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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논문 정리]

“김재준의 정치신학 : 신학적 원리와 사회ㆍ정치변혁론 – 1970-1980년대 인권ㆍ민주화ㆍ평화통일 운동을 중심으로” - 김경재(2004)

by [수호천사]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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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재(한신대 교수 / 조직신학)

신학사상 124(2004), 55-86.

 

1. 들어가는 말

 

  • 북미주 체류 10년 동안 장공이 북미주 기독자교수협의’(The Association of Korean Scholars in North America), ‘한국민주회복 통일 촉진 국민회의’(Korean Congress for Democracy and Unification) 북미주 본부, 그리고 민주주의 국민연합’(The United Movement for Democracy in Korea) 북미주 본부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58)

  • 위 기관 단체의 지도자로서 참여하면서, 부딪혔던 문제들 중 특히 북한당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민주인사들의 좌파, 우파, 중도파 입장들을 어떻게 조율해 갔으며, 장공의 북한관과 앞으로 남북 평화 통일의 일정에서 그가 이념비판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점이 무엇이었는가? (58)

  • 북미주 체류 10년간 그가 참여한 정치행동 중에서 이관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정치신학적 기본 원리는 무엇이었는가? (58)

 

2. 해방정국 시기부터 한일굴욕외교 반대운동까지(1945-1965)

 

1) 1945년 8월 현재 해방정국에서 새나라 건설에 대한 김재준의 정치적 비전

 

  • 기독교의 건국이념발표 : “기독교인의 최고 사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 사회에 여실(如實)히 건설되는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초세간적(超世間的) 래세적인 소위 천당이라는 말로써 그 전부를 의미한 것인 줄 알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가의 전 생활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부문(全部門)을 지배하였을 때, 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며, 이것이 전사회(全社會)에 침투되며 사선(死線)을 넘어 미래 세계에까지 생생발전(生生發展)하여, 우주적 대극(大極)의 대 낙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전모(全貌)인 것이다.” (58-59)

  • 기독교의 건국이념에 나타난 장공의 정치신학 사상의 기본내용... (1) 기독교의 최고 이념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전 인류는 하나의 유기체적 일체이다... (2) 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자유ㆍ정의ㆍ평화ㆍ진리가 충만한 생명의 나라인데, 개인적ㆍ집단적 인간 죄악의 결과로 인하여, 정의롭고 평화로운 생명 공동체가 파괴되었고 위협받게 되었다... (3) 모든 권위의 근원과 최종적 소재는 하나님이다... (4) 새롭게 형성될 근대국가 정부로서 최소한도의 필요충분조건은 신앙과 예배의 자유, 사상ㆍ언론ㆍ집회ㆍ출판의 자유, 개인 양심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부이어야 한다... (5) 사회주의적 공산주의는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정치경제적 사회 모순을 밝히고 개선하려는 노력인한 기독교는 그들의 노력을 수락해야 한다... (6) 국제정책면에서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영세중립국이어야 한다... (7) 새 조선의 건설에 있어서 지녀야 할 주요한 맘의 자세로서 민족의식과 민주주의를 명심해야 한다. (59-60)

 

2) 해방에서 제1공화국 붕괴에 이르는 김재준 정치신학의 한계

 

  • 김재준의 개혁교회 전통에 뿌리를 둔 칼빈신학적 정치신학 노선과 그의 성육신적 영성신학은 본래부터 이론상으로는 역사현실 참여라는 진보적 신학노선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의 역사현실 참여라는 신학은 현실을 규정하는 가장 실질적인 정치권력의 역학관계와 그 힘의 왜곡된 사용에 대하여 적극적 발언과 저항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0-61)

  • 현실적으로 부딪힌 장로교 교단 내의 신학노선 논쟁과 그를 지지하는 제자들이나 교역자를 장로교 보수정통신학의 이름으로 축출하는 비신앙적, 반지성적 교권의 횡포에 맞서 신앙과 학문의 자유를 지켜내는 일이 기독교를 바로 세우는 기초 사업이라고 확신하였다. (61)

  • 시대의 아들로 분단 상황 속에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막연한 기대.. 부통령 함태영의 존재... 미군정의 협조로 천리교 건물을 인수받은 빚진 감정... 625 전쟁을 통해 그가 체험한 무력적 공산주의 혁명철학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강화됨 (61-62)

 

3) 신학적 참회와 현실역사 의식에로 전환의 계기 : 두 혁명과 한일굴욕외교

 

