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목원대 교수, 교회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14』(2001.2), 10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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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직후, 급박한 상황 속에서 1950년 7월 9일부터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3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원래 의안에 없던 한국전쟁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전쟁을 북한의 남침으로 규정하고, 유엔의 경찰 행동을 지지한 토론토 성명은 발표 직후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WCC 회원교회들 가운데서 격렬한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로 인한 논쟁은 1953년 7월 휴전 상태에 들어갈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107-108)
I. 세계교회협의회의 한국전쟁 성명
1. 성명 작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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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6일 국제선교협의회(IMC)는 한국기독교연합회로부터 대규모의 침략군이 도처에서 압박중이라면서 긴급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급전을 받았다... 국제적인 기독교 기구들인 CCIA와 IMC는 한국교회를 통해 6월 26일 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으며, 곧바로 유엔 및 미국정부와 접촉하면서 한국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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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WCC 중앙위원회 회기에 앞서서 WCC와 IMC의 연합기관인 국제문제교회위원회 집행위원회가 7월 3일부터 5일까지 토론토에서 열렸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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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군사조치를 통해 이 침략에 대응하기로 결정한 뒤였다. 따라서 WCC가, 모든 국가들의 평화와 안전이 달려 있는 원칙을 준수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데 대해서 이견이 없었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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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논쟁점은, 교회가 세계질서의 방어를 위해서 무력의 사용을 권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45명 중 2명의 평화주의자 기권)...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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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문제교회위원회와 중앙위원회는 사실에 대한 해석을 유엔 한국위원단의 보고를 기초로 하였다... 이 보고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정부, 그리고 WCC에 의해서 북한군 남침의 가장 유력한 근거로 이용되었으나 일부 공산권 교회들에서 이 보고서의 객관성은 의문시되었다. (111-112)
2. 성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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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략행위가 저질러졌다.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증인인 유엔 한국위원단은, ‘모든 증거는’ 북한군에 의해서 ‘비밀리에 준비되고 시작된 계획적인, 조정된 침략’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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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책의 도구로서의 무장 침략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유엔이 세계질서의 도구로서 이 침략에 맞서서 신속한 결정을 취해 줄 것과 모든 회원국이 지원하는 경찰 조치를 허가해 줄 것을 권고한다. 동시에, 정부들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유엔을 통해서 협상과 화해에 의한 공정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해야 한다...” (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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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위원회는, 한국상황이 “전면전의 시작이 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토로하면서 세계대전을 경고했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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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위원회는 또한 현대전쟁의 방법들을 비난하고, 그것들이 “무력의 사용과 엄청난 규모의 생명 파괴를 포함하여 법과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선언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들이 국제적인 합의에 의하여 금지되어야 하며 우리는 이 때문에 모든 진지한 제안을 환영한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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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평화 호소”... 원자무기 사용에 대한 금지...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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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무기의 금지는 충분하지 않다. 평화는 침략자가 원자무기나 다른 파괴의 수단, 강제 조치나 침투 어느 것을 사용할지라도 모든 침략자를 제지하기 위해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을 필요로 한다. 원자무기를 금지하기 위한 여하한 계획도 효율적인 사찰조치에 입각해야 하며, 사찰 방식은 소련이 지금까지 반대해 온 지속적인 국제적 감독을 규정해야 한다.” (115)
II. 세계교회협의회 성명에 대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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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중앙위원회의 토론토 성명은 일부 WCC 회원교회들로부터 비판받았으며, 공산국가가 된 동유럽의 교회와 중국교회로부터는 동서간의 냉전에서 편을 들고 있다는 비난을 들었다. (115)
1. 동유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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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교회 서신... 분쟁의 기원이 서방세력의 제국주의적 태도에 있기 때문에 중앙위원회는 서방 세력의 참회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옳았다면서 기독교 국가들의 죄에 대해서 침묵을 지켰던 교회들은 이제 국가들을 편들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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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감독(John Peter)... “WCC가 토론토 결의안을 통해 현재까지도 한국위기의 평화로운 해결을 방해한 관련 강대국들을 지지한 것을 회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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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카톨릭교회... 한국전쟁에서 원자탄 사용을 요구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한국인과 도시, 촌락에 대한 미군의 폭탄공격에 항의하였다.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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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로마르카... “WCC가 자신을 (대단히 모호한 환경에서) 강대국들의 한 그룹과 동일시하고, 그 그룹의 군사행동을 지지하고, 전 유엔 회원국들로 하여금 그것에 참여하도록 조장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고 언명한 다음, 먼저 성명이 “대단히 애매한 증거와 법적으로 불확실한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토론토 성명에서는 유엔 회원국들이 성급하게 국제질서의 주요한 기본원칙들 중의 하나를 저버렸던 것에 대해 한마디의 경고도 언급되지 않았다.” (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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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에서 가장 비참하고 위험스러운 관점은, 공산주의가 실제적인 혐오의 대상이며 소련에서 그것이 악마적 형태로 구체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공산주의와 소련)이 혁명적 폭발을 일으키고 있거나 그들 자신의 독재와 파괴의 음흉한 목표를 위해 가난한 자들의 고통과 지배를 받고 있는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는 독선적인 가정인데, 분명히 이것이 토론토 성명의 동기가 되었다.” (119)
2. 중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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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의 반응을 검토할 때에는, 1950년 10월 이후 중국 의용군이 이북 지역에서 미군 및 다른 유엔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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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북경에서 주은래 수상과 회합을 가진 후 선언문 “중국 기독교회와 교회 기관 대표들의 연합 선언...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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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대학교 종교학부 학장 조자신은 여섯명으로 구성된 WCC의 공동회장직에 사표를 냈다.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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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신은 WCC가 미제국주의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따라서 중국의 충성스런 시민으로서 이제 더 이상 WCC와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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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및 중국교회는 스톡홀름 평화 호소를 지지하면서 토론토 성명의 서구적 편향에 격렬히 항의하였다. (122)
