다는 이데올로기를 더 중시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교회에게는 남북간의 전쟁은 일종의 십자군 전쟁이었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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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월남한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설교에서 공산주의 사상이야말로 “묵시록에 있는 붉은 용”이라면서 “이 용을 멸할 자 누구냐?”고 물었다. 이처럼 그는 공산주의를 성서에 나오는 “붉은 용”과 동일시하면서 그것과의 대결을 기독교인들에게 촉구하였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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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후에는 공산주의 사탄론은 남한교회에서 반공적 신앙으로 그리고 남북한이 공유하는 과거의 민족사적 동질성보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더 중시하는 반공적 민족주의로 발전해 갔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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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통한 공산주의 체험... 이승만의 정치적 입장...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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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1) 전 생애를 통하여 공산주의 이론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미국식 민주주의만을 부러워하였다. 2) 그의 반공의식은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인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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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회에서 반공은 일종의 민족적 구원론이었는데, 반공적 태도는 전시의 “피부에 찔린 총검”과 “눈앞에서 목도한 살상과 동족간의 불신”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김재준... 한국전쟁을 겪은 후...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 (42)
IV. 한국전쟁에 대한 세계교회들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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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 토론토 중앙위원회... “한국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 전문(영문)...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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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세계질서의 도구로서 유엔의 행동을 권고... 이 충돌이 또 하나의 세계대전의 시작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함...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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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네루 협상을 언급하면서 교회들이 중재 노력을 도와야 할 것을 요구... WCC 중앙위원회 참석하였던 라인홀드 니버는 그들이 결국 아시아를 공산주의의 손에 넘겨줄 조건으로 협상하게 될 것을 우려함...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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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중앙위원회의 ‘위로의 편지’(전문)... ‘세계교회들이 이용할 기도문’(전문)...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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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1948년 암스테르담 창립총회... 중앙 통제적인 공산주의와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 체제를 거부하면서 ‘책임사회’의 비전을 제시...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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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와 중공교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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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성명에 항의하는 동유럽 교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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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활동..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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