  • 현실 역사로 그의 신학적 지성의 관심을 전환시키는 계기는 419학생의거와 516군사혁명이었다. (62)

  • 박정희의 정치자금을 위한 사대의혹사건’... 윤보선을 제치고 15만표 차로 제5대 대통령에 취임 (62-63)

  • 1965한일굴욕외교수립’... 김종필(중앙정보부장)과 일본외상 오히라 마사요시의 회담... 경제적 기본재원에 쫓기는 군사정권의 자금 필요성과 한일 관계를 빨리 정상화시켜 동아시아 정치질서를 미국의 계획대로 이끌어 가려는 미국의 막후 거간꾼 노릇이 상승작용을일으켜 굴욕적 한일국교정상화를 강행... (63)

  • 196571... 김재준, 한경직, 이태준 목사... ‘굴욕적 한일국교정상화반대활동 (63)

  • 19657월 영락교회당에서 모인 한일굴욕외교반대 대회의 의미... 1) 191931독립운동 거사에 거교회적으로 민족문제에 참여했던 한국 기독교가 민족을 잊고 교파교세 확장, 신학교리 논쟁에 그 에너지를 소모한 지 45년만에, 다시 민족문제에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역사적 시점... 2) 한경직, 김재준 등 기독교 지도자들이 비록 교파가 다를지라도, 언제든지 민족 문제에 있어서 대동단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 3) 김재준은 본격적으로 역사현실 속으로 깊이 신앙적 고백행위로서 참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 (64)

 

3. 삼선개헌 투쟁위원회와 민주수호 국민협의회를 중심한 참여적 정치신학 활동(1966-1973)

 

  • 본격적으로 김재준이 이름이 한민족 대중과 언론인들, 그리고 정치인들과 군사독재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69‘3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민주주의 운동과 인권 운동에 깊이 참여한 때부터이다. (64)

  • 대한일보 사장이며 한양대학 총장과 재단 이사장을 지낸 김연준은 평생 동안 장공의 인격과 지조와 문필 능력을 존경하고 여러운 난세에 김재준이라는 선비를 보호하고 돕는 데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장공을 대한일보 논설위원으로 모셨기에, 장공은 신문의날에 고재욱, 홍종인, 이관구, 김연준, 천관우 등 원로 언론인들과 한국 신문의 역할과 한국신문윤리실천문제들을 화두로 의기상통했다. (64-65)

  • 김재준을 본격적으로 삼선개헌반대투쟁대열로 끌어들인 사람은 장공의 오랜 친구였고 서울시장을 지낸 김상돈과 장공의 제자요 사상계의 주필인 장준하였다. (65)

  • ‘3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위원장 김재준... 민주주의 신념이 투철하고, 때묻지 않은 사회적 명망가로서 인격이 갖추어 있고, 다양한 정치적 참여단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도 본인 자신은 정치적 야망이 없이 맘이 맑고 정치 조직체를 갖고 있지 않는 순수한 지도자를 찾고 있었는데, 장공이 그 적임자로서 옹립된 것이다. (65)

  • 장공의 현실정치에로 참여는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계의 차가운 반응에 부딪혔다... 한국 보수적 기독교 지도자들 대부분의 동일한 변은 교회가 왜 정치에 관여하는가? 목사가 왜 정치 집단에 참여하는가?”라는 것이었다. (66)

  • 잘못 이해한 정교분리론성속이원론’... 대부분 보수적 교회 자도자들은 정치적 중립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수구보수정치 집단군부신흥정치 집단을 지지하거나, 침묵을 통해 간접적으로 불의한 정치 행동을 묵인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야합하여, ‘정교분리원칙이라는 형식논리 뒤에 숨어서 정치권력의 비호와 행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교파나 개교회 세력의 강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66)

  • 1971419, ‘민주수호국민협의회결성 : 김재준, 함석헌, 지학순, 이병린, 천관우 씨가 공동대표위원으로 추대됨 (66)

  • 197474일 돌연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도리어 국내정치적 상황은 “74 남북공동성명이 천명한 남북 화해와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국제정세의 변화와 남북 대화에 대처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19721017일에 전국에 긴급조치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19721027유신헌법안의결... (67)

  • 한국 정치사에서 한민족의 위대한 정치적 역량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목숨보다도 더 강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해가 1973년이었다. (67)

  • 민주시국선언’(1973115)... ‘민주원로회사무국장으로 선임된 장준하는 민주개헌 10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감... 1970년 이후 김재준은 거의 가택연금을 당한 상태였다. (68)

