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오갑(그리스도대 교수 / 조직신학)
『신학사상 141』(2008), 7-37.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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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김재준(1901-1987)은 20세기 한국 민족과 문화사에서 자유의 사상가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것은 그가 그 시대에서 자유로운 사상가였으며, 더더욱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투철한 신념과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7)
1. 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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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김재준은 자유의 사상가이다(자유주의자는 아니다)... 그 시대에서 자유로운 사상가였으며, 더더욱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투철한 신념과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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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란 19세기 이후 20세기 초반 유럽을 풍미했던 신학사조이다. 그것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보다는 인류의 종교 혹은 지혜의 오랜 전승이나 축적물로서 보며, 그것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성령의 영감이나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이성적 사유와 역사비평, 문서비평에 의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예수의 신성이나 속죄의 죽음, 부활 또는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나 초월성 같은 것들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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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랑은 장공의 근본정신을 “자유와 겸허”에서 찾았고, 그의 신학을 “자유의 신학”이라고 불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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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은 장공의 영전에 바친 시에서 “자유가 좋아서 기독교인이 되었고... 기독교의 사슬마저도 끊어버리고 자유를 선포하셨고... (종래는) 자유의 황무지를 갈아 엎는 보습”으로 묘사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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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동은 “그 분이야말로 타고난 자유인으로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아니오’를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스스로 쟁취하고 유감없이 누리고 가신 우리의 큰 스승”이라고 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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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연은 장공의 가장 중요한 공로로서 “신앙과 신학의 자유를 확보 실천한 일”로 꼽았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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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은 장공을 “보수와 진보 어느 하나에 자기 발을 붙이지 않는 진보적 보수주의, 보수적 진보주의 사상을 글귀마다 펴나가는 폭넓은 진리의 탐구자, 신앙과 윤리, 교회와 사회, 신학과 철학, 전통과 혁신의 테두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유의 탐구자, 이런 진리와 자유에서 높고 깊으며 폭넓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9)
2. 장공의 자유의 출처
1) 태생적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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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부친 : 그의 선친이 조선 말기 쓰러져가는 사직과 나라의 운명을 보면서 책임을 조선의 정신세계를 지배할뿐더러 통치이념이며 사회윤리이기도 했던 유학이 쇠퇴와 붕괴에 돌리고, 그만큼 더 유교의 정학과 정통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중앙학자들의 유학에 대한 부실을 한탄하며 타협적이고 무른 그들과 달리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진짜인지를 분명히 하려는 고집스러운 선비였을 것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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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일생을 보면, 대세에 순은하고 중심에 합류하며 다수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죽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또 어떤 점에서는 자신이 속한 사회나 단체에서도 중앙에 서고 중심에 서는 일에 서툴렀던 것처럼 보인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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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자유의 기질... 그가 변방 함경도 산간 지방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또한 고집스럽게 중앙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살았던 선친의 영향으로써 그의 태생과 어린 시절 이미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12)
2)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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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에게 기독교는 자유의 종교였다... 그는 기독교에서 가장 특징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자유’라고 보았고, 그 점에서 그는 기독교를 “인간 자유를 위한 종교”라고 단언했다. “기독교에서 자유를 위한 정열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불꺼진 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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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록 자체가 “결국 자유를 위한 사건들의 기록”이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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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인간성을 온갖 질곡에서 자유케하는 은총의 종교”이다. 이런 기독교를 장공은 다른 데서 “자유하는 산 인격으로서의 예수의 종교”라고 부르기도 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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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은 자신의 체험으로써 기독교의 자유가 조선 유교사회의 종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문화로부터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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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이 책의 종교인 율법주의를 배격했을 때 그는 어려서 경험했던 유교를 떠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장공은 유교의 계율주의를 벗어나서 기독교 안에서 얻은 자유를 이렇게 고백했다. “그 순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경험했다. 지금까지의 유교적인 윤리와 규례에서 해방됐다. 분토같이 버렸노라 한 바울의 말이 영락없는 내 말이 된다. 바울이 율법주의에서 해방된 것 같이 나도 유교와 모든 원시종교적 전통과 습성에서 해방된 것을 인식한다. (14)
3. 장공의 삶에서 자유의 행보들
1) 고향과 가정과 직장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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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고향을 버리고 “아내에게 조차 한 마디 기별도 없이” 홀연히 서울로 떠나는 모험을 감행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을 연상 (15-16)
2) 유교를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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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은 20세에 이르러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유교를 떠났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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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전히 유교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유교를 중시했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으로서지 유교도로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유교를 떠나 기독교로 들어간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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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떠난다는 것의 의미 (17)
3) 기독교의 ‘인조(ism)’를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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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무슨 ‘주의’냐고 한다면 ‘살아계신 그리스도주의’라고나 할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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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은 학파들 속에서 동질성보다는 문제성을 더 심각하게 보았고, ‘차이’ 또는 ‘거리’를 크게 느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전통이나 계열로부터 항상 자신을 떼어놓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고, 다른 말로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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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전통의 신학자이면서 목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빈도 넘어서고, 심지어는 개신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루터도 넘어서고, 사도 바울에 대해서까지도 넘어서려는 데서 잘 나타난다. “한국 교회는 정통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참 전통은 16세기의 칼빈 신학에의 고정이 아니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몸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과 생애와 심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칼빈, 루터, 바울 등은 어느 각도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뿐이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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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월에 발표한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연구”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의문시하는 연구로서 당시 근본주의의 선교사들과 추종세력들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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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설교하고 목회할 수 있는 것이나, 신학자들이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학문연구에 매진해서 성과들을 낼 수 있는 것은 장공을 비롯한 그의 동료 제자들이 시련을 이겨내면서 신앙과 양심과 학문의 ‘지경’을 넓혀놓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