3. 미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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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협의회는 유엔이 “신속하고 활기있는 행동”으로 응답한 데 대해 감사를 표명했으며, 교회 내의 몇몇 평화운동 단체들이 미국교회협의회의 입장을 뒤따르는 성명을 냈다.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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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협의회 집행부... 세계질서의 날(1950년 10월 22일)을 위한 메시지 채택... “미국교회들은 경찰국가의 침략적인 제국주의에서 가장 실제적인 형태의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복종을 발견한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세계지배를 추구함에서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또 하나의 파국적인 전면전을 감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에서 그리고 지금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적인 공격이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고 언명하였다.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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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기독교인의 양심과 대량파괴 무기”에 관한 교회협의회의 보고서... “법과 질서 없이는 인간을 위한 정의도 책임적인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 정당한 질서를 부여하는 법은 힘에 의하여 지탱되어야 하며 필요시 강제력에 의해서 지탱되어야 한다.”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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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평화 호소를 “그럴싸한” 그리고 “위장”된 것으로 보았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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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펠로우십’ 같은 퀘이커교의 노선을 따르는 평화주의 단체들... 군사정책 반대... 유엔의 개입은 이른바 ‘경찰 행동’이 아니라 전쟁으로 보았다.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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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드(Harry F. Ward)... 케니스 레슬리(Kenneth Leslie)... 와드는 WCC가 “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포기했다고 비난했다.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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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프로테스탄트>의 편집인 레슬리는 미국을 “침략국”으로 부르면서 한국에서의 충돌은 “덜레스의 아기”, “월스트리트의 전도자 존 포스터 덜레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였다.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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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에 의하면, WCC는 토론토 성명에서 유엔의 ‘경찰 행동’을 추인하면서 동시에 자주적인 정부를 갖지 못한 국민들에 대한 착취와 인권 위반에 항의했다. 한국 문제에서 볼 때, 중앙위원회는 남한정부를 인권 위반자로 언급했어야 했다... 레슬리는 한국전쟁을 침략전쟁이아니라 일종의 혁명으로 보았다. “그것은 일종의 혁명, 전 아시아와 유럽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과 동일한 혁명이다.” 그는 혁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승만 정부하의 부정부패와 테러 정치를 비판하기도 했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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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인교회 지도자... 현순... 황사용... 내전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 (129)
III. 세계교회협의회의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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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성명에 대한 질문... 중앙위원회가 그같은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행동을 취하는 것이 실제로 필요했는가? 그리고 이것은 WCC가 냉전시대에 다른 그룹에 맞서서 강대국의 한 그룹을 편드는 것을 뜻하는가? 였다.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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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는 “전 교회와 전체 세계에 관한 극히 중대한 이슈들이 문제가 될 때 WCC가 목소리를 높일 명백한 의무가 확실히 있다”고 말한 암스테르담 대회의 성명에 근거해서 답했다.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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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는 다른 국가들에 반대해서 어떤 국가들의 블록과도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의도를 가지지도 않았다는 점도 역설했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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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문제 교회위원회 책임자 놀드는 토론토 성명의 정당성을 유엔한국위원단과 유엔에서 찾았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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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의 신학교수 로저 멜(Roger Mehl)은, 토론토 성명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미국의 행동에 대한 지지로 말미암아 WCC는 틀림없이 비판받게 될 것이며, 아주 광범위한 지역에서 심한 불만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균형감 상실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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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토마스(M. M. Thomas)는, WCC가 토론토 성명을 정당화하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법의 정의를 검토하지 않고 법의 신성함에 기초한 한국에 대한 선언이 아시아의 생각하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아주 호의적인 반응을 자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32)
1. WCC 집행위원회(비브레,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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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레 회의는 한국전쟁에 대한 토론토 성명을 재확인하거나 취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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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위원회 결과 ‘WCC 회원교회들에게 보내는 집행위원회의 편지’(1951년 2월)...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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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레 서신에 대한 헝가리교회의 비판...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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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레 서신에 대한 한국교회의 반응... (136-137)
2. 4차 중앙위원회(롤,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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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8월... 중국 조자신 박사의 사표 처리... 후임으로 인도교회의 여성 지도자 사라 차코를 선출... 헝가리 개혁교회 베레츠기 감독의 항의... (13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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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WCC와 IMC는 CCIA와 국가별 위원회를 통해 3차 세계대전을 방지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했다는 것이 많은 지역들에서 인정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139)
3. 5차 중앙위원회(루크노우, 1952-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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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통일과 독립이 “협의된 해결을 통해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촉구했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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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부터는 구호 및 복구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표하기 시작...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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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에 따라 한국에서 전투가 중단된 후 첫 번째 모인 집행위원회에서는 “한국에 관한 집행위원회 결의안”(보세이, 1953년 8월)에서 “협상과 재건의 과정에 의한 정치적 통일과 효율적인 복구”에 관심을 가졌다.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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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와 동유럽교회들은 이전의 입장을 수정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142)
IV.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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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에서 대체로 미국교회가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동유럽과 중국교회는 혁명을 내세웠으나 그 근저에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놓여 있는 논쟁이었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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