 

4. 북미체류 10년간 장공의 역사참여 신학운동(1974-1983)

 

  •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의식의 핵심... 1) 남한과 북한의 공통분모는 민중(people)이며, 민중은 남북한 정권보다 크고 특정 집권자 개인을 우상화하며 그를 추종하는 정치 집단보다 근원적이고 나라와 역사의 정치적 주권자이다... 2) 남북한 민중이 원하는 것은 세 가지다(각 개인의 자유, 정의로운 사회, 나라간의 평화). 자유, 정의, 평화가 기본적이며, 성서가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최소 구성요고라고 보았다... 3) 현실적으로 남북한 현실 집권자들은, 인민해방, 민주주의 신장, 사회질서 유지, 민족통일 달성 등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내심은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는 정치 집단의 권력 유지와 권력 강화에 일차적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통일론은 남과 북을 자기 빛깔 단색으로 색칠하려는 일방적 통일론이다... 4) 인간의 삶 자체는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것인데, 사회가 근본적으로 불의반인간으로 치달을 때,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과 행동으로 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고백 행위가 된다... 5) 통일 문제나 세계평화 문제에 있어서도 인간이 존엄성이 그 일차적 목적이고 최우선의 관심이어야 한다. (69)

  • 장공이 북미주에 체류한 10년 동안, 그가 더불어 관계하면서 활동을 폈던 조직기구... (1) 토론토 한인 연합교회를 공간상징적 중심으로 하는 토론토 민주사회 건설협의회3등 언론 활동... (2) ‘북미주 기독학자 협의회’(The Association of Korean Christian Scholars in North America)... (3) ‘한국민주회복 통일촉진 국민회의’(약칭, 민통, Korean Congress for Democracy and Reunification) 미주본부... (4) ‘한국민주화연합운동’(약칭, 민주연합 : UM, The United Movement For Democracy in Korea) 북미본부... (5) ‘한국에서 인권을 위한 북미주연합’(약칭, 인권연합, North American Coalition for Human Rights in Korea) (70)

 

1) 토론토 민주사회 건설협의회, 『제3일』과 『민주동지』 및 목요기도회

 

  • 캐나다 토론토 : 1) 의식주 해결을 위한 가족이 먼저 캐나다에 정착해 있었음... 2) 토론토 한인연합교회 이상철 목사와 신앙동지들, 윌리엄 스캇, 문재린 목사... 3) 한국기독교장로회 출범과 한신대학교 건설 과정 캐나다 연합교회와 쌓은 인간적, 신앙적 신뢰와 캐나다 정부의 호의... 4) 토론토에서 속간된 3민주동지의 발행을 돕는 전충림, 전학필, 최성일, 그리고 민혜기를 비롯한 수많은 한신 동문 제자들이 많았다. (71)

  • 민주사회건설협의회가 자발적으로 형성... (71)

  • 구춘회의 회고와 증언 : 1975년 세계교회협의회에 해외 한국인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한국 민주화와 인권 운동을 지지하고 돕기 위해 조직을 구성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한국민주화 인권을 위한 세계협의회’(World Council for Democracy in Korea, 뒤에 Internationa Christian Network로 개칭)이다. 처음 모인 세계 각 지역 대표인사들의 면모는 김재준, 이상철(캐나다), 이승만(미국), 박상증(제네바), 오재식(일본), 장성환(서독) 등이었는데, 이 조직은 각 나라 그리스도인들의 국제적 연계망을 구축하여 조국의 인권과 민주화 및 평화통일 운동을 이념과 운동방향 제시, 연락망과 정보 교환, 운동전략 수립, 국내 고난받는 민주인사 가족 지원 및 인적 자원의 조달 등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71-72)

  • 캐나다에서 3속간 발행... 60... 해외 전 지역에 1970-80년대 조국의 인권ㆍ민주화ㆍ평화운동을 이끌어가는 이념적 방향 제시와 높은 도덕적ㆍ종교적 정열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발전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때로는 종교적 영감과 문학적ㆍ미학적 단편을 제공하여 민주화 운동을하는 동지들의 심신이 지치거나 메마르지 않게 하는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72)

 

2) 북미주 기독학자 협의회

 

  • 장공이 캐나다에서 최초로 접촉하게 된 운동조직체... ‘재북미주 기독학자 협의회8연차 대회... 처음부터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으로 동질인 단체는 아니었다. (72)