4) 교회의 영역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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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들어와서 장공은 교회 안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정치, 사회,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게 된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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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이후 학생들 앞에서 회개하고 역사 참여 선언... 1960년 4.19를 장공의 역사 혹은 사회 참여의 행보기 시작되는 기점으로 잡을 수 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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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945년 장공은 선린형제단 앞에서 해방 직후 새로 이룩될 나라에 대해 정치, 이념, 사상적으로 매우 폭넓게 방향을 제시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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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들어와서 장공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한 것은 65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때부터였다. 뒤이어 그는 박정희 장기집권시도에 대항해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을 했고, 민주수호국민회의를 결성하기도 했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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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북측과 접촉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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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활동 범위는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 통일운동 등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신장 및 분단문제 해결이라는 광범위한 데까지 이르렀으며, 교회의 울타리를 훨씬 벗어난 것이었다. (22)
5) 단순한 기독교를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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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이미 장공은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절대성을 떠나서 상대화 혹은 타 종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런 점에서 장공은 종교다원주의의 한 효시라고 할 수 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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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의 대화... (1) 상대방을 굴복시킨다거나 회심시키려는 예정된 의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2) 교리적 논박이나 우열을 가지려는 태도는 금물이다. (3) 사랑과 진실이 최대의 비결이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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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은 한 걸음 더 나가서, 모든 종교의 삶 혹은 윤리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심지어 그는 모든 종교의 원점, 즉 출발점이 동일하며, 단지 그 형성과 발전 과정에 서 발생한 외형적인 면들이 다르다고까지 보았다. 그 동일성은 모두 인간존중과 인간 사랑과 인간구원과 진리탐구이며, 기독교가 사랑을 가지고 불교나 유교나 천도교와 모두 한 몸으로 통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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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입장은... 폴 니터가 분류한 종교를 상대적으로 보는 에른스트 트륄취의 ‘다(多)의 주창자’ 유형과 아놀드 토인비의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입장과 유사성을 갖는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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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는 장공의 문화신학적인 면모를 살피면서, 리차드 니이버의 문화변혁설의 입장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주로 장공의 역사참여의 신학을 중점으로 한 분석이기 때문인 것 같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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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은 장공의 기독교와 민족 종교 문화와의 관계를 니이버 유형의 발전된 형태인 양자 간 상호변혁설로 파악한다... 그러나 박재순의 분석에 따르면, 니이버의 관계유형들 속에서 볼 때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적일 뿐만 아니라, 그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로서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종합”적이기도 하고, 또 두 주체의 상실이나 혼합이 아닌 상호 주체의 유지 속에서의 종합이란 점에서는 “역설적 관계로서 그리스도와 문화의 이원론”이기도 하다.
4. 장공의 자유론
1)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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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부터 이미 자유로운 존재였다.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로 창조되었고, 그 주체, 그 자유를 하나님은 보존하기를 원했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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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이 자유라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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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자기 스스로 절대적인 독립, 혹은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일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바로 그것이다. (26)
2) 타락한 인간의 현실 : 자유의 상실과 비인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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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렇게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영적인 면 혹은 영성을 잃어버리고,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혹은 물질적인 관계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무신론, 전체주의, 공산주의, 탐욕적인 자본주의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의 결과는 “자유의 상실”, “비인간화”, 또는 “자승자박의 노예화”이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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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파괴된 인간성과 왜곡된 자유로써 이룩하는 모든 문명이 “절화문명”(折花文明)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다시 받아들이고 스스로 피조물의 유한성을 인정해야한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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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에 하나님의 계시... 그것은 성서 기록에서 발견된다. (28)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의 회복과 해방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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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속하는 것이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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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이룬 말씀이며, 사람들은 그를 믿음으로써 인격적인 사귐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외아들과의 사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고, 동시에 자유의 회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자의 삶이란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가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함으로 얻은 자유로써 진리의 길을 묻고 따르는 것이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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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면에서의 구속과 자유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이고 사건적인 의미로서의 해방자 예수의 의미를 강조했다. (29-30)
4) 성령 안에서 자유의 주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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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자유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장공이 자유를 성령과 관련지어 설명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단지 자유의 수혜자가 아니라 자유의 주체라는 점을 보여준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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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성령의 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이고 변혁이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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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새로 지음 받은 사람은 ‘영의 자유인’으로서 새 존재가 되어 그 어떤 노예적 속박도 거부하며, 더 나가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며 자유로이 혹은 자발적으로 윤리적 삶을 선택한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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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윤리나 도덕은 어떤 강제나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유인의 자발적인 결단과 선택에 의한 것이다. (32)
5) 자유의 완성 : 아가페적 사랑과 역사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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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 자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 혹은 목표를 갖는데, 그것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자유는 스스로 사랑을 위한 봉사의 삶으로 이어지며, 바로 거기에서 자유가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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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에게서 사랑은 개인적인 자선이나 선행을 넘어서서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32)
5. 결론에 대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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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이 조선 혼의 사상가라면 이용도는 신비주의자이고, 함석헌은 씨ᄋᆞᆯ의 사상가이며 장준하는 민족과 반독재의 투사, 그리고 장공은 자유의 사상가이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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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자유에는 내적인 자유와 외적인 자유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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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은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자유의 한계를 잘 알았다... 자유가 사랑이라는 방향 혹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루터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한 일이기도 하고,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면서 강조했던 일이기도 하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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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자유에서, 자유의 방향 혹은 목표가 되는 사랑은 개인적이고 선행적인 면보다는 사회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는 점이다... 구체성을 가진 사회참여... 사회적인 사랑이고 역사적인 사랑...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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