  • 장공은 조국에 남은 자녀들과 친지 및 동지들에게 자신의 북미주에서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비판적 정치적 활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을 심적으로 고통하면서도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하면서 굽히지 않고 순회 강연이나 교회 강단을 통해 증언했다. (73)

  • 장공의 북미주 체류 초기(1974-1975). 그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북미주 교회와 민주 동지들에게 보낸 공개편지 회한(回翰)에 대신하여’(197575)는 그 당시 장공의 정치신학적 소신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반부에서 주로 박정희 군부정치 집단의 의도와 정략에 예표를 찌르면서 분석한 후, 편지 후반부에서 기독자로서의 대응 자세와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장공의 정치참여 행동이 단순한 상황에 몰린 처신이거나 신앙인으로서의 탈선이 아니라, 자유ㆍ정의ㆍ진리ㆍ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하나님 나라 선취로서의 인간 공돛체 실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신앙적 응답 행동인 것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두 기둥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 정의임을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73-75)

 

3) 한국민주회복 통일촉진 국민회의 북미본부

 

  • 약칭 민통’(民統)이라 불리는 이 조직기구 단체는 장공의 북미체류 10년간 많은 심려와 에너지를 쏟아 부은 기구조직이다. 본래 이 조직기구의 뿌리는 김대중씨가 한국 중앙정보부에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 그가 워싱턴에 체류할 때, 한국의 민주화와 톨일을 위한 해외 정치 운동의 거점으로 시작한 것이다. (75)

  •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민통은 19741123일 워싱턴에서 총회로 모여 조직 기구를 개편... 의장으로 추대됨... 북미주 민통이 해체될 기로점에 서 있다는 회원들의 절박감을 감지하고 이념적 성향에서 좌ㆍ우ㆍ중도파들의 갈등을 조화시키고 이합집산을 막기 위해 의장직을 수락함... (75-77)

  • 김재준을 중심으로 한 한민통임원들은 (1) ‘31민주구국선언문을 곧바로 영역하여 미국조야와 세계 자유 우방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에게 알렸다. (2) 선언문을 적극 지지하는 해외민주단체로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3) 미국 국무성, 팬타곤, 상하원 지도자들을 방문하고 한국의 인권 및 민주주의 위기를 알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이 독재정권을 지원하지 않고 바르게 수행되도록 촉구했다. (4) 프레이저 상원의원을 면담하고, 미국 상원 국회 의사록에 프레이저 발제 연설과 영역된 ‘31 민주구국선언문이 첨부되도록 했다. (5) 뉴욕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지 등 미국 신문, 방송 등이 한국의 인권상황과 정치위기를 똑바르게 인식하고 바르게 보도하도록 촉구하는 데 노력했다. (77-78)

  • 1976317일 미국 상원 프레이저 청문회’ (78)

  • ‘31 민주구국선언사건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민주화 운동 단체들의 결속을 한층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78)

 

4) 한국민주화연합운동(UM. The United Movement for Democracy in Korea) 북미주 지부

 

  • 197575, 한국 국내 민주 세력은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행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도, 윤보선, 함석헌, 지학순, 문익환, 문동환 등을 중심으로 하여 민주주의 국민연합을 창립하였다... 장공은 197877일 뉴욕으로 날아가 그곳의 민주인사들 김정순, 임순만, 김홍준, 한승인, 김정순, 선우학원, 이승만, 손명걸 제씨와 회동하고, 한국의 윤보선 씨와 직접 통화하여 ‘UM’에서 민주주의국민연합 북미주 지부사업을 겸하기로 동의를 얻었다. 목적이 같은데 다양한 기구조직을 새로 구성하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민주 역량의 분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79)

  • 1980년 전후 시기 해외 민주화 평화통일 운동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남한의 민주화를 먼저 생각하고 방법론적으로도 남한의 민주역량제고에 일차적 운동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선민주ㆍ후통일그룹의 민주인사들과, 민주화가 진척이 안되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분단 현실에 있음을 강조하고 통일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하자는 친이북 민주인사들과의 견해차이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늘긴장과 갈등을 야기시켰다는 점이다. (80)

  • 북미주 민주화 평화통일 운동 과정에서 북한 관계에서 보다 적극적이고도 개방적 입장을 취한 대표적 인사들은 선우학원, 홍동근, 강위조, 이화선 등 제씨였다. (80)

  • 선우학원 박사는 그의 팔순 기념문집 민족통일의 비전(1997)에 기고한 논문 남과 북의 통일론 및 해결책이라는 글에서 1970년부터 1995년까지의 남북한 통일 논의 과정과 북미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의 전략전술상 그리고 이념의 진보성에서의 차이를 대체로 솔직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198010월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연방제 방안을 대체적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이면서, 남북 평화통일의 방해물로서 남한 다국적 기업과 그와 관련된 한국의 독점 기업, 군사정권의 사회경제 정책, 그리고 남한의 이념 충돌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의 반공주의 태도를 꼽았다...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 지도자인 한경직, 김재준, 강신명 등이 모두 1970년대까지는 반공주의자들이었으며, 김재준이 캐나다에서 민주화투쟁을 하는 동안 이념적으로 유연성을 회복했으나, 보다 적극적 태도를 취하지 못한 점을 비판적으로 아쉽게 생각했다. (80-81)

  • 장공이 대북관계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한 이유... 1)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인권ㆍ민주화 운동이 이념적으로 친북한적이 아님을 분명하게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2) 장공이 평양을 방문했다면, 박정희 군사정권은 남한의 모든 민주인사나 진보적 기독교민주 운동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고 관제 언론은 그것을 부추겨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만 했다. 장공은 실지로 19801,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부주석이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이며 조국평화통일 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세 가지 직함을 겸직한 김일로부터 민족의 통일문제를 상론하자는 초청장을 받은 바 있다... 3) 기독교적 정치신학의 신념 : 철저하게 개인의 인간 자유와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지도자 개인 절대화를 당연시하는 북한 체제는 당시 남한 군사독재체제와 더불어 궁극적으로 극복되어야할 정치현실이라고 평가한다는 점에 있다. (81-82)

  • 이상철 목사의 대북 관계론 (82)

  • 19791월 등소평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하여 민주주의 국민연합 북미주본부는 김재준을 의장으로 한 7인의 상임대표위원 이름으로 통일조국에 대한 공개서한과 미국 카터대통령, 등소평 중국 국가주석에게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성명서의 기본정신과 내용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국 4강의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불안전한 분단 체제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 한반도 통일의 주체는 한민족 자신이라는 것, 현 남북한의 독재정치는 지양되고, 통일 형태는 영세중립국을 지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생각하고 연구한다는 것 등이다. (83)

 

5. 맺는말

 

  • 김재준은 북미주 체류 10년간 주위의 수많은 정치학자들이나 민주인사들의 좌파ㆍ우파ㆍ중도파의 다양성과 긴장 갈등을 하나로 묶어내는 중심축 역할 또는 창조적 용광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83)

  • 장공의 정치신학은 그의 기독교 복음의 본질 이해에 뿌리박고 있는데,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실재로 나타나서 역사적ㆍ사회적 현실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 변혁해 가는 창조적 능력이라고 이해한다. (83-84)

  • 장공의 정치신학은 개혁파 교회정통의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라는 기본 축을 골간으로 하고, 사회적 책임윤리를 강조하면서 우상 타파적인 예언자적 비판정신을 강하게 담지한다. (84)

  • 왜곡된 정치사회 현실을 타파하여 본래적인 건강한 인간 공동체의 실현에 비판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기독자의 권장사항이 아니라, 사회윤리적 책임이요 신앙적 간증 행위가 된다. (84)

  •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를 한껏 보장하는 장점이 있으나, 정의에 입각한 평등한 사회질서의 실현이나, 폭력과 전쟁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국제적 경제질서 모순을 극복할 수 없기에, 황금만능주의와 비인간화를 초래한다. 거기에 대한 비판적 반동으로 출현한 공산주의적 사회주의 정치체제는 정의의 이름으로 평등한 사회질서를 줄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ㆍ양심의 자유ㆍ출판 언론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집단주의사회와 정치권력의 집중을 통한 우상화를 초래하여 공동체 전체를 비인간화시킨다... 현재의 남북한 정치 체제는 보다 인간적인 얼굴을 지닌 사회로 초극 지양되어야 할 잠정적 정치사회 체제요 삶의 구조이다. (84-85)

  • 기독교는 어떤 특정 정치제도나 이념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을 만큼, 그 지향하는 비전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다... 복음이 명하는 절대적 사랑의 계명과 하나님의 나라에 근사치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구체적 결단과 정치 체제의 선택을 탄력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러한 점을 고려할 때, 한민족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세계정치적 긴장을 완화시키는돌쩌귀기능을 감당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스위스같은 영세중립국을 지향해야 하고, 정치사회 형태는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에 가까운 정세를 취하여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과 인류의 복지를 추구해 가야 할 것